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Jun 09. 2022

벨보이는 스튜어디스를 꼬실 수 있을까?

중드 <환영광림 欢迎光临>을 보다

<랑야방>, <녹>를 만든 중국의 실력파 작사, 정오양광에서 한 편의 맛깔진 생활밀착형, 희망퐁퐁 드라마 만들었다. 바로 양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이야기, 벨보이가 여신(女神) 스튜어디스를 꼬시는 이야기!


1. 햇살 같은 벨보이



주인공 장광정은 5성급 호텔의 문동(门童), 벨보이다. 시시한 전문대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북경에서 겨우 구한 직업이 벨보이다. 괜찮은 직업을 구할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일이 어느6년째, 그의 직업이 돼버렸다. 어느 진상고객과 대판 싸우고 억울하게 징계까지 받은 날, 한껏 풀이 죽은 그는 이제 아무런 희망 없는 북경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때 그의 여신, 정유은(郑有恩)을 만난다.


멀리 베란다 밖으로 그토록 찾던 여신 발견! 이렇게 된 이상 북경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제출했던 사직서를, 사정사정해서 다시 돌려받고 북경에 머물기로 마음을 굳힌다.


2. 추운 마음의 스튜어디스


그녀 역시 장광정과 같은 감정 노동자, 스튜어디스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 건 , 결벽증, 사람들에게  날이 서 있는 그녀. 특히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족, 엄마에게 모진 말로 상처주기 일쑤다. 이렇게 마음이 추운 그녀에게, (남자 3명 사는 집에 방이 1칸 밖에 없어서 ) 베란다에 사는 남자, 이름처럼 밝고 바른 남자, 털털하고 정 깊은 남자, 광정(张光正)이 다가온다.


3. 아줌마들과 광장무를 


호텔에서 한눈에 반한 그녀를 다시 만날 길 없던 차, 우연히  광장무를 추는 동네 아줌마들 틈에 정유은의 엄마가 끼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광정. 그날부터 매일, 아침잠을 줄여가며 아줌마들과 광장무를 다. 그런데 점점 광장무가 재미있어지고 아줌마들과도 호흡이 잘 맞는 게 아닌가.

 

젊은 남자가 자신의 엄마에게 유독 살뜰히 대하는 것을 본 그녀, 고맙다는 말 대신 그를 매섭게 쏘아붙인다.




당신, 어르신들 속여서 건강식품이나 보험 팔아먹는 사기꾼이죠? 허튼수작 말고 어서 꺼져요!


궁지에 몰린 장광정, 결국, 한눈에 반한 유은에게 접근하기 위해 광장무를 추기 시작했다고 실토하는데 유은의 엄마 포함 광장무팀 아줌마들이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그때부터 사람 좋은 그의 구애를 적극 돕는다. 물론 그가 벨보이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하늘의 별따기가 쉬울 리가 있나.


"광정아, 아줌마한테 말해봐. 대체 우리 딸이 오늘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너 만나고 와서 저렇게 기분 좋은  보니 분명 널 괴롭혔을 거야. 변태 같은 저 아이를 내가 잘 알지."


속옷 차림으로 쇼핑몰 화장실에 갇히기, 콩물 세례, 목졸리기, 독설 폭격...별 따기 참 어렵다.


돈은 없지만 맷집 좋은 이 남자, 온갖 치욕과 무시, 거절을 버텨내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별을 따낸다! 마음이 추운 그녀에게 필요했던 단 한 가지, 그에게는 매일 베란다에 비춰 드는 햇살 같은, 편안한 따뜻함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과 함께 지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정유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나, 명품 가방 사는 거랑 싸움 구경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건?"

"못생긴 얘들이 TV에 나와서 얼쩡대는 거."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돈 모아가지고 한국 가서 이렇게, 쌍꺼풀 수술이라도 하고 와야겠는걸. 괜히 네 심기 건드리지 않으려면 말이야."



이를테면 유은이 좋아하는 명품 가방을 사주고 싶다. 그런데 가죽도 아닌 제일 싼 가방이 400만 원. 그의 반년치 월급이다. 유은이 둘이서만 해외여행을 가자고 한다. 멋진 해변가에 고급 호텔도 예약하고 비행기 표도 미리 끊어 놓았단다. 그런데 장광정은 갈 수가 없다. 돈도 없지만 여권을 만든 적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맹장염 수술을 받아도, 90만 원 정도 그의 수입으로는 그녀의 병원비도 내 줄 수가 없다. 햇살 같이 따뜻하고 당당한 이 남자도, 돈 앞에서는 쪼그라드는 것이다. 모든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해준 고마운 그녀에게 보답할 길이 없는 것이다.


4. 함께 고군분투할 사람


사실, 평탄한 인생은 없다. 불합격, 실직, 파산, 치매, 사기, 중, 소송, 교통사고, 소중한 이의 죽음  온갖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우 기다리고 있다.


영화 <Before we go>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두 분 정말 완벽한 커플이신 것 같아요."
"완벽? 완벽이란 건 없다네. 늘 고군분투가 있지. 그저 함께 고군분투할 사람을 골라야 하는 거라네."


난기류에 휩싸여 심하게 요동치는 비행기 내에서 산소호흡기를  때 오르한 사람,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날들을 함께 해 줄 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 알츠하이머 걸려 결국은 내 이름 석자도 생각해 내지 못할 때,  곁에서 그저 빙긋 웃으며 내 이름을 살짝 알려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저임금 벨보이여도, 빼박 흙수저여도, 그 사람을 고르는 게 현명 일이 아닐까. 함께 고군분투해 나갈 수 있으므로.


래서 이 드라마를 보다가 그 남자가 생각났다. 평생, 내게 부귀영화를 가져다줄 가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타고난 태평함과 순수함으로 세상에서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나에 대한 충심과 사랑만은 차고 넘치는 사람, 못 말리는 사랑꾼, 바보. 내가 원하는 그  단 한 가지를 가진, 햇살 같은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밥 맛있게 먹었어?
나 오늘 중국 드라마 보다가 자기 생각났지 뭐야...


이전 04화 내 생각난 적 없어? 정말 없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