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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Aug 19. 2022

냉파 위한 냉장고 재고 관리, 몹시 쉽고 게으르게

 치지 않고 오르는 물가. 장을 보며 과일과 채소 가격에 와우 소리가 나온다. 고깃집에서 야채 더 주세요 하면 딱 두장을 주는 그 상추를 샀는데 일주일 뒤 냉장고에서 하필 대파 밑에 가려져 가장자리 검게 변한 채 의식을 잃은 듯 흐물거리는 상추 나온다. 이런.

 

 이번엔 냉장고 서랍 바닥에서 데군데 회색으로 변한 소고기 팩을 발견고 만다. 얼려다 맛없어진다 선함을 보장한다는 냉장 서랍 칸에 넣었거늘. 육성으로 탄식이 나온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킁킁대며 회색 부분을 잘라 본다. 익히면 괜찮을까 싶어 굽는다. 그래 놓고 먹으려는 애는 말리고 어른만 먹어본다. 단 한입에 회생 불가능한 상태임을 인정하고 차라리 아까 버릴걸 설거지만 나왔구나 하며 퍼한다.


 이 상황에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장고 재고 관리.

 냉장고 파먹기만으로 장보기 없이 한 달을 버텼다는 간증 글을 보 의지가 창천한다. 냉장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파악해 식재료만 버리지 않아도 성공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그걸 몰라서 안 하고 있었던 게 아다.

 그동안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가 되짚어 보자.

  

의욕이 최고조 때 엑셀 파일에 냉장고 재고를 일일이 입력한다. 냉장고를 왔다 갔다 하며 키보드를 누르다 지친다. 겨우 마무리했는데 그다음 뭐해먹을까 하는 순간 오자 차분히 앉아 엑셀 파일을 열어 볼 여유가 없다. 결국 록달록 셀에 색깔까지 입혀 놓은 그날의 노동은 안녕.

 

편의성을 위해 손으로 써야겠다며 다이어리에 쭉 적는다. 냉장실 냉동실 구분까지 해서 잘 적었는데 회사 물품 재고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다이어리를 들고 냉장고 앞에 재료를 뒤적이며 체크하는 것이 귀찮아 몇 번 하다 말게 된다.


 이제 생활 밀착형 동선을 짜야한다며 노란 패드지에 펜으로 눌러 어 냉장고에 마그넷으로 붙여 둔다. 다 먹은 건 밑줄을 긋는다. 드디어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게 오래가기 어렵다. 마음먹고 한번 쓸 때는 괜찮았는데 끊임없이 장을 본단 말이다. 많이 양보해서 일주일 한 번씩 새로 본 것을 적으려니 붙여놓은 종이 칸이 부족하다. 새 종이에 남은걸 옮겨 적고 오늘 산걸 또 적는다.  거 아닌 것 같은데 시간이 훅 간다. 몇 번 하다 새로 산 것들을 기록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된다.


 우리가 포기하게 되는 이유:  데이트.

 그때그때 냉장고 재고를 파악하려면 장 볼 때마다, 소진할 때마다 업데이트가 필수다. 며칠 전 산 양파가 아직 냉장고에 있는데 오늘 마트에 가서 양파를 또 담는 것은 방지하자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목표가 아니던가. 그런데 매번 장 본 자잘한 식재료를 하나하나 적거나 입력하려니 결국은 포기하게 되는 거다.


 그러나 냉장고 재고관리의 핵심 역시 업데이트다.


앞에 적은 방법  모두 거친 후 정착한,

시작도 업데이트도 간편한, 게으르지만 효과적인 나만의 냉장고 재고관리  공개

 

온라인 장보기와 스마트폰이 익숙하다면 스마트폰 갤러리에 '냉장고' 앨범 하나 추가하자.

주문내역을 캡처해 앨범에 넣는다.

다 먹은 것은 표시한다. 반만 남았거나 몇 개 남았는지 중간에 기재해도 좋다.

사진 한 개의 음식을 다 먹었다면 그 사진은 삭제한다.


직접 가서 산 것들은 어찌하는가!

영수증을 찍어 앨범에 넣고 먹은 것은 줄을 긋는다. 다 그은 영수증 사진은 버리자.


가끔씩 열어 체크만 해주는 것으로 냉장고 재고를 아주 게으르게 관리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장을 볼 때도 핸드폰만 열면 냉장고 재고를 확인하고 쇼핑할 수 있어 딱이다.


스마트폰이 싫거나 오프라인 쇼핑이 주라면 실물 영수증으로 관리한다.

장 본 영수증을 냉장고 앞에 붙인다. 먹은 건 줄을 긋는다. 다 그은 영수증은 버린다.  장 보러  때는 영수증을 챙겨가면 편리하다.

 

 철저한 재고 파악을 통한 냉장고 파먹기의 장점과 필요성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우리의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 냉장실과 냉동실 안의 모든 것을 다 꺼내서 하나하나 검열하고 목록을 작성을 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만으로도, 결심한 것도 아닌데 이미 부담스럽다.


 살림은 가능한 쉽게 하자. 게으른 방법일수록 더 좋다. 가장 최근에 장 본 것부터 캡처해보자. 이번 주말에 마트에 갔다 온 영수증부터 붙여보자. 쉽지만 간단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할만하 기존 재고도 관리하고 싶다면 보이는 거 몇 개 찍어 앨범에 넣거나 적어서 붙이면 끝이다.


냉장고 재고 관리, 몹시 쉽고 게으르게 시작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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