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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30. 2022

내게도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났다 2

중드<친애적 마양가>를 보다

<이어지는 앞 이야기>


https://brunch.co.kr/@4dc36277f185415/24


H 우리 학교 체육 기간제 선생님이었다. 임용고시에 3년간 내리 낙방하고 기간제 교사로 멀리, 섬마을 우리 학교까지 온 것이었다. 옷 사이로 엿보이는 탄탄한 근육과 두꺼운 어깨, 구릿빛 피부, 단정하고 지성적인 말투까지, 그는 내가 현실세계에서 직접 만난 몇 안 되는 사캐남(사기 캐릭터남)이었다. 거기다 그는 학생회 출신에 강성 전교조원(교사로 임용되기도 전에!)이라 그런지, 학교체제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부모가 없어 오줌 싼 바지, 콧물 말라붙은 얼굴 그대로 씻지 않고 학교에 오는 남자아이를 학교 뒤 자신의 관사 데려가 씻기고 이발도 시켜주었다. 그때만 해도 체험학습 날이면 학부모들이 교사들의 점심을 푸짐하게 준비해주곤 했는데, 그는 그걸 먹지 않고 김치와 계란말이를 넣어 자신이 직접 싸 온 도시락을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다. 또 텃밭 관리나 도서 폐기 등 가장 어렵고 성가신 일을 맡겨도 기분 좋게 척척해냈다. 이렇듯 그는 남주 1호의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으니 이런 그를 사모하는 이가 없을 리가. 전교생 30여 명, 6 학급밖에 안 되는 조그만 우리 학교에는 미혼녀 선생님만 4명이었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싹 갈아엎은 괄괄한 성격의 A, 요가 마니아지만 물욕이 대단했던 여우 B, 털털한 성격 조울증 경미 증세가 있던 곰녀 C, 가장 어렸지만 이동미(이 동네 미친년은 나야) 불도저 D. D는 A의 성형 수술한 코에 주먹을 한 방 날리고 싶다고 했다. C는 B의 여우짓이 역겹다고 했다. A는 C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고 했다. B가 D에게는 도무지 뇌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질투하며 각자의 특기로 H에게 어필하곤 했지만 H 전혀 미동하지 않았으므로 늘 5각 관계의 긴장감만 감돌뿐 어떤 결정적인 사건 없이 여름방학을 맞 참이었다.


무늬만 주인공 이둥둥과 사랑이야기의 진짜 주인공 어우샤오젠

<친애적 양가>는 이상한 드라마였다. 착하고 평범한 소년 이둥둥의 성장 이야기이지만, 드라마 속 애틋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마양가에 이사오던 첫날, 그 사랑의 중심, 샤오샤오에게 반해버렸으니 그는 앞으로 드라마 마지막 회까지 가슴 찢어지는 관찰자, 그 사랑의 배경 역할만 해나갈 터였다. 1회부터 주인공을 무기력한 오징어로 만들어버리는 드라마라니! 샤오샤오와 샤오젠간의 오랜 사연을 전혀 모르고 두 사람을 처음 만난 날, 이를 예감한 이둥둥의 내레이션.  

샤오샤오와 샤오젠, 이 둘은 너무 닮았다. 말투, 모습, 전체적인 분위기, 무심코 던지는 눈빛까지. 그 둘은 같은 종류의 사람, 스스로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닮은 사람들, 서로에게 집인 사람들. 이들이 잠시 멀리 떨어지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혹은 한 사람이 먼저 죽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불쌍한 이둥둥!


다른 사람들에게는 험악하게 해도 샤오샤오에게만은 온순해지는 건달 샤오젠, 빛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볼 때

M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내게서 H의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연락이 끊긴지 3년만이라고 했다. 대금 선생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날 밤, M이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국악연수가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A는 50이 가까운 나이에 여전히 미혼으로 씩씩하게 살고 있다. B는 대기업 다니는 부잣집 아들과 결혼해 강남 수십억 아파트에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C는 그녀의 이상형인 손가락 가늘고 긴 남자와 결혼해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D는 동갑내기 경찰과 결혼해 여전히 불도저처럼 이리저리 밀어붙이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TV나 신문에서 교육개혁 운동가로 활약하는 H의 소식을 듣는다. 그는 함께 교육개혁 운동을 하 연상의 선배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전, 출장지에서 우연히 M을 보았다. 그녀는 지루한 옷차림의 심드렁한 표정,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다른 사람을 꼭 돌아보게 만들던 예전의 그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낮에 뜬 하얀 달을 본 적이 있는가. 해는 달을 사랑하지 해바라기 꽃을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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