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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Jun 02. 2022

치매와 건망증, 단박에 구분하기

 전화를 했을 때 이제 막 외출하던 참이라 했다. 

 이따 통화할까 하니 괜찮다 는데 갑자기 목소리에 급박함이 느껴진다. 나가야 되는데 전화기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여서 이방 저 방 찾아다니고 있단다. "지금 블루투스로 전화하는 거야?" 했더니 아니란다. "그럼 손에 들고 있겠지"했더니 "어머어머어머어머어머 나 왜 이러니" 하는데 그것이 전혀 놀랍거나 낯설거나 신기하거나 걱정되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뭐 그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인 다. "나 정말 치매 아니야?" 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전화기 보면서 이게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하면 치매래. 어디 뒀나 못 찾는 거는 건망증이야. 나도 그래. 전 국민 공통이여"하고 태연하게 답하는 경지에 올라 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스킨 바르고 들고 나갈 커피 내리고 수분크림 바르고 아침 차린다. 그런데 몇 개 되지도 않는 화장품을 어디까지 발랐는지가 자꾸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번엔 준비 다 했다고 앉아서 쉬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 눈썹을 안 그렸다.

@pixabay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도 헷갈다. 

 피씨를 시작으로 업무를 하기 위해 필요한 로그인만 다섯 차례. 다섯 개의 비밀번호를 똑같이 맞춰놓았는데 주기적으로 변경하라 하니 처음에는 #을 한번 붙이고 그다음에는 #을 두 번 붙이며 반복을 한다. 그런데 다섯 개의 변경 주기가 다르다. 국 지금 어떤 건 샵이 한 개, 어떤 건 두 개다. 매일 아침 로그인을 하면서 꼭 한번 이상은 비밀번호를 다시 넣어야 한다. 한 번에 다섯 개 다 통과하면 스스로 대견할 지경이다.


 비밀번호.. 이게 참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핸드폰에 깔려 있는 어플만 해도 몇 개인가. 나는 어플이 많은 것도 싫어서 주기적으로 지우는 사람인데 꼭 필요하다고 놔둔 것만 해도 이미 많다. 다 똑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하고 싶은데 어떤 곳은 특수문자를 넣어야 한대고 이것은 대문자가 있어야 한대고 한 곳은 심지어 #은 쓸 수가 없대고 어떤 사이트에서는 최소 길이가 유난히 길다. 그럼 또 원래 쓰던 거 뒤에 샵을 붙였다가 별을 넣었다가 앞자리를 대문자로 바꿔봤다가 앞에 글자를 뒤에 반복해다. 이러니 비슷비슷한 비밀번호가 또 여러 개. 


 쇼핑할 때 가격 비교해서 최저가 사이트에서 구매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게 보통일이 아니다.

 최저가 사이트라고 나온 사이트에 접속하니 아이디가 기억이 안 난다. 겨우 기억해내니까 휴면 계정이란다. 휴면계정을 활성화하려면 비밀번호를 넣으라는데 비밀번호는 또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써놓았을 텐데 하고 비밀번호 적어놓은 메모장을 열어보니 하필 또 이 사이트는 없다. 비밀번호 찾기를 누르고 본인 인증을 문자를 몇 번씩이나 받아가며 겨우 비밀번호를 찾았더니 이번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니 변경을 해야 한단다.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꾹 참고 변경을 시도한다. 늘 쓰던 것으로 하니 여기는 #이 안된단다. *을 넣어 겨우 만든다. 가까스로 로그인을 해서 구매하려고 하니 타 사이트를 경유해서 들어오면 할인이 안된단다. 결국 포기한다. 이래서 비싼 줄 알아도 한두 개 정해진 사이트에서만 물건을 구매한다.


 온라인만 어려운 게 아니다. 빵을 사려는데 통신사 멤버십 할인이 된단다. 멤버십 앱을 여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자동 로그아웃이 되었단다. 로그인하려고 하니 또 비밀번호 오류란다. 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분명 쿠폰까지는 받았는데 받은 쿠폰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다. 럴 때 뒤에 사람이 선다. '그냥 해주세요.' 이렇게 되는 거다.


 학교 다닐  평일 런치세트를 먹으면서 통신사 할인을 받고 쿠폰을 사용하면 패밀리 레스토랑주 저렴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그 당시 쿠폰도 안 쓰고 할인도 안 받고 그냥 '쌩으로' 주문해서 먹는 어른들을 보면 오히려 무언가 가진 자 같고 우리처럼 이렇게 가격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 멋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보니 그저 어려웠던 게다. 미리 쿠폰을 찾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앉은 이블에 놓인 플라스틱 판에는 인스타 친구 인증을 하라는데 인스타 계정이 다.

"할인카드 있으세요?"

 "아니요"

"적립해드릴까요?"

"아니요"

"영수증 필요하세요""

 "괜찮니다"  

아저씨들만 이러는 줄 알았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

@pixabay

 이런 것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그렇다고 그 정도 푼돈 할인 안 받아도 괜찮아하면서 쿨한 것도 아니다. 할인받으면 좋은데 어렵고 그 어려운 걸 참고 하자니 너무 귀찮에너지가 부족한 거다. 이러니 영 멋지지도 않다.


 손재주가 없고 기계가 어려운 나는 의외로 기계를 잘 다룬다. '대충 눌러보면 알지' 하는 타고난 사람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데 다른 누구에게 물어보고 대신해달라 부탁을 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보다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사용 설명서를 정독하고 기를 쓰고 사용 방법을 익혀서 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은 이런 거 몰라"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직원 부르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기 때문에 몇 번 삽질하더라도 꾸역꾸역 결국 혼자서 해낸다. 그 덕에 아직까지는  회사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 귀찮게 하지 않고 알아서 생활하 심지어 히키코모리라 비대면 주문을 한다.


 지만 가게에 들어오려다 키오스크만 있다고 하니 바로 돌아서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넘길 수가  없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가족의 모습도 나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오늘 키오스크 앞에서 '홈'버튼 반복해서 누르시는 아주머니 뒤에 섰다가 더 긴 옆줄로 옮겼다. 그분도 뒤에 누가 서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마음이 급해지고 메뉴가 제대로 안 읽히고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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