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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ug 07. 2022

착한 남자, 나쁜 남자, 똑똑한 남자

중드 <성한찬란•월승창해 星汉灿烂•月升沧海>를 보다

기혼 여성들이 주로 즐기는 드라마의 핵심은 'mating'이다. 어떤 신랑감을 선택할 것인가, 카리스마 팀장님인, 달달한 연하 인턴인가, 천국과 지옥의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남주 1호인가, 천천히 회전목마 태우는 남주 2호 인가. 이미 배우자 선택과 출산까지 끝난 기혼 여성에게 드라마는 '사랑받는 여자', '선택하는 여자'라는 설레는 판타지와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고전극임에도 썸 타는 남자만 3명, 결혼을 4번이나 할 뻔한, 극강의 '사랑과 선택'의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부러운(?) 낭자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1. 공대 아롬이, 정소상


중국 어느 왕조, 신진 무장(武将) 댁 '규수'지만 그녀 '당대의 반항아', '시대의 돌연변이', '공대 아롬이'고 부르는 게 더 잘 어울린다. 모국어지만 식별 가능한 한자는 숫자 포함 100 남짓, 당연히 그녀는 책 읽고 수놓는 것, 성현의 말씀을 늘어놓으며 내숭 떠는 것, 당하고 참는 것을 싫어한다. 대신, 다리나 건물의 구조를 분석하고, 뚝딱뚝딱 손으로 유용한 뭔가를 만들고, 술 마시고 롱거리는 것, 실컷 먹고 실컷 자는 것을 즐긴다.  각종 말대꾸나 육박전도 잘해서 누가 예의 어쩌고, 신분 어쩌고 하며 괴롭혀도 꼭 되갚고야 만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다.


싸움도 잘하는 그녀


엄격 여장부, 그녀의 어머니는 이런 딸이 늘 못 마땅하기만 하다. 원소절 밤, 어머니께 크게 혼나고 하마터면 못 갈뻔한 등회 구경을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그녀, 그곳에서 운명의 세 남자가 그녀에게 홀딱 반한다.


홀린 눈의 세 남자, 핑크빛 기대



2. 착한 남자,


자신에게는 없는, 소상의 당차고 총명한 모습에 반한 어린 순정남, 루요. 밀당이고 작전이고 없이 처음부터 가진 패를 다 까보이며 그녀의 자발적 댕댕이가 된다. 밤 술 심부름, 맛집 셔틀, 음란서적 공수 등 그의 세계는 그녀를 중심으로 돌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다 한다. 반란 사건 후 폐허가 된 한 고을의 재건을 도우며 더욱 가까워진 두 사람. 엄격한 집안의 속박을 벗어나 멀리 시골로 가 둘이서만 자유롭게 살자며 미래를 약속하고 내친김에 정혼까지 하게 된다. 소상은 그가 운명의 정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늘 운이 나빴던 그녀에게 루요만한 남자가 다시 오겠냐며 어머니의 반대에도 결혼을 고집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소상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 루요. 소상 덕분에 소심한 자신을 깨고 세상에서 당당히 서는 법을 배운 루요는 소상만을 고집하며 끝까지 버티지만 '대의를 생각하자'는 소상의 눈물 어린 설득에 결국 그녀를 내려놓는다. 이렇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만 서로로 인해 더욱 성숙해진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자 재빨리 소상의 귀를 막아주는 루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쁜 남자(좌)와 똑똑한 남자(우), 속에선 천불이 난다


루요와의 사랑은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의 연애를 떠오르게 한다.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조차 잘 모를 때, 사랑이 뭔지 인생이 뭔지도 모를 때 그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 길고 하얀 손가락, 자전거 타는 매끈한 모습에 반해 쉽게 사랑에 빠졌던 시절. 그리고 그게 세상의 전부고 인생의 단 한번뿐이며 영원할거라 믿었던 시절, 한쪽은 무조건 잘해주고 한쪽은 무슨 권력인 양 맘대로 토라지했던 시절. 결국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허망하게 끝나는 소꿉장난 같은 풋사랑.



3. (근육질의) 나쁜 남자, 릉불의


임금님의 핵인싸이자 장안의 킹카, 릉불장군. 그를 사모하는 유창군주의 생일파티. 함께 모인 규수들이 신진 무장의 낮은 신분을 꼬투리 삼아 소상을 모욕한다.

"넌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와서, 유창군주가 좋아하는 멋진 11랑님을 본 적도 없겠구나."

"11랑? 난 또 누구라고? 날 사모한지 오래됐지만  관심 1도 없는 그 11랑 말이지?"

소상이 홧김에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바로 그 11랑 릉불의, 원소절 밤 갑작스런 화재에서 소상을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던 그 남자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친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는다.
"정낭자, 잘 지내셨소? 가 바로 정낭자를 오랫동안 사모해왔지만 정낭자는 관심 1도 없는 릉불의요."


소상이 릉불의의 가슴속에 박힌 화살을 빼내주는 순간, 그의 가슴속에 그녀가 박힌다
딴 남자와 정혼한 여자를 으슥한 곳으로 불러내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이 남자는 어찌나 나쁜지, 다년간의 전투로 다져진 몸은 온통 근육이요, 이미 루요와 정혼한 소상을 으슥한 곳으로 따로 불러내 결혼 말고 당신이 인생에서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이냐며 그윽하게 묻는가 하면, 나 같은 (못 생긴) 여자들은 평생 한마디 들을까 말까 한 주옥같은 밀어들을 파도처럼 쏟아낸다. 이를테면,


-(그녀에 날아온 칼날을 극적으로 막아주며) 두려워마시오. 내가 왔소.

-(왜 집안에 여자 시녀가 한 명도 없냐고 묻자) 내 집에 여자는 당신 하나로 족하오.

-(밤하늘 별구경을 하다가) 더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보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내 눈 안에 빛나고 있소, 바로 당신.

-(그녀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준다며 침대 위에 자빠뜨려 놓고는) 오늘부터 내 생명줄을 당신에게 맡기겠소.

-(그녀의 수줍은 사랑고백을 듣고는) 어쩜 하루하루가 이렇게 긴지. 더는 못 참겠소. 내일 당장 혼례 올리는 게 어떻소?


또 개성 강하고 고집 센 소상을 어찌나 잘 다루는지, 그녀가 원하는 것(냉차 마시기, 음주, 늦잠, 야식, 호구 짓, 오지랖질 등등)을 단호하게 못하게 하는데도 그녀의 사랑은 깊어져만 간다. 부모도 어쩌지 못하는 정소상 사용법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그녀의 '임자'였던 것이. 이제 소상은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성숙한 여인이 된다.


하지만  나쁜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릉불의에게는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사연'이 있다. 그의 달콤한 밀어와는 달리, 그녀는 그의 전부가 아니다. 언제나 그녀보다 더 중요한 대업이 있고, 정치와 비즈니스가 있고, 오랜 트라우마와 끝내야 할 복수가 있다. 그는 결코 평온한 일상을 함께 할 수 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사로잡아놓고서 그는 홀연 떠난다. 그것도 그렇게 기다려온 결혼식하루 앞두고. 이제 정소상 앞에는 긴 그리움과 눈물의 만이 남아있다.


나쁜 남자의 시조새, 섹스 앤 더 시티의 미스터빅, 소울메이트 캐리와의 결혼은 그렇게 안된다더니 출장간지 6개월 만에 어린 모델과 결혼해서 돌아왔다


릉불의와의 사랑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마주치게 되는, '른의 사랑'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정말 여자구나, 여자로 태어나 이 남자와 사랑할 수 있으니 참 행복하다고 느는 사랑.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으며 이 사랑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끝날지도 알지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강렬한 사랑. 사랑이 끝난 뒤에도 생애 내내 지속되는 갈망과 그리움.



4. 똑똑한 남자, 원신


릉불의와의 사랑이 활활 타고 남은 잿더미에 똑똑한 남자, 원신이 출동한다. 너무 똑똑해서 여인의 아름다움이나 사랑의 열정에 결코 눈멀지 않 남자. 늘 신중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만 하는 남자. 그는 너무도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며, 그녀와 그녀의 정혼자들에게 심술을 부려가 기회를 기다려왔다.  


처음에는 소상과 서로 재수 없어하는 사이였다. 성현의 말씀을 거들먹거리며 무식한 소상을 비꼬기도 하고 그녀의 집 가정교사가 되어 수업할 때도 늘 소상만 겨냥해 공개 망신을 주곤 했다. 하지만, 소상이 가장 힘들고 외로 때, 그는 기꺼이 자신의 오만하고 까칠 껍질을 벗고 따뜻한 진심을 꺼내어 그녀의 손을 잡아 준다. 빛나는 지혜로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켜준다.



원신과의 사랑은 30대 중반, 40대쯤, 어리석은 열정이 한바탕 나간 자리에 선물처럼 다시 찾아온 성숙하고 안정된 사랑 같다. 인생한테 좀 얻어터진 그 나이쯤 되어서야 비로소 이런 사람과는 인생길을 오래도록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5년이 지나고, 소상은 오랫동안 기다려준 원신과 정혼한다.



그리고 각종 의혹 속에 사라졌던 릉불의가 다시 돌아온다.


결국, 소상이 누구를 선택할지 우리 여자들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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