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Jul 25. 2022

포도가 있어 살지요

불구덩이 투르판을 가다

오후 3시, 투판북역,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와락 달려든다. , 건식사우나에 들어온 듯 숨이 막힌다. 생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마저 느껴지는 열기다. 현재 기온, 43도, 지표면 온도 70도, 과연 화주(火州), 불의 도시답다.



역을 빠져나가려니, 또 신장마 문제, 외국인 문제가 발생한다. 우루무치 병원에서 발급받아 온 48시간 이내 핵산검사 결과지도 있고, 2020년 이후로 쭉 중국에 있었건만 내보내 주지를 않는다. 같이 내린 다른 승객들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역 내소리 없 햇볕만 무지막지하게 쏟아다. 그늘에 서 있어도 지열이 올라와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10분쯤 서 있자니 숨이 턱턱 막히고 정신까지 오락가락, 혹시라도 저 달궈진 아스팔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화상을 입으리라. 판 시내에는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불구덩이 도시를 떠나고만 싶다.


기차역 입구 방역 요원들, 경찰이 와서 외국인 출입 등록을 해야하니 계속 기다리라고 한다

 이국적인 외모의 젊은 경찰 하나가 졸래졸래 온다. 여권, 입국 날짜, 허가증, 핵산검사 결과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다.


-투판에는 뭐 하러 왔어? 순수 여행? 아니면 사진 찍으러?(의심)

-순수 여행 (정답)

-연길에서는 무슨 일을 해?(의심) 

-학생들을 가르쳐.(정답)

-누구를 가르치지?(의심)

-아주 어린 학생들, 초등학생 (정답)

-걔네 중국 학생들이야?(의심)

-아니야. 모두 한국 학생들이야. (정답)

-뭘 가르치지? (의심)

-한국어를 가르쳐.(정답)


 경찰의 질문에 모두 정답을 맞혔건만 나갈 수가 없다. 중국 학생이 아닌 한국 학생을 가르치므로 자기 소관이 아니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등록을 해야 한단다. 그 경찰은 여기저기 계속 전화해보지만 담당자가 낮잠이라도 자러 갔는지 올 수 없는 눈치다. 그가 통화를 마치고 여권, 머무는 호텔, 핸드폰 번호 등을 모두 꼼꼼히 기록으로 남긴 후 택시를 태워 보내준다.


택시 안 에어에서는 뜨거운 바람 힘없이 새어 나온다.  창을 열었더니 훅하고 뜨거운 바람이 밀려다.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건물들이 황톳빛이다. 



짐을 풀고 잠깐 정신을 수습한 뒤 택시를 타고 교하고성(交河故城)으로 향다. 오후 7시 30분, 폐허로 남은 의 열기가 난로 옆을 지나는 듯 아직도 후끈하다.



중국에서 가장 더운 사막 속 분지 지형, 연평균 강수량 약16mm(서울은 약 1,300mm), 반면 증발량은 3,000mm 이상(百度 참고), 타 죽을 것 같은 이 건조한 열기 속에 어떻게 살았을까. 이 더위 속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성을 짓고 외적을 방어하고 종교를 믿고 농사를 짓고 빵을 구웠을까. 흉노며 돌궐, 한나라, 당나라 등 잦은 외침 지배, 척박한 땅, 극한 기후,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 어떻게 런 곳 살아 남아 이렇게 찬란한 문명을 일구었을까.  


오후 9시 30분, 좀 선선해졌겠지 하고 잠깐 호텔 근처를 걷는다. 웬걸, 아직도 후끈하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얼굴이 타는 느낌이다. 아직도 41도, 여전히 땀이 줄줄 흐른다. 이곳은 어두운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다음날에는 완전 짜부라져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다. 어제, 대낮도 아닌  늦게 교하고성을 다녀오고 해진 후에 잠깐 걸었을 뿐인데 더위라도 먹은 건지 온몸이 쳐진다. 식욕도 없어 계속 달달한 음료수와 물만 들이켠다. 이름도 타 죽을 것 같은, 화염산火焰山)이니 천불동이니, 저 불구덩이 바깥은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다. 호텔방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하루 종일 빈둥빈둥 밀린 중국 드라마를 본다. 잠깐 방을 청소하러 온 아줌마가 더위에 나가떨어진 관광객 모습이 익숙한지 빙긋 웃으며 "투판 정말 덥지?" 한다. 마침, 호텔 방 침대 위에 투루판의 랜드마크, 화염산 사진이 있어 화염산에 가지 않고도 화염산 인증샷을 찍다.



판 특산물, 포도 배달시다. 한국 마트에서 한 송이 오천 원 넘게 주고 사 먹던, 줄기 말라비틀어진 시큼털털한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상 이상의 당도에, 육이 그렇게 아삭하고 탱탱 수가 없다. 이 포도가 주는 지극한  미각의 행복 앞에서는, 그 어떤 고급 수재 사탕이나 케이크, 인의 마카롱도 이류 음식이 될 뿐이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판 사람들이 이 척박하고 고단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만년설산 천산산맥에서 녹아내린 물이 이 열기에 증발되지 않고 마을까지 흘러들게 한 천재적인 지하수로 시스템 카레즈 외에, 이들에게는 포도가 있었다. 마당에 시원하고 아름다운 그늘을 리우, 열기에 지친 이들에게 당과 분을 공급하며 건포도로 만들면 사시사철 어디서나 낭과 함께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포도. 이들에게는 포도가 있었기에 우리 관광객들의 염려만큼, 삶이 그리 고단하지 않았다. 삶을 버뎌내고 감사하고 즐길 수 있는 그들 나름의 기쁨과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투르판 사람들의 생존과 행복 비결, 카레즈와 포도


 이 숨 막히는 열기를 버티게 하는 내 인생의 포도는 무엇인가. 퇴근길의 노을, 주말 늦잠, 호수공원 가득 핀 연꽃들, 연기 잘하는 미남 배우, 남편이 (본인은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산책길에 사준 라떼 한잔, 사춘기 아들과의 찐한 포옹과 뽀뽀(물론 아들은 거부하지만), 고집 세고 개성 강한 딸의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엄마야'라는 말, 문득문득 조우하는 감동의 문장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들, 삶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들.


포도의 당도를 더하는 판의 이 불구덩이 열기, 감사하며 즐겨보리라.


포도 자연 건조장 벽면



이전 01화 자연만이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