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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08. 2022

센티멘털 중국어

그 중국어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금사빠인 나만 그런 건가. 아직 초급이긴 하지만 중국어를 배워보니, 표음문자인 한국어의 의성 의태어가 특히 감칠맛 나듯 표의문자인 중국어에는 뜻을 새길수록 갬성터지는 표현들이 많았다. 쉽고도 촉촉 중국어 표현 3개를  맥락과 함께 소개한다.


1. 짜이찌엔(再见), good-bye

-드라마, 환락송(欢乐颂)2, 2017


한자 뜻은 분명 다시 재(再), 볼 견(见) ‘다시 보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헤어질 때 ‘잘 가’의 용도로 쓴다. 헤어질 때 얼마나 아쉬웠으면 다시 만나자는 말이 작별인사가 되었을까. 그러면 이별하는 연인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작별인사, ‘再见!’은 관용적 쓰임대로(figuratively) 단순히 ‘잘 가’라는 뜻일까 아니면 글자 뜻 그대로(literally) 아직 사랑이 남았으니 ‘다시 만나자’는 뜻일까.


취샤오샤오(曲筱绡)는 친구와 클럽을 좋아하는 천방지축 부잣집 막내딸이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청고(淸高)한 원칙남 의사 자오치핑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 특유의 불여시 기술로 그를 꼬신다. 둘은 연인이 되지만 사고방식과 경제력의 차이로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다.

불여시 기술

“진심으로 널 사랑해... 알아, 네가 내 경제상황을 배려해주려고 그랬다는 거.”

“내가 그 선물을 준 게 잘못이었어. 그저 널 기쁘게 해 주고 싶었던 건데... 미안해.”

“아니야, 네가 준 선물 참 맘에 들어. 저녁 내내 그걸로 음악을 들었어. 하지만 내 경제능력 밖이라 마음이 편치가 않아... 사실 너에게 화난 게 아니라 내 자신에게 화가 난 거였어.”

“네가 말 안 해도 알아. 널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하지만 갑자기 우리 집이 파산하게 할 수도 없고 너 역시 네 자존심을 버릴 수도 없어. 나 때문에 내가 좋아하던 원래 네 모습이 변해가는 것도 못 보겠어... 우리 헤어지자.”

“... 음향설비 비용은 분할해서 네 통장으로 보낼게.”

“그 후에는?”

“사실, 난... 너만 못해. 짜이찌엔.”

“다시 그 후에는?”

짜이찌엔.”

그렇게 헤어지고 1년쯤 지났을까. 혼자 카페에 앉아있는 자오치핑.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창문 위에 손가락 글씨를 쓴다. ‘筱’


2. 짜이이치(在一起), be with

-드라마, 혼자라면(若是一个人), 2020, 대만


한자 뜻은 ‘함께 있다’ 이지만 실제로는 ‘사귀다, 연애하다’의 의미로 쓴다. 연애란 그저 함께 있는 것,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라는 본질적 의미가 담긴 듯하다. 하지만 함께 있어 행복하려면 먼저, 혼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함정.


팡짜잉은 오래전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아직도 혼자가 두려운 그녀를 ‘20년 홀로서기 장인’ 띵즈밍이 도와준다. 홀로서기 1단계 미션, 식당에서 혼자 훠궈 먹기를 시작으로 혼자 크리스마스 보내기, 혼자 새해 맞기, 혼자 생일 보내기, 혼자 바다 보러 가기, 혼자 이사하기, 혼자 수술받기 등의 미션이 이어지는데, 미션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두 사람은 각자의 상처와 외로움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넓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간다. 홀로서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듯, 팡짜잉은 익숙한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낯선 일본에서 혼자만의 씩씩한 삶을 시작한다. 어느 늦은 밤 문득, 띵즈밍이 이곳을 찾아온다.

갑자기 그가 찾아왔다, 외로움의 달인

“여느 때처럼 비행기표를 사고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을 떠돌았는데... 나도 모르게 여기로 오게 되더라.”

“…….”

“팡짜잉!”

“응?”

“우리가 짜이이치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여자가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드라마가 끝난다.

남주가 능력치 만렙의 재벌도, 외계인도, 도깨비도 아닌, 이따금 농사를 짓는 가난한 떠돌이여서 좋았다. 여주가 곤경에 처해도 남주가 짠하고 나타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 않아 참 좋았다. 여자들이 으레 좋아하리라 생각하는, 백허그, 집 앞 이마 키스, 급습 벽 키스, 썸남전남친 몸싸움 이 없어서 더 좋았다.


3. 춘풍십리(春风十里), the spring breeze

-노래, 춘풍십리(春风十里), 2015, 鹿先森乐队


새벽에 부드럽게 내리는 봄비 소리, 잠 깨어 그 사람을 생각하는가, 봄바람 불어오면 하얗게 핀 목련꽃을 바라보며 그 사람을 생각하는가. 늦 밤,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그 한 사람만 더욱 또렷해지는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양주(扬州)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赠别·其一>의 ‘春風十里楊州路’라는 시구절을 따와 중국의 한 젊은 밴드가 멋진 노래를 만들었다. 십리 밖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춘풍십리(春风十里) 보다 더 향기롭고 예쁜 사람, 세상 모든 술 보다 더 나를 취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지는 도로변에서, 너를 생각해

너는 저 먼 산 위에, 춘풍십리

오늘도 바람이 너에게로 불고 비도 내려

세상 모든 술이  너 하나만 못해

세상 모든 술이 너 하나만 못해

https://www.youtube.com/watch?v=QsWsFTNkg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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