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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y 11. 2022

건물주 이 팀장이 퇴사하지 못하는 신박한 이유


@pixabay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 표현이 방송에서도 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에 같이 근무했던 이 팀장은 바로 그 '건물주'였다. 목 좋은 요지에 상가 두 채를 소유했고, 세 개째를 지어 올리는 중이다. 

 

 외부에서 만났다면 롤모델로 삼을만한 인물이었다. 

 그 옛날 N 잡러의 삶을 살았다. 회사 퇴근과 동시에 다른 일을 시작했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다시 출근한 적도 있다 했다. 밖에서 5천 원 넘는 것을 사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EBS 프로그램으로 해외여행을 대신했다.

 둘째 태어난 지 백일도 안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 해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샀는데 바로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었다. 처음으로 거금을 손에 쥔 그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고 연달아 성공했다. '사람이 아무리 잠 안 자고 일을 해도 돈이 돈 버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며 이미 오래전 경험에서 진리를 깨우쳤다.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가 주 수입원이 주도 그가 들어가기만 하면 오른다 했다. 오죽하면 아침마다 옆 부서 부장이 우리 팀으로 출근해  '오늘은 뭐 사야 되는데?"하고 물었을까. 지금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꿈꾸는 그것, '파이프라인 구축'을 그 당시에 끝내 놓은 그는 재테크의 선구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와 한 팀에서 근무를 했다는 거다. 회사 업무보다 중요한 일들그에게 너무 많았다. 상가 관리와 건축, 주식 시장까지. 어지간한 사람이면 한 가지도 벅찰 일은 그는 배우자에게도 맡기지 않고 혼자서 다 처리했다. 사무실에 앉아 핸드폰으로 공사현장 CCTV를 구석구석 감시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그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다른 전화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말투로 "몇 평, 어떤 타입을 원하시는 거죠?" 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한참 있다 나오면서는 "바로 옆 빵집서 커피를 파는데, 또 카페를 물어보네. 아휴. 나는 또 양심상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어떡하지?" 전화 브리핑을 한다. 그래, 고민거리다. 그런데 너무나 차원이 다른 고민을 매번 공유받는 팀원들은 저것이 고민일까 자랑일까 하다가 이런 삐뚤어진 마음이 드는 내가 나쁜가까지 생각이 미친다.


 회사는 그에게 메인이 아니다. 윗사람 눈치 보지 않는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업무가 밀려도 개의치 않는다. 집에 가서까지 회사 일이 생각나는 우리는 그저 부럽다. 자꾸 자리를 비우니 독촉 전화는 자리를 지키는 팀원들에게 튕겨 온다. 일 처리에도 거침이 없다. 상사 결재는 물론  외부 심의를 받아 처리하는 건도 과감하게 생략하고 진행한다. 본인이 책임지는 거니까 거기까지는 그렇다 하는데, 이제 거꾸로 그 팀장은 그렇게 처리했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깐깐하게 구느냐는 항의가 들어온다. 동일 업무를 하는 팀원들은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슬슬 화가 난다.


 웃으면서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김 팀장이 질문인 척 직언을 날린다. "급으로 용돈 할 필요 없잖아요. 회사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하고 주식하고 하지, 뭐하러 회사 다니는 거예요? 건강보험료 많이 나올까 봐 회사 다닌다는 말이 진짜예요?" 그런데 이 팀장이 "아니야...회사 못 그만두는 이유가 있지... 하면서 말을 흐린다." 그 광경을 보면서 건물주 이 팀장도 말 못 할 무슨 사정이 있구나 싶어 그 뒤로는 소인배처럼 굴지 말자 다짐을 했다.


 그 뒤 회식자리에서 이 팀장은 거나하게 취해 이미 몇 번이나 들은 그의 재테크 신화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N 잡러 시절을 지나 상가 관리의 어려움 파트를 거의 마무리하며 그가 이야기한다. '그래도 회사를 그만 두지를 못해. 상가 주인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걸 임차인들이 선호하거든. 빡빡하게 굴거나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내가 회사를 못 그만둔다.'


아. 그런 박한 유가 있었구나.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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