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시된 도형이 육각형이 아닌 이유를 묻는 문제에 아이는 또박또박 "변이랑 꼭짓점이 네게이기 덕분입니다"라고 적었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은 듣는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니까 쓰지 말자고 했던 것 같다. 대신 '덕분에'를 쓰면 좋다고 했더니, 이렇게 예쁘게 답을 적어 놓았다. 이건 무조건 정답이다.
어른의 배려심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 미치지 못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 속이 쓰리지만, 남 탓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미래를 좌우하는 현재의 선택은 어렵지만 이미 지난 일에 대해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기는 쉽다.
이러니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책망하고 탓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너 때문이야'는 1차원이라 차라리 반박하기 쉽다.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서아주 자연스럽게 상대를탓하고현재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이미 상대가한 행동을 비난하는 책망의 화법. "~했어야지".
자주 들린다. 아무 때나 어떤 화제에서나 툭툭 나온다.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지금 그 말을 할 때냐 당장 소리치고 싶은 것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오늘 하루 이 표현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얼마나 자주 썼는지 돌이켜보자. 깜짝 놀랄 만큼 많을 것이다.
아침에 유난히못 일어나는 배우자에게 "그러니까 어제 유튜브 보지 말고 일찍 잤어야지"
신발을 신으면서야 준비물이 생각났다는 자녀에게" 주말에 마트 갔을 때 이야기했어야지!"
옆 부서에서 부탁했다며 서류를 들고 온 직원에게"그 자리에서 안된다고 말을 했어야지"
점심시간 식당에 자리가 없다고 하니 일행에게"미리 줄부터 섰어야지"
이런 건 약과다.
인간관계로 고통스럽다는데 "네가제대로 거절을 했어야지","단호하게 딱 끊었어야지"라고 속을 후벼 판다.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돌리는 마법의 화법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집부터 샀어야지", "함부로 빚내지 말았어야지", "월급만 모으지 말고 재테크를 잘했어야지", "주식 같은 건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지" 하며아무짝에 도움 안 되는 도사 같은 소리를 지껄인다. 조언이란다. 이미 지나서 하는 말, 누가 못하는가? 그 당시 선택의 기로에서 그 누가 알았단 말인가. 모든 선택의 잘못은 네게 있고, 나는 알고 있었다는 화법.
더 심한 것도 있다. 병원에서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사람 앞에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면 병원을 가봤어야지. 건강검진을 해마다 받았어야지!"라고 말하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까를 자다가도 일어나서 생각할 사람에게 "네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으면 미리 발견했을 거 아니냐'를 따져 묻는 폭력. 심지어 이건 마음이 아파서위로의 말이라고 했단다.
이미 상대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선택과 행동을 후회하며 자신에게 더없이 가혹하게 굴고 있을 게다. 너무 괴로워서 다른 사람 입을 통해 '아니야, 그때는 다 몰랐지 뭐', '다 알면 우리가 신인가',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자'라는 정말 손톱 끝만큼의 희망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그런 상대에게 던지는 -했어야지-는 이제 좀 털고 일어나 볼까 하는 사람의 무릎 뒤 움푹 들어간 부분을 장난이라며 툭 치는 것과 같다. 장난으로 치지만 다리가 훅 꺾이며 다시 주저앉게 되는 바로 그 부분. 상대는 그곳을 정확히 가격 당한 것이다.
아이가 적은 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덕분입니다' 밑에 지우개로 지워진 다른 말이 있다. 아마도 아이는 익숙한 '때문입니다'를 적었다가 아, 이건 나쁜 말이지, 하고서 '덕분입니다'로 고쳤던 듯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이 정도 고민은 한다.
당시 상대의 고민을 함께 하지 않았고, 지금 상대의 고통을 똑같이 공유하는 게 아니라면, '때문입니다'를 지우고 '덕분입니다'를 골라 적었을 그 정도 시간만큼의 고민은 하자. 적당한 위로나 조언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 입 다물고 있길간곡히 부탁드린다. 제발, -했어야지 화법은 참아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