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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l 22. 2022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장기근속중

@두산백과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히키코모리. 

 몇 안 되는 친한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나는 히키코모리가 적성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말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안다.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니라는 것.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 회사를 다닌다는 것, 그것도 장기근속 중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집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스텐을 반짝반짝하게 하는 것이 즐거운데. 생계형임을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벽만 보고 내 일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출근 직전 신은 양말 한 짝에 아주 작은 구멍이 나있다. 같은 걸로 한 짝만 갈아 신고 보니 색깔만 같고 왼쪽은 발목양말, 오른쪽은 덧신형 양말이다. 둘 다 덧신형으로 갈아 신고 주야장천 신고 다니는 운동화를 신고 출발한다. 

 실리콘이 있어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양말은 이미 발바닥에 가있다. 5분도 안 돼서 왼쪽 아킬레스건 부분이 따끔거린다. 새 운동화도 아닌데 뭔가 하고 보니 신발 안쪽 덧대어진 천이 벗겨지면서 그 안의 딱딱한 것이 맨살에 계속 닿으며 상처를 냈다. 발바닥에 있던 양말을 끌어올려보아도 몇 걸음뿐이다. 아프다. 신발을 꺾어 신기 싫어서 미련하게 더 걷다 보이미 피가 맺혔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실내화로 갈아 신고 밴드를 붙이니 편하다. 상처가 났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오는데 또 그 통증이다. 밴드가 너덜거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어 마침 지나고 있던 대형마트에 들어가 목이 긴 양말을 산다. 밴드를 고쳐 붙이고 양말을 갈아 신으니 요새 말로 세상 편하다.


 회사에 돌아오고 나서야 마트에는 신발도 파는데 어째서 양말 살 생각만 했나 싶은 거다. 안쪽이 벗겨진 신발을 버릴 생각 하지 못하고 상처가 안 나게 양말만 바꿔 신으면 된다고 생각한 모습이 참 오랜 기간  한결같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회사를 떠나지 못한 채 상처받을까 보호장비를 갖추는 나 자신 비슷하다. 그렇게 상처가 난 채로 실내화로 갈아 신고서는 통증을 잊고 있었다는 게, 밥 먹는다고 다시 신발을 신는 게, 주말 이틀 동안 회사에서 벗어나 쉬며 망각했다가 월요일 또다시 똑같이 회사로 출근하는 모습 같다. 신발을 꺾어 신는 것조차 고민하느라 상처를 키웠다.


  만 40이 되며 이제 건강을 위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자각한다. 이런 나를 응원하고자 언니가 보내준 것이 이 신발이다.

 냉장고를 새로 사면서 검색부터 주문까지 점심시간 단 15분이 걸린 나에게 신발은 가장 사기 어려운 물품이다. 발이 큰 데다 약간의 무지외반이 있어 신어보고 발 끝을 꼼지락거려보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까지 한 후 구입해도 막상 외출을 하면 발 아치 부분이 꺾일 것 같다. 그런데 언니는 쇼핑몰에서 신발을 주문해 보내준단다. 신세계다.


 우려와 달리 배송 온 운동화를 신는 순간 탄식마저 나온다. 발바닥이 이렇게 푹신할 수가. 발등을 누르는 부분도 부드럽다. 그런데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작았다. 확 작았으면 미련이 없었을 텐데 그 약간에 푹신한 바닥을 포기할 수가 없다. 늘어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기로 한다.

 

다 보니 정말 조금씩  늘어난다. 편해지니 마다 옷은 바뀌어도 신발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숙원사업처럼 발 편하고 예쁜 신발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런데 이 운동화가 생기자 아주 쏙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도 가진 신발 중 가장 편하니 그 뒤로는 신발을 단 한 켤레도 사지 않았다.

@pixabay

 하지만 그 아쉬움은 계속해서 남았다. 많이 걷거나 피곤한 날에는 그 약간의 작음이 발을 조이고 힘들게 했고 엄지 왼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화상이라도 입은 듯한 통증이 왔다. 그런데도 집에 와서 신발을 벗어두 쉬고 나면 나는 또 다음 외출에 어김없이 그 운동화를 찾아 신는 것이다.


  독서실에 몇 달을 틀어박혀 지내며 최종 면접에서 몇 차례 떨어 후 지금의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일단 다니면서 다른 곳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자체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사 20년 차를 내다보는 현재까지 계속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만 하면서 용기를 내 원하는 일을 할 생각은 못하고 장기근속중인 거다. 


 마치 아주 살짝 작은 운동화가 아쉬우면서도 막상 새 신발을 찾을 생각은 안 하는 것처럼. 이제 익숙해졌다 했던 그 신발에 맨살이 찢겨 피가 나도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살 생각은 못하고 양말만 사서 신고 있는 거처럼. 나는 여전히 가끔씩 회사가 힘겨우면서도 매일매일 출근하고 또 나도 모르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신발이 아예 맞지 않았다면, 신자 마자 못 견딜 만큼 아팠다면 다른 신발들을 버렸을 때처럼 과감 수 있었을 다. 그런데 다른 신발들에 아파하다 이 신발을 신는 순간 편했고 이만한 신발을 또 찾으려면 힘들겠다 한 마음은 결국 다른 신발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게 했다.


 아마 그 시기 나는 더 이상 공부하기가 버겁고 을 거다. 어디라도 적을 두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 게다. 하지만 사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겠다던 그때 의지와 달리 나는 지금의 회사라는 신발을 신고 나서는 것이 없었을 때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히키코모리가 적성인데도 장기근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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