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부 시작하자"
해야 할 일들이 브레인스토밍 하듯 마구 떠오르는 마법의 문장인가 보다. 분명 방금 전까지 늘어져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면서 분주히 돌아다닌다. 시작은 상냥했으나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며 결국 악 물은 이 사이로 '이제 좀 하자고'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는 홍삼 젤리를 씹어 먹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임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기 전에 이미 약효가 간당간당하다.
겨우 앉았다 했는데 문제 두문장도 읽기 전에 화장실에 간단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똥이 마렵다면서 만화책까지 챙겨 화장실을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겨우 진정하고 재개했는데 아이의 앉은키는 점점 작아진다.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거리면서 책상에 엎드리더니 잠시 후에는 아예 의자에 드러눕는다. 공부는 도대체 누가 만든 거냐면서 동물과 사람의 중간 개체가 낼만한 소리를 내며 포효한다.
유체이탈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몸은 앉아 있지만 영혼은 다른 곳에 있다. 고개의 방향은 내 쪽이지만 눈동자는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손에 겨우 연필을 쥐어주고 영혼을 불러오니 이제 교재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분노를 담아 힘을 주어 그리니 종이가 뚫리면서 뒷장에 연필 자국이 난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를 문제집의 옆면을 손가락으로 연신 괴롭히니 문제집 상태만 봐서는 100 회독은 한 걸로 보인다.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깊은 단전에서부터 눌러 놓고 있던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결국 "야!" 하는 큰소리가 난다. 그제야 문제를 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창의적인 불만이 마구 나온다. "곱할 것을 왜 나누지. 처음부터 곱했으면 됐잖아" " 여기에다가 왜 잉크를 쏟아서 안 보이게 하냐고. 엄마 같으면 이거를 쏟으면 참 싫겠다 그치?" "여기 멀쩡하게 있는 거를 왜 90도로 돌리래. 그냥 내버려 두지" "얘랑 얘랑 똑같이 생겼는데 왜 다르게 읽어야 하는데" "아까는 a가 '에'라면서 근데 왜 지금은 '아'래" 이제는 내가 책상에 몸져누워야 할 것 같다.
아이를 앉혀놓고 공부를 가르치면서 화가 나는 것으로 친자확인을 할 수 있다는 슬픈 우스갯소리. 절대 자기 자식은 가르치면 안 된다고, 꼭 외주를 줘야 한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면서, 학원에서 수업을 하면서 얼마나 관대하고 유머러스하게 수업을 이끌어 갔던가. 아이들이 잘 따랐고 성과도 혁혁했다.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붙였어요, 이제야 공부 습관이 붙었네요 하는 손편지들까지 받아봤던 나인데, 내 아이를 가르칠 때는 왜 이리 화가 나고 이렇게나 힘이 부치는가. 대관절 성과라는 것은 볼 수 있긴 하는 것인가.
이렇게 달래고 저렇게 구슬리고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하고 결국은 화를 내도 여전히 시작은 어렵고 과정은 고되다.
교육에 확고한 줏대와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고, 원하지 않더라도 공부를 해야만 하니 괜히 일찍 시작해서 그 기간을 길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일단 놀아라 했는데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이제 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한다. 안 해서 그렇지 시작하면 잘하겠지 했던 믿음이 마음 깊은 곳에 들어 있었던 것일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의자에 앉아있는 것 자체를 힘겨워하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야 하는 나는 더 힘들다.
게임할 때는 마치 의자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진득이 앉아 초롱초롱하게 눈동자를 빛내면서 하는 녀석이 왜 공부를 하라고 하면 5분을 넘기지 못하며 눈에는 초점이 없는가. 그 수많은 축구선수들의 국가와 팀은 물론 몇 년도에 어느 팀에 있었고 이후에 어디로 이적했는지 몇 골을 넣었는지를 꿰고 있으면서 알파벳으로 된 이름을 읽지를 못한다. 온라인 축구게임을 하면서 이름이 아니라 그 작은 얼굴 그래픽 사진으로 지금까지 선수를 구분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천 마리 가까이 되는 포켓몬의 이름을 기본부터 1 진화 2 진화까지 구분하여 척척 외우고 있는 놈이 교과서 영어 단어 10개를 외우라는데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서 울고 있다.
그래, 나도 공부하기 싫었고, 지금도 일하기 싫고 노는 게 좋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가 간단 말이다.
그러나 물려줄 건물이나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오 전수할 기술도 없다. 내가 그랬듯 내 아이 역시 오로지 자기 능력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도 명확한 이 시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놀아라, 앞으로 먹고살 걱정할 필요 없다' 할 수 없는 재력과 '공부 따위 괜찮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신념으로는 방법이 없다.
우리 제발 평화롭게 딱 기본만 하자. 사. 이. 좋.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