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계성미니멀 May 20. 2022

돈이 많아서 그래

 그녀가 우리 층에 왔다는 것은 눈보다 코로 먼저 알 수 있다. 진한 화장품 향기가 난다 하면 어김없이 지나간. 방금 고데기로 만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에 진 화장을 하고 사무실에서도 늘 하이힐을 신고 있는 그녀는 높은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걸어오고 리액션이 좋고 잘 웃는다.


 회사 소문을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듣는 나에게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자주 들린다. 

 그녀는 젊은 직원들의 워너비다. 신규직원의 드림카라는 수입차를 몰고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손에 들고 매일 8시 59분에 사무실 문을 통과한다. 그 시간에 주차장에 자리가 있나? 하는 의문은 주변 세차장에 월 3회 세차와 주차를 묶은 고가의 정기권을 몇 년째 이용한다는 것을 듣고 해소가 된다. 명품 가방을 종류별로 갖고 있다는 그녀가 본인은 미니멀 라이프라고 주장해서 직원들이 말도 안 된다며 웃으니 진지하게 "아니야, 나 색깔별로 가방 딱 한 개씩만 있어"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녀의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던 같은 팀 직원이 미용실 원장을 추천받아 예약까지 하고 갔다가 가격을 듣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본가는 재건축 이야기만 나오면 언급되는 강남의 아파트이고 본인 소유의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산다는 그녀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단다.


 앞에서 깔깔거리며 걸어가는 그녀 뒤로 90년대생 직원 둘이 서서 대화를 나눈다.

"역시 밝으셔."

"돈이 많아서 그래. 경제적인 여유에서 묻어 나오는 밝음이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고 만다. 게 어린 직원들 어떻게 벌써 알고 있는 거지? 

@ pixabay

 경험칙상 그랬다.

 꿈에서까지 진상 고객을 응대하며 괴로워하다 잠에서 깼다면서, 정말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 고등학생 딸애 학원비 때문에 할 수 없이 다닌다는 H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회사 생활을 견있는 나를 포함한 다수의 직원과는 회사를 대하는 태도의 결이 무언가 다른 사람들에겐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꼭 우리 회사뿐만 아니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참 편하게 사회생활한다 싶은 직원들은 회사 월급이 아니어도 생계에 지장이 없으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밝은 그녀는 아무래도 규칙적인 생활 루틴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게 틀림없다 했다. 어쩌면 저렇게 싹싹하고 한결같이 친절할 수 있을까 감탄했던 그 알고 보니 비트코인과 부동산으로 크게 돈을 벌고 취미 삼아 회사를 다니는 것 같다 했다. 통 큰 상사의 표본이던 그분은 부인이 유명 프랜차이즈 학원 원장이라 했으며 툭하면 휴직을 내 도대체 왜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직원의 남편은 병원을 운영했다. 입사 이래 일관적으로 일처리가 엉망인 직원은 그 아버지가 건물을 몇 개나 소유하고 있는데 아들이 건물 관리한다고 나설까 봐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한단다. 건물주 이 팀장도 회사에서 얼마나 여유 있던가.


 2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며, 또 비슷한 세월만큼 사회생활한 주변인들에게 보고 들어 최근에야 겨우 깨달은 것을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어린 직원들은 어떻게 바로 알았을까. 대단하다.

 "요새 젊은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똑똑할까" 하는 내게 엄마가 답한다.

 "그게 다가 아니지. 아직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가 지금 엄마의 나이가 되면 나 역시 그때의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거라 할까. 아니면 의 젊은이들은 정말 현명했구나게 될까.



이전 01화 건물주 이 팀장이 퇴사하지 못하는 신박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