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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24. 2022

자연만이 남는다

우루무치 천산천지(天山天池)를 가다

두 번의 비행기 환승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중국 동북 끝 연길에서 서북 끝 우루무치까지, 순수 비행8시간 걸리는 긴 여이었다.


오늘은 천산천지 1일 현지 패키지를 예약한 날이다.  


1. 신장마(新疆码) 소동


어제 오후, 신장(新疆省) 핵산 바코드가 없는 외국인은 핵산검사 결과지있어야 천산 입구를 통과할 수 있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부랴부랴 '신장의과대학 제일부속의원'으로 향했다. 지하철 노선이  줄 밖에 없는 대도시 우루무치 시내는 하루 종일 차가 막히는 듯했다.


병원 입구, 신장성 핵산 바코드, '신장마'가 없다고 하니 이미 확진자라도 되는  입구에서 저지당한다. 더구나 비행기를 환승했던 장춘(长春)에서 확진자 몇 명이 발생한 터라, 장춘 공항 밖을 나간 적도 없건만 더욱 난감해다. 연길에서 이틀 전에 받았던 핵산 검사 결과지와 여권에 찍힌 중국 입국 날짜, 허가증, 핸드폰 번호 등 모든 개인정보를 탈탈 털어준 후에야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통풍 안 되는 좁은 실내, 다닥다닥 붙은 줄에서 1시간쯤 차례를 기다린 후에야 겨우 핵산 검사를 받았다. 핵산 검사받으러 왔다가 되레 코로나에 걸것만 같은 환경이었다. 결과지는 6시간 이후에야 받을 수 있다니 다음날 아침 여행사 버스를 타기 전에 다시 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아침, 검사 결과지를 발급받으러 다시 왔더니 신장마가 없다는 이유로 여지없이 입구에 저지당한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입구의 어린 보안 요원이 나 대신 병원 안으로 들어가 핵산 검사 결과를 받아다 준다. 나를 섣불리 병원 안으로 들여보냈다가 짊어지게 될 책임보다 몇 걸음 떨어져 있는 자동발급기까지 대신 다녀오는 게 훨씬 가벼웠을 것이다.


어렵게 발급받은 핵산 검사 결과지감격스레 받아 들고 약속된 버스 승차 장소인 지하철 A입구에서 1시간 기다렸다. 버스 도착 30분 전, 문득 화장실이 가고 싶어 위를 둘러보니 마땅한 곳이 없다. 바로 앞 지하철 입구에서 짐 검사하고 있는 지하철 보안요원에게 물었다.

"지하철역 안에 화장실이 있나요?"

"네 있어요. 지하철을 타려는 게 아니라 화장실만 이용하려는 거죠? 화장실은 지하철 표를 끊고 들어가야 있어요."

"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지하철 표를 살게요."

"그럼 신장마를 보여주세요."

"저는 외국인이라 신장마가 없어요. 신장마는 중국인 신분증으로만 등록할 수 있는데 저는 여권밖에 없는 외국인이라 등록 자체가 안돼요. 대신 오늘 아침 발급받은 핵산 검사 결과지를 보여드릴게요. 시면 여기 음성이라고..."

"신장마 없이는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 보안요원 앞에서 보란 듯이 엉덩이를 까 오줌을 싶었으나... 결국은 지하철역 안에도 못 들어가고 으슥한 곳도 찾지 못해, 1시간 반 동안 소변을 참으며 천산까지 가게 되었다. 코로나 양성 여부보다 신장 소지 유무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쉬 마려운 채로 바라본 우루무치 시내 아침 8시 풍경


2. 소수민족 혐오 유발 소수민족전통체험


소변이 마려운 채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흘려듣다가 졸다가 보니 어느새 버스 천산국가풍경구 입구에 도착했다. (핵산 검사 결과지는 하루 종일 그 누구도 내게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천산에서 즐길 A, B, C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물론 옵션 모두 별도 추가 비용 내야 하고 선택하지 않을 시, 함께 움직여야 하는 단체관광 특성상 다른 사람들의 활동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 곪으며' '우두커니' 기다려야 한다.


A: 소수민족전통체험, 점심식사 + 천지 유람선 + 왕복전기차

B: 소수민족전체험, 점심식사 + 왕복케이블카 + 왕복전기차

C: 소수민족전통체험, 점심식사 + 마야 등반 + 왕복전기차


유람선, 케이블카 비용, 점심식사 비용이 별도인 건 패키지 안내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난데없는 '소수민족 전통체험'이 추가되어 2만 원 정도, 전체 옵션 가격이 올라갔다. '소수민족 전통체험'이 뭐냐고 물으니 점심식사를 하며 소수민족 전통 공연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활동이란다. 점심식사가 먹을만하냐니까 양꼬치, 하미과, 전통음식  아주 '풍성하게' 나온단다. 처음에는 '공연'이라는 말이 의심쩍어 케이블카만 타겠다고 했다가, '성'하다는 말에 그만 마음이 흔들려 옵션 B를 선택하6만 원을 지불하고 말았다!


옵션에서 인센티브를 뽑아내야만 하는 3D 직종, 여행 가이드

가문비나무멋들어진 천산을 잘 올라가던 풍경구 전용 그린 버스가 산 중턱쯤에서 정차한다. 가이드의 안내로 도로를 건너 으슥하고 어수선 싸구려 냄 폴폴 풍기는 날림 천막으로 안내된다. 등 뒤로는 장엄한 만년설산 천산 풍경이 멀어진다.


30명쯤 되는 단체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좁고 둥근 천막 안에 붙어 앉았다. 여기가 무슨무슨 소수민족 전통 주거지란다. 몽고족 게르 같이 생긴 천막 안에 팝콘, 사탕, 면 튀김 등 알록달록한 주전부리 몇 종이 궁색하게 놓여 있다. 설탕과 기름, 먼지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이 차려놓은지 일 년은 넘어 보인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뜨거운 주전자를 들고온다. 전통 나이차란다. 와! 드디어 초원 유목민들의 진짜 나이차를 맛보는구나 하는 기대 한 모금, 윽! 그저 싸구려 분유 가루를 묽게 탄 설탕물이다. 이어서 수박, 볶음밥, 양꼬치(1인 1개)가 들어온다. 무슨무슨 민족이 손님을 환영하는 성의이니 맘껏 즐기되 낭비는 하지 말라고 한다. 수박 몇 조각과 볶음밥 몇 , 말라 붙은 양꼬치를 먹었다. 식욕이 확 달아난다. 한참 먹 중, 방금 전까지 음식을 서빙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기타를 메고 나타나 자기 민족 전통 노래를 불러주겠단다. 암만 봐도 다수민족인 한족 외모에 보통화도 유창하다. 민요를 한 곡 부르고 나더니 난데없이 우리 무슨무슨 민족을 이렇게 풍족하게 잘 살게 해 주신 모(毛) 주석에 감사하는 뜻으로 노래 한 곡 더 하겠단다. '모 주석 모 주석' 하는 보통화 노래를 부른다. 내돈내미, 내 돈 내고 여기 앉아있는 내 자신이 미워진다. '우리 중국 여러 민족들은 모두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아저씨가 나가고 이번에는 허리 굵은 여자 무용수가 들어와 그저 그런 춤을 선보인다. 이번에는 무슨무슨 소수민족전통 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모두 일어나 한바탕 즐겁게 어울리자고 한다.



우리 머릿속에는 유목민의 천막에 초대되어 그들의 환대를 받고 모닥불 가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춤추고 어울리는 영화 속 장면이 박혀있다. 그래서 이런 싸구려 상업극이 벌어진다. 내 돈으로 사야하는 가짜 환대, 가짜 친밀함, 가짜 전통 음식. 그나마 얼마많은 이익의 고리가 얽혀있는지 낸 돈만큼의 값어치에도 못 미친다. 스스로 자괴감이 들지 않을까.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 앞에 서고 이런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천산에는 오르지도 못했는데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3. 자연만이 남는다.


다시 긴 줄을 서고 차를 갈아타고 이미 너덜너덜 지친 채로 천산천지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협곡에 포옥 안긴 호수가 더없이 아름답고 평안하다. 설산 봉우리도 한층 더 가까이 보인다. 드디어 케이블 카도 탔다. 인간들의 얍삽한 돈벌이 수작에 상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옵션 포함, 이 모든 돈을 내고도 기꺼이 다시 오고 싶어진다.



돈벌이, 정치, 각종 모임, 사랑 등에 지쳤을 때, 이런 것들이 결코 오래가지도,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않음을 깨달았을 때 무엇이 남아있는가. 대자연만이 있을 뿐이다.
  -월트 휘트먼



우람한 협곡과 푸른 호수, 헐벗은 바위, 이따금 나타나 협곡 위를 거침없이 활강하는 검은 , 촛불을 밝히고 선 듯 키 큰 가문비나무들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일상의 자잘한 갈등과 분노,걱정을 잊게 하는 그 대범하고 진실한 풍경을.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그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그 평등하고 유유자적한 풍경을.


다시 몇 차례 줄을 서고 버스를 갈아타고 산을 내려왔다. 버스나 전기차는 그만 타고 차 창 밖 아름다운 가문비나무 그늘 사이를 느긋하게 산책하고 싶.


천산 코스를 끝내고 다시 우루무치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안. 오전에 버스 앞자리에 앉았던 젊은 여자 네 명이 산에서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오전에 앉았던 앞자리가 이미 다 찬 걸 보고 화가 났다. 왜 자신의 자리에 앉았냐며 먼저 도착해 버스 앞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아침에는 버스가 픽업하는 코스대로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앉은 건데 돌아갈 때도 그렇게 가야 하냐, 자기가 대절한 버스도 아닌데 고정석이 어딨냐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오간다. 옵션을 열심히 팔던 가이드는, 오늘 1일 여행 별 다섯 개 평점 그 가짜 점과 후기를 보고 같은 패키지 예약한 내일 손님들에만 신경 쓸 뿐, 별 다른 중재 하지 않는다. 버스 안, 이들의 하찮은 말싸움을 지켜보며 우루무치 시내로 다시 돌아왔다. 자연만 오래오래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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