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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31. 2022

나를 타, 낙타

둔황 명사산(明沙山)을 오르다

오전에 막고굴에 갔다가, 시내에서 양꼬치와 아이스 살구차를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와 늘어지게 한 숨 잤다.


해가 한풀 꺾인 오후 6시 30분, 사막을 오르기 좋은 시간, 택시를 타고 명사산으로 향했다. 입장료 55元(약 만 ), 도심의 사막 명사산은 액티비티의 천국이었다. 해운대 해변가 같은 들썩한 분위기 헬기, 열기구, 경비행기, 지프차, 모터바이크, 글라이더 등 사막 즐기는 여러 놀잇거리들이 넘쳐났는데 그중 으뜸은 슬프게도, 낙타였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별 흥미는 없었지만, 여러 체험들 중 가장 가격이 싸서 (40분, 100元,  2만 원) 나도 낙타타기를 선택다.



표를 끊고 낙타 체험장에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지린내, 구린내가 멀리서부터 풍겼다. 바닥은 모래 반 낙타 똥 반이었다. '낙타체험 때문에 아름다운 사막이 오염된다(위트립)'  글 실감 났다. 100 여 마리가 넘는 낙타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심드렁하게 앉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낙타 몰이꾼이 매표소에서 받은 번호에 해당되는 손님 5명을 데리고 와 각자의 낙타에 태웠다. 코뚜레로 앞 낙타의 안장 뒤 나란히 연결된 5마리의 낙타들이 한 마리씩 차례대로 몸을 일으다. 


둔황 박물관


낙타의 몸이 이렇게 크고 딴딴한지, 낙타의 혹 두 개가 이렇게 높다란지, 또 낙타타기가 이렇게 쉬운건지 타기 전에는 몰랐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동물의 등에 앉아 사막 등성이를 쉽오르자니 내 몸무게가 미안했다. 지인들에게 자랑할 여행지에서의 이색 체험 사진이 필요해 낙타 착취자들에게 지불한  돈 100元 이 부끄러웠다. 낙타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묵묵히, 앞서 걷는 낙타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모래 위를 꾹꾹 눌러 걸을 뿐이었. 중간쯤 올라왔을 때 맨 앞에서 걷던 낙타 몰이꾼이 낙타들을 세우며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손님 핸드폰의 셔터만 눌러주는데 20元(약 4,000원 )이란다. 길 중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앉아 다짜고짜 마스크를 벗으라며 소리치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도 있었는데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마구 찍어 놓고는 출구에서 그 사진을 팔았다.


 모래 둔덕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낙타가 다시 체험장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한 마리씩 차례대로 무릎을 꺾어 앉았다. 나에게는 평생 처음이지만 낙타들에게는 이미 수천번도 더 반복된 일인 듯했다. 내가 탔던 낙타의 볼을 쓰다듬으며 "수고했어, 고마워." 했더니 낙타가, 먼데를 바라보며 태어나서 한 번도 양치질 한 적 없는 초록빛 누런 이를 한껏 드러내고 크게 하품했다.


둔황 박물관,낙타는 오래 전 부터 인간을 위해 일해왔다


이 땡볕 아래 하루 종일 손님을 어 날라도 낙타는 그저 죽지 않 만큼의 물과 풀만 공급받을 뿐 일당 같은 건 . 내 노동의 대가로 식솔을 먹여 살리 소박한 소유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주말이나 휴가가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아프거나 다쳐도 큰돈 들여 치료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사직이나 은퇴도 없으니 죽음 외에는 노동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어쩜 그렇게 순하고 고분고분한지, 무릎과 허벅지는 또 어찌나 튼튼한지, 등 위의 혹 두 개는 마치 인간이 앉기 좋으라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좌석같다. 그렇게 태어났으므로 그저 평생 인간을 위해 일만 하다 죽는다.


투르판, 카레즈민속원


낙타는 그 고통의 의미를 알까, 매일매일 끝도 없이 반복되는 노동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낙타의 쌍꺼풀 진 크고 순한 눈은 평생을 비정규직 용접 노동자로 살아오신 내 아버지를 닮았다. 낙타의 튼튼한 뼈대며 탄탄한 근육은 평생 식당 주방일과 농사일, 집안 일로 다져진 시어머니를 닮았다. 그들도 끝없이 반복되는 노동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이유와 의미,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 어쨌든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둔황 공항 로비, 둔황의 상징 낙타


박지원이 경(북경) 가는 길에 그렇게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던 희귀한 생김새의 낙타, 니체가 그렇게 극복하라고 했던 무거운 짐, 순종, 인내의 낙타.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일주일을 버틴다는 낙타, 사막에서는 차보다 더 빠르다는 낙타. 오늘, 불가피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낙타를 이용한 일이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더불어 소, 닭, 돼지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다른 재미거리가 많은데도 낙타를 타는 일, 다른 먹을거리가 많은데도 동물을 죽여 먹는 일. 그렇게 오늘 나는 채식을 결심다.


둔황 야시장, 낙타 인형 기념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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