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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ug 08. 2022

MBTI 앞자리가 E에서 I로 바뀌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MBTI 테스트를 해 봤다. 뒤에 세 자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앞자리는 고민할 것 없이 E였다. 지금 나의 앞자리는 역시나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I다.


 입사하면서 서서히 I로 바뀐 것도 같다. 외부에도 내부에도 완전한 내 편은 없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됐고 나의 선의와 호의는 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고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회사에서 말수가 줄었고 행동이 작아졌으며 아무 탈이 나지 않을 주관과 감정이 배제된 중립의 말들만을 앞뒤를 계산해했다. 

  사회생활 근 20년 차. 이것은 나의 MBTI앞자리를 바꿔놓는데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게다.


 살면서 올 모든 불행을 한방에 맞았다 싶었던 사건은 보다 극단적이고 혁혁하게 영향을 끼쳤다. 내향적인 사람에서 히키코모리로 순간 이동했다고 할까.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넘어서 원래 있던 관계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끊겼다. 내가 베풀고 이해하고 배려해야만 내 옆에 있던 사람들과 관계는 에게 더 이상 일방적으로 베풀 여력과 이해할 에너지와 배려할 관대함이 사라지자 당장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내가 끊겠다 결심하기도 전이었다. 나는 이제 아주 가끔 내게 다시 여력이 생겼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연락을 차단하고도 전혀 궁금하거나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았고 어떤 면에서든 갚아야 할 것이 남았다면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끊기지 않았으리라.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했다 싶은 사람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오히려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혈액형, MBTI, DISC, 그 외 각종 심리테스트, 성향 테스트들 신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제는 더 이상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또 급진적으로 성격의 변화를 맞이한 나는 그러한 테스트를 하면서 내가 다중인격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도대체 내가 이쪽인지 저쪽인지 대답하기가 어렵다. 마음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답이라는데 순간 양쪽이 다 떠오른다. 과거엔 이랬고 지금은 이랬는 데를 넘어 회사에선 이런데 다른 데서는 이런 경우도 있고 친한 사람들과는 이렇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이거고. 이런 '상황'에 심하게 좌우된다. 전혀 신뢰할 수가 없다.


 나 조차도 나 자신을 모르겠는데 나의 행동에 '의외다',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심지어 '말도 안 된다'라는 말을 앞뒤로 붙이며 당신이 생각했던 틀에서 내가 요만큼이라도 벗어나는 것 같으면 마치 자신의 편협함을 벗어난 내가 잘못인 것 같은 멘트를 날리는 이들이 있다. '내가 섣부르게 잘못 판단했구나'는 사고의 옵션에 없는 그런 사람들은 피하고 싶다. 


 성격은 다르지만 아주 하찮은 한 가지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이나 심지어 미래를 예지 하는 것들이 많다. 이마가 좁으니 참을성이 없지, 손 보아하니 고생 한번 안 하고 살았네, 손가락이 긴 걸 보니 딱 게으르네, 젓가락을 멀리 잡으면 결혼하고 멀리 산다더라, 손가락 어떤 게 길면 아들을 낳는다더라와 같은 글자 그대로 허무맹랑한 것들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있다.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의 길이를 가지고 엄지발가락이 길면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둘째 발가락이 길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던 아이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고 있었는데 옆에서 자기 발과 자기 오빠 발을 번갈아 들여다보던 친구가 말한다.

"나는 엄지발가락이 길고 오빠는 둘째 발가락이 긴데 우리는 어떡해?"


 그 어떤 자그마한 것으로 나의 성격을 판단해 놓고 너 왜 지금 '안 어울리게' 이러냐는 사람을 보면 발가락 생각밖에 안 난다. 

 발가락이나 까딱까딱하며 성심성의껏 무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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