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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27. 2022

봉쇄 중이지만 굶지 않습니다

추억을 먹으니까요

 연길 시 전면 봉쇄 18일째, 어제 7번째 핵산검사를 받았다. 봉쇄 중이어도 주말은 주말이라 여전히 행복하다.

책을 읽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와 소파에 드러눕는다. 어제 제주에 몰아쳤다던 강풍이 그새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밖에는 요란한 바람 그치지 않는다. 누안치(중앙난방)도 끊 집안이 썰렁하다.


봉쇄 전 주말에는 뭐 했드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연변대 수영장을 갔었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몇 시간이고 고행하듯 걸어 모아산(연길의 자랑!)을 다녀오기도 했다. 특별한 주말 의식을 치르듯 꼭 루이싱 커피에 들러 커피도 마셨다.


한국에 있을 때 주말에는 뭐 했드라, 벌써 3년 전 일이다.

아침에는 남편과 천천히 사랑을 나눈 후 알몸 그대로 서로 기댄 채 한참을 워, 마치 20여 년 전 대학생 커플로 다시 돌아간 듯, 음악도 듣고, 농담도 하고, 속 이야기도 곤 했다. 이렇게 안방에서 맘 편히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연인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성공(?)했다, 사랑을 지켜(?)냈다, 뿌듯해하며. 종종 딸이 무심코 방문을 열려고 하면(네가 올 줄 알고 미리 잠가 뒀지),

“야, 엄마 아빠 지금 응응 중이니까 이따가 이야기해.”

“으! 드러워!”

“그 드러운 짓 덕분에 네가 태어난 거야.” 

정오 무렵, 배고픔을 못 이기고 한 둘 씩 각자의 방에서 까치 머리를 하고 빠져나오면, 다 같이 김밥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나는 김치와 달걀만 넣어 후다닥 못난이 김밥을 말고, 딸은 꼬들꼬들한 라면을 끓이고, 아들은 세심한 힘 조절로 김밥을 가위로 자르고, 남편은 (내가 여러 번 채근한 뒤에야) 설거지를 했다. 때로는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너무 기특해(?)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 남편의 만능 일상복 바지(사각팬티)를 발목까지 획- 기도 했다. 그렇게 주말에는 분업이 확실한 가족 브런치를 변태 장난도 쳤다.

 

이제, 3월에도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이 추운 연길에서, 혼자  안에 갇힌 채, 쓸쓸한 주말을 보낸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다정한 추억이 있어, 굶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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