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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22. 2022

늦은 밤 걸려온 전화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간혹 늦은 밤 전화가 울릴 때가 있다.


사유는 여러 가지이다. 이를 두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는 데 첫 번째는 학교 또는 업무 때문이다. 이 경우는 나에게 선택권 없이 노트북을 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별 수 없다. 두 번째는 학생 문제이다. 학생이 경찰서에 있어서, 학생이 아파서, 기숙사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든 밤에 전화가 오곤 하였다.


처음에는 밤에 전화가 오는 게 불편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퇴근 시간(물론 이 시간에 맞춰 퇴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은 4시 50분으로 모든 일이 끝났고, 내일 하루를 위해 쉬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기에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조절하기로 하였다. 밤에 학교 또는 업무 때문에 오는 전화들 중 당장 시급한 건 보통 없다. 발령 후 얼마 지나고 나는 시급한 것과 내일 아침에 들어도 되는 연락을 구분할 수 있었고 나를 위해 조절하였다.


하지만 정말 구분할 수 없는 것은 학생 전화이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 학생들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철렁거린다.


처음에는 맡았던 반 학생들이 남다른 학생들이라 어른들이 하지 말라 하는 것들을 좋아했고 그 이유로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늦은 시간 전화가 오는 건 대체로 담배, 술, 폭행 등 여느 어른들과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전화가 와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보호자에게 대신 연락드리는 것, 내일 학교에 가서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의 전화들은 처음에만 깜짝 놀랐을 뿐 시간이 흐르니 무뎌졌다. 전화받기 전, 오늘은 어떤 학생일까? 하는 의문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나도 이 시기만큼은 긴장감에 보내는 시기가 있으니 바로 수능이다. 이 시기에 전화는 아직까진 딱 한 가지 사유였다.


선생님, 친구가 죽었어요.


"……. OO아, 지금 어디야?"

"친구 장례식장이요."


이 전화를 받으면 일단 멘탈이 나간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던 입이 닫힌다. 아이는 운다. 보고 있지 않지만 온몸으로 울고 있다. 그냥 듣고 있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해준들 그 아이의 마음이 위로가 될까? 어차피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들 뿐이다.


"친구가 떨어지기 전에 전화했는데 내일 보자고 하고 끊었어요.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 제가 그냥 끊었어요. 선생님, 어떡하죠."

"저랑 그렇게 끊고 다른 친구한테 전화해서 저 잘 부탁한다고 했대요."


울음인지 말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쏟아내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이 어둡고 어려운 터널 속에서 전화 하나만을 붙잡고 버텨내고 있다.


그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다.


"OO아, 충분히 슬퍼해. 하지만 네 잘못은 아니야. 알았다면, 지켜줄 수 있었을 거야. 몰랐잖아."


첫 번째, 지금 느끼고 있는 슬픔은 잘못된 게 아니니 충분히 슬퍼하도록 둘 것. 두 번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세 번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사고 같은 일이라는 것.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보통 내 잘못이다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나 같은 놈이 슬픔을 왜 느끼지?로 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떡해. 힘들겠다.'라는 말도 좋겠지만 나는 선생님이니까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보다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이럴 때, 나는


딱 한 가지를 주의한다. 어둠에 휩싸이지 않는 것.

아이의 감정이 나에게 몰려와 같이 울고, 슬퍼하고, 힘들어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하도록 정말 노력한다.

우울증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때를 골라보라면 남들 또는 내가 기쁠 땐 기쁘지 않지만 남들 또는 내가 슬플 때는 너무 슬퍼지는 점이다. 하루 종일 벌어진 일을 생각하고 내 일처럼 생각하고 어둠 속 깊이 빠져 들게 되는데 그걸 끊어내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그래야 내가 누군가를 슬프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혼자서는 힘들다. 그게 조절이 됐다면 우울증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래서 충분히 주변에 안전 장치들을 마련해놓는다. (가족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기 하기 등) 그러면 나 혼자는 안 되어도 그 순간 이겨낼 수 있다.


우울해도 가르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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