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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n 22. 2023

낯선 이의 시선이 느껴질 때

 언제부터인지 어디서부터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하철 출구 계단을 내려가다 약속장소 방향이 아님을 깨닫고 아차 하며 돌아서는 순간 동시에 휙 돌아선 남자. 그제야 알게 됐다.


 사람들이 많은 쪽을 찾아다니며 일부러 걸음을 늦춰보아도 빨리 해 보아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내 뒤에 있는 남자의 존재는 공포였다.


 영화에서는 쫓아오는 나쁜 놈을 지하철 문 사이로 아슬아슬 들어가며 잘만 따돌리던데 몇 번을 탔다 내려도 그놈도 함께였다.

@pixabay

 숨은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릿속 피가 조금씩 말라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진정하기 위해 지하철 의자에 앉자 이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하필이면 많이 늦을 것 같다는 친구와 어디에서 내려야 가장 빨리 만날 있을까를 문자로 주고받는데 손이 떨려 계속해서 오타가 났고 머릿속은 점점 하얘진다. 손에 꼭 쥔 핸드폰만 보면서도 맞은편 그놈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쫓아오냐고 드세게 물어봐 보라는 조언은 내게 버겁다. 강하게 한번 노려보라는 말에 처음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네가 뭘 어쩌겠냐는 약간의 비웃음을 머금은 표정. 눈도 깜빡하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는 눈빛에는 일반인과 다른 광기가 보인다. 그 찰나 내 두피와 머리카락 사이에 존재하는 그 숨구멍들에 한기가 느껴진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역.

 지하철 문이 닫힐 때를 노려 재빨리 내려보지만 역시나 내 뒤에 있다. 내 다리라는 느낌이 사라진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뒤에서 엄청나게 강한 충격이 온다. 그대로 계단에 고꾸라진다. 일부러 내게 몸을 세게 부딪치고는 미안하다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 순간부터 내게 이성이란 것은 없다. 그저 무섭고 두렵다는 공포심뿐이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 앞에 지나가던 남학생 팔을 붙들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누가 나를 쫓아오니 도와달라 정도의 기본적인 설명 따위도 없다. 그저 살려주세요 소리 밖에 안 나왔다.

 

@pixabay

 그 순간부터 그놈은 미친놈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며 이리 오라며 팔을 뻗어 나를 잡아채려고 한다. 남학생이 자기 뒤에 있으라며 내 앞으로 서자 미친놈에게서 쌍욕이 터져 나온다. 님학생 티셔츠를 꼭 쥐고 쉬어지지 않는 숨을 쉬어 보려 애를 썼다. 이걸 놓치면 바로 죽을 것 같다.

 막아선 남학생에게 네가 뭐냐면서 계속해서 나를 끌어내려 휘적거리는 팔은 괴물이 따로 없다. 마치 접두사처럼 쌍욕을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붙여 쓴다. 저 X을 내놓으라고 지치지도 않고 난리 치는 모습이 남학생 어깨 뒤로 보이는데 호러다.


밀리지 않는 남학생에게 이제는 저 X이 계속해서 자기를 쫓아오고 쳐다봐댔다며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거니 비키고 가란다. 아. 사이코가 이런 것이었다.

 이 분이 지금 무서워하지 않냐며 남학생이 비키지 않자 너 나와보라며 왜 나를 쫓아다니냐며 또다시 욕을 한다. 너같이 쥐방울만 한 X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며 처음 들어보는 욕들을 퍼붓는다. 세상 살며 이렇게 다채로운 욕을 다 들어보는구나. 이렇게 큰 쥐방울이 대체 어딨냐.


 그 당시에도 이런 여유 있는 생각을 하며 그를 비웃을 수 있는 멘털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20대 초반의 나는 이 미친놈이 뭐라도 꺼내서 휘두를까 봐, 저 광기 어린 팔이 나를 잡아채는 데 성공할까 봐 남학생의 윗옷을 꾹 잡은 채 음절 하나하나 각각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 미친놈에게 쳐다봐서 죄송하다 말하고 말았다.

 한참을 더 이어가다 BGM이 페이드아웃되듯 멀어지는 쌍욕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를 붙잡은 남학생이 몸을 숙여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친구가 도착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곳을 지나쳤단다. 하얗게 떠 공포에 질려있는 얼굴은 10년 지기 친구가 나를 보고도 나임을 알아채지 못할 형상이었다.


 티셔츠 가운데 부분이 쭈글쭈글해진 채 멀어지는 남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얼른 가서 붙잡고 살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긴장이 풀려버린 내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잘못 내려갔던 계단에서부터 친구와 만나기까지의 한 시간에서 조금 모자란 시간.

그 한 시간의 파장은 컸다.


그 뒤로 오랜 기간 그쪽 방면은 가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수시로 공포에 시달렸다.

낯선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두려움으로 심장이 뛰었다. 길을 걸을 때를 포함해 그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면 다른 이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사람과 두 번째 눈이 마주치면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까 버스에서 본 사람이 길을 걷는 내 주변에 있는 걸 발견하면 숨이 가빠졌고 등에서 땀이 났다. 그가 나와 다른 방향으로 트는 걸 확인할 때까지 손발이 후들거렸다.


그나저나 그때 나를 구해준 그 노란 머리 남학생.

그 와중에 다행히 운동하는 것 같은 건장한 사람으로 잘 골랐다며 친구는 안도했다. 고맙다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지면 광고라도 내서 그날 그 시간 OO역에서 미친놈으로부터 20분가량이나 나를 막아서 준 그분을 찾아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그 광고지를 보고 그 미친놈이 연락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지 못했다. 그 한 시간에 난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외상 후스트레스장애였고 치료가 필요했었는데 그것을 모른 채 긴 시간을 두려워하며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게 길을 가다 미친놈을 만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 강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낯선 이의 시선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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