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Apr 30. 2022

내게도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1

중드<친애적 마양가>를 보다

내게도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한데 여주인공역이 아니라 연수생 3, 엑스트라 역이었다. 비록 분량은 적었지만 내가 그 드라마에서 게임 체인저, 혹은 딜 브레이커였다는 자부심(?)은 있다.


20여 년 전 여름방학, 나는 2주 동안 숙박으로 진행되는 교사국악연수에 참여하고 있었다. 대금을 열심히 배우고 있던 나는 당연히 그 연수에 기대가 컸다. 더구나 '추앙'하는 우리 대금 선생님이 단소 강사였다. 우리 선생님은 166cm 키에 까불고 우쭐거리기를 좋아하는, 카드 많 못생긴 바람둥이 노총각이었다. 한마디로  짜난(渣男), 한심남이었다. 그런데 인성과 예술적 역량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인지, 이런 그가 대금만 불면, 현빈으로 변신하는 거였다. 그에게 빠지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고 그의 연주를 듣고도 빠지지 않은 사람은 귓구멍이 막힌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방의 이름 없는 국악과 출신인 그가, 명문대 출신, 이름난 명인의 수제자들을 모두 제치고 단 한 번의 실기 면접,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국악원 수석단원으로 채용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여러 교사들과 국악연수를 시작하던 날,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그렇듯 M은 한눈에 띄었다. 사연을 간직한 듯한 아름다운 얼굴, 날씬한 몸짓,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밝은 표정, 친근하고 적극적인 태도, 빛나는 그녀를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 번 더 돌아보거나, 실없이 말을 걸어보거나, 멀리서 가슴이 설레거나했다. 그녀는 자원하여 연수반 반장이 되었고 그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던 무뚝뚝한 그녀의 친구는 총무가 되었다.  


단소 연수를 끝내고 대금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하이에나 대금 선생님이 예쁜 데다 교사인 M을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M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거였다. 다음날 저녁, M과 대금 선생님, 나를 비롯한 몇 명의 바람잡이들이 모여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자리.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대금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M에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M은 뜻밖에도, 예전에 사귀다 헤어진 사람이 있는데  아직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아, 이렇게 매력적인 여을 기다리게 하는 그 복에 겨운 남자는 대체 누굴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여주인공 M에게로 쏠렸다.


남자는 M의 대학시절, 학생회 일을 하며 만났던 다른 지방 교대의 학생회장이었다. 서울에서 궐기대회를 하며 둘은 사랑에 빠졌고, 편도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오다, 임용고시 준비로 서로 바빠지면서 서서히 멀어지게 된 모양이었다. 혹시나 그를 다시 만날까 하는 기대로, 그의 고향근처에서 열리는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됐다고도 했다. 나는 그 지역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남자의 이름을 물었다. 오래 간직해온 그 이름을, M이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H


이럴 수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이름이었다.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4dc36277f185415/26













이전 05화 벨보이는 스튜어디스를 꼬실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