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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ug 02. 2022

이 미라를 보라

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을 가다

중국 장성의 성도, 우루무치 여행 3일 차.


오늘은 신장성박물관 갔다. 이틀 전, 개관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미리 예약을 안 한 탓에 인원 초과로 결국 입장 불가, 이틀 후인 오늘에야 들어간다. 입장료 무료, 아이 데리고 온 젊은 부모들이 많다.

 

메인 전시관이어야 하는 1층에는 국에 편입된 신장성의 발전사, 민족단결 홍보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딜 가나 석류네' 하며 대충 둘러보가, 2층 전시관에서 큰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신장 박물관, 중국민족단결의 상징 석류
홍산공원 정상, 석류가 주인공



멀리서 소문으로만 듣던 그들, 건조한 모래사막 아래 수천 년간 자연 보존된 미라들을 바로 눈앞에서 만난 것이다. 죽음의 전시,  이후의 육신이라는 실체가 훅, 하고 나를 습격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죽은 당시의 모습 거의 그대로, 썩지도 않고 바짝 말려진 그들의 육체를 대하자니, 기묘하고도 애잔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낯설지만 친숙하기도 했다. 시대와 장소, 인종은 다르지만, 곧 다가올 나의 죽음, 나와 같은 인간의 육신이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장군이었던 자도 있고, 생전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20대 미녀 미라도 있었다. 그녀의 시신은 고급 모직물에 정성스럽게 감싸져, 발에는 가죽 장화를 신고, 머리에는 따뜻한 양털모자에, 깃털 장식이 예쁘게 달려있었다. 시신 옆에는 사후 세계에서도 풍족하게 살기기원하는 듯, 밀 볍씨와 나뭇조각이 담긴 바구니까지 놓여있었다. 꽃 같은 나이에 덧없이 생을 마감한 아름다운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 누군가의 깊은 슬픔과 사랑이 느껴졌다. 생전의 얼굴 문신이 선명하게 남아있거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을 머리의 화살 구멍이나 금이 가 있는 미라도 있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려다, 투르판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출토됐다는 부부합장 미라 사진을 보게 되었다.

  

신장박물관 소장 당나라 시대 부부 미라

종합 인체 생리 공능과 법의과학이론 분석 검측에 근거, 남자 시신의 키는 165cm, 생존 시 키는 169cm-170cm, 체중 60.3kg, 연령 32세, 신분은 노동자, 폐결핵이 있었고, 중서(더위)로 인한 사망 추정.
여자 시신의 키는 151cm, 생존 시 키는 155cm, 체중 약 60kg, 연령은 70세 이상, 역시 노동자, 폐결핵이 있었고 뇌병으로 인한 사망 추정.



노동자 계급의 묘이므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부장품이나 문서는 발견되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실물 미라 대신 사진만 전시되어 있었다. 발굴 당시의 사진을 봐도, '소하공주' 미라나, '눈썹 긴 미녀' 미라 등과는 달리, 뒤집어진 배 모양 관도, 가면이나 깃털 등의 장식품도 없이 그저 소박한 수의를 입은 부부 모래 바닥 위에 나란히 누워있다. 30대 초반의 남편이, 투르판의 살인적인 더위(여름철 평균 기온 40도) 속에 일하다 먼저 죽었다. 그 후 40년이 흘러,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노동으생계를 이어오던 아내도 어느덧 할머니가 되어 청년으로 죽은 남편 곁에 묻혔다. 


영양실와 과로가 주원인인 폐결핵이 있었던 가난한 노동자 부부, 문맹이었던지 이들의 묘에는 이들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옥과 금으로 치장된 부귀영화의 흔적, 죽음을 이기는 로맨스, 장렬한 칼자국, 무덤까지 가지고 갈 만한 비밀의 문서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평생을 가난으로 인한 고질병에 시달렸고, 죽은 육신에까지 새겨질 만큼 징그럽게 일만 하다 죽었다. 다만, 젊은 날 부부의 예를 올리고 20년쯤 함께 살았던 동반자, 함께 아이를 낳은 가족을 위해, 40년 후 덤덤 약속을 지켰고 그 후로 천오백 년을 함께 모래 속에 묻혀 있었다. 없던 대학시절 만나 어느덧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평범한 노동자 부부인 나와 내 남편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티격태격하며 변함없이 함께 살고 계시는 순박 우리 부모님 이야기 같기도 다.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어떻게든 꾸준히 이어지는 이야기.


깊은 우물의 심연을 들여다본 듯 표현할 없는 먹먹함이 올라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사랑으로 산다.

모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너의 날이 길지 않으니 더욱 현재를 살고, 더욱 사랑하라.




*참고자료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창비, 2020

-NHK, KBS 다큐멘터리, <신 실크로드 제1편, 4천 년의 깊은 잠>,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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