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대에서 10평대로20평을 줄인 이사를 앞두고'작은 집'으로 검색을 하니 주로 20평대가 나온다. '20평대 후반은 작은 집이라고 하지 말자'며 소인배마냥 혼자 욱한다.
20평 대도큰 집은 아닐 게다. 그러나20평대와 10평대는 공간 구성 자체가 다르다.
20평 대도 30-40평대와 같이방, 화장실, 다용도실, 베란다등으로 짜여 있다. 다만 큰 집에비해그개수가 적고크기가작을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10평대 집은 거실과 주방,방과 거실의 경계가불분명하다. 방 외에 베란다,다용도실, 펜트리 룸 같은 알파 공간이없다. 같은 아파트라도20평대나 30평대와는 달리 원룸, 1.5룸, 투룸으로 불리는 이유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 거실과 연결된 부엌,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를 둔 옛 베란다 공간, 작은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지금 작은 집에는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쓸 것 같거나, 혹시 몰라 버리지 말고 놔둬야 할 것 같은 물건을 위한 공간은 없다.지금 당장 사용하는 것들, 가끔이지만 분명히사용하는 것들만두기에도 빠듯하다.
작은 집에 식기세척기를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이 설명한다."원래 빌트인 제품으로 나온 게 아니라 상판이 있습니다. 설치하며 뗐으니보관하다가 이사 갈 때 갖고 가시면 됩니다"언제 이사를 갈지, 그때식기세척기를 가져갈지 알 수 없다. 다음 집을 위해 이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상판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바로 수거를 부탁드린다.가전 가격에 포함되어있다며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집에서필요하지 않은물건을 보관하고 있을 공간은 없다. 망설임은없다.
식기세척기와 싱크대상판 사이 만큼의 거대한 상판을 보관할 공간은, 이 작은 집에는 없다
의류 건조기에 신발을 말릴 때 사용하는 내부 선반도설치한 날 바로 비운다. 이사 전에도 건조기를 오래 사용했지만, 그간신발을 말린 적은 단 한 번. 선반은 가볍지만 부피가 커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새건데', '원래 포함된 부품인데', '혹시 급하게 신발을 말릴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지고 있으려면 건조기 안에 넣어두고사용할 때마다 선반을 뺐다 넣었다 해야 한다.매일 그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다.당장 비운다.
10년 넘게 사용한 800리터 냉장고는작년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멈췄다. 5일 후에나 방문이 가능하다는기사님은 대략의 수리비용을 알려주며 새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마침 소비자 마음대로 문 색상도, 내부 구조도 고를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가전이 유행이다. 외관도 딱 나의 스타일이다. 그러나 인기가 많다 보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단다. 결국 평범한 400리터 대의 냉장고를 구매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냉장고에 한번 들어간 건 잘 먹지 않는 가족 덕에 밑반찬은 거의 없고작은 김치통 몇 개, 우유, 계란, 음료수, 과일과 야채, 물, 그리고 냉장고 냄새 제거를 위해 커피 찌꺼기나사과 껍질을 담은 스텐그릇이 들어있다.장을 본 날은 그득하게찼다가,며칠 지나면 휑하다. 꽉 차 있으면비우느라,텅 비어 있으면 채워 넣느라 분주한 것이 무한 반복이다.
별 불만 없이 1년 넘게 사용하고 있었는데어느 날 바나나를 넣은 스텐 냄비, 쌈채소를 넣은 스텐 바트, 저녁에 먹을 보냉팩에 든고기이렇게 세 가지 더 넣었다고 냉장고 내부가정리도안되고 꽉 차버려영 심기가 불편해진다.
안 그래도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냉장고 안에 과일 주스, 식혜, 우유, 음료가 많은데 여름이 오니 매일 끓여 마시는 물과기운 달릴 때 마시는 이온 음료도 냉장 보관을 하고, 음료수 종류도 더늘은것이 원인이다.
냉장고 크기가 작으니 선반 높이도 낮다. 가운데 선반은 반을 접어 넣어 안쪽에 김치통을 두고, 높이가 확보된 앞쪽에 음료수들을 놓았는데 몇 개 들어가지 않는다. 개봉한 음료는 세워두고 개봉 안 한 것은 눕혀야 했다. 세워둔 음료수를 치워야 김치통을 꺼낼 수 있어 사용하기도 불편하고, 몇 개 넣지 않아도 전면이 차 있으니내부가 꽉 차 보인다.어느 공간에서든 하나를 꺼내기 위해 또 다른 두 개를 꺼내야 하는 것, 불편하고 귀찮다.
두 개였던 선반을 하나로 줄이고 높이를 확보했다
냉장고를 노려보다 가운데 선반을 뽑아버린다.
이럴 수가. 몹시 편하다. 음료수를 모두 세워놓기만 해도 한갓지고 넓다. 개봉하지 않은 것은 안쪽에,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을 바깥쪽으로 둔다. 밑반찬이 없고 음료수가 많으니선반 하나면 충분하고 키 큰 음료수를 보관하기 편하게 높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1년 넘게 불편하고 복잡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선반 높이만 조정했지, 원래 있던 선반 하나를 뽑아 버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반 하나 뽑았을 뿐인데 나에게 딱 맞는 냉장고가 된다.사용하기도 한결 편하고 눈도 편하다.원래 있던 거라도 내게 필요 없는 것은 비워 내고 내 필요에 딱 맞게 쓰니, 나를 위한 맞춤 가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