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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ug 18. 2022

백두산, 꽃이 피었습니다

백두산 서파(西坡)를 가다

... 금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금사 金史』에서는 여진족의 전통적인 강역을 백산흑수(白山黑水)라고 부르고 있다... 북쪽의 흑룡강부터 남쪽의 백두산까지의 사이 지역을 여진족의 영역으로 인식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훗날 16~17세기 만주족은 장백산(백두산)을 '골민 샹기얀 알린'이라고 불렀다. 이는 '길고 흰 산'이라는 의미로서 장백산(长白山)과 의미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름이다... 장백산은 만주 지역에서 최고봉이고, 광대한 산무리의 곳곳에 화산의 기기절묘한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정상의 칼데라호인 천지는 장엄하다. 그렇게 때문에 장백산은 그 일대를 터전으로 살아온 민족들에게 언제나 특별하고 선령스럽게 여겨졌다. 이들은 장백산 자체를 신으로 여겼다. (192~193쪽)


새벽 5시, 1박 2일 일정으로 백두산 남파(南坡)로 향하는 단체버스에 올랐다. 밤새 내리던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백두산을 향하던 중, 폭우로 백두산을 오르는 세 가지 길, 북파, 서파, 남파 모두가 닫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도백하 공원, 여진족 눌은고성(讷殷古城), 농심 백산수 공장 등 다음날 일정을 앞당겼다.


백두산 아래, 두 강이 교차하는 곳에 '눌은삼림고성'을 짓고 살았던 여진족, 나중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모태가 된다.


다음날 이른 아침, 날이 개고 남파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중교통편이 없고, 북한을 거쳐 가므로 관광 절차 까다로워 혼자서는 가기 힘든 남파를 드디어 볼 수 다는 기대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불어난 강물로 남파로 가는 하나뿐인 도로가 침수되어 통행불가였다. 어쩔 수 없이 서파로 방향을 돌렸다.


풍경 구내 버스를 2번 갈아타고 1442개의 계단을 직접 올라야 천지를 볼 수 있는 서파는 전날 내린 비로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 실개울이 생겼고 협곡의 물이 세차게 흘러내렸다. 샛푸른 하늘과 연둣빛 들판, 보라색, 흰색, 노란색 소박한 여름 꽃들이 생기 있게 어우러졌다. 지난 겨울 올랐을 때는 볼 수 없아기자기하고 다정 풍경이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관리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얼른 속도를 내 올라가세요. 산 아래에서 구름이 올라오고 있어요. 오후가 되면 천지를 못 봐요."


산 아래서 맹렬히 올라오고 있는 구름


서파만 벌써 세 번째 오른다는 동료는 아직도 비를 원망하며 남파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오르는 길은 다르지만 정상은 모두 천지고 각도만 다를 뿐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백두산, 그래서 언제 와도 그 모습 그대로 좋은 백두산. 이 사람은 비 온 뒤의 이 향긋한 공기, 8월 말, 백두산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곧 사라질 저 예쁜 꽃들과 여기저기 재잘대는 개울들이 안 보이는 걸까. '나는 여기에 있다'를 더욱 속으로 되뇌었다.


천지 주변에 핀 꽃


작년 겨울,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랐을 때는, 애국가 첫 구절의 바로 그 백두산, 땅으로는 갈 수 없는 서러운 곳, 우리 민족의 영산 등등의 생각으로 혼자 가슴이 뭉클뭉클,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다. 하지만 신장의 끝없이 웅장한 천산산맥과 천산천지를 보고, 백두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여러 민족들, 흥망을 거듭한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지금은, 그때만큼 감격스럽지도 울컥하지도 않다. 대신 경쾌한 도깨비 실개울들과 누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지만 제가 좋아 스스로 핀 저 기특하고 당당한 여름 꽃들, 산 밑에서 무서운 기세로 밀려 올라오는 비구름 그 자체에 감동과 행복이 밀려올 뿐이다. 내 머릿속의 오랜 것을 보지 않고 내 눈앞의 생생한 것, 그대로를 보고 싶다.


백두산은 한국인의 성산이고 또한 만주족에게도 성산이었다.(190쪽)




*참고자료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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