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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성미니멀 Mar 15. 2024

해야 하는데, 필요한데, 몹시 하기가 싫을 때는

하지 않는다

마흔.

나의 신체는 신기하게 마흔을 기점으로 젊은이와 그렇지 않은 시기로 양분되었다.


마흔을 기점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면 흰머리가 보였고 가까이 있는 글자가 먼 곳의 그것보다 확연히 잘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발이 시리다는 것을 경험했다. 찬 음료를 마시면 몸속까지 추워져서 언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가 한여름이거나 실내가 아주 따듯할 때만 아이스를 고르게 되었던 것도 그 기점을 막 지났을 때였다. 무거운 것을 들면 힘든 게 아니라 화가 나기 시작했던 것도 마흔 즈음이었고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무엇보다 마흔이 넘자마자 나의 체력이 뚝 저하됐음을 일상에서 빈번하게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운동이란 것은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임을 나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깨닫고 심지어 경각심까지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사건에도 맞닥뜨리게 된 시기이다. 


 원치 않았지만 잘 알게 되었다.  지금도 알고 있다.

 이제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견갑골의 통증이 나를 괴롭히고 장시간 앉아서 근무했던 시간에 더해 글을 쓰겠다며 집에서까지 앉아있기 시작하며 장요근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복부에 통증까지 느껴지기에 반드시 내게는 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pixabay

아는데 너무나 가기 싫은 거다.

아무리 열심히 가도 뻣뻣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진짜 그대로 앉아있고 싶은 몸을 이끌고, 배가 고픈 것을 지나 허기가 져 뱃속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에 편히 앉아 천천히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할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훌륭한 출석률을 보이며 1년을 채웠다.


그랬더니 나의 몸은 여전히 뻣뻣하다. 운동을 가지 않으면 너무 찌뿌둥하고 심지어 화가 난다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운동을 가서 스트레칭 말고 근력운동을 시키면 왜 이렇게 힘든 걸 해야 하냐며 자꾸 앓는 소리가 나는 거다. 아무리 들어도 외워지지 않는 요가 용어를 구령 삼아 엎드려뻗쳐를 했다가플랭크를 했다가다시몸을납작하게만들었다가몸을 일으켜런지를했다가다시또플랭크를 했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너무나 힘이 들어 그저 누워있고만 싶어 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몇 번 한다고 이야기해 주지. 내 딴에는 이미 충분히 많이 했는데 시지프스의 돌마냥 계속 계속하면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힘이 들고 강사의 눈을 피해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거리며 왜 이렇게 시간이 흐르지 않나 이러고 있는 거다.

@pixabay

마음이 편안한 상태로 해야 한다는 요가시간.

6시 퇴근해서 7시 요가를 가야 하는 나는 이미 에너지는 바닥이 난 상태로 쫄쫄 굶으며 나오거나 아무거나 막 들이마시고 나와야만 그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요가에서 돌아오면 잠깐 밀려 놓았던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의 일들을 이미 그사이 잔뜩 쌓여있는 집안일을 해야 하는 거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라 배가 고프다는 성화 속에 손만 겨우 씻고 정신없이 저녁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하다 보면 순식간에 에너지가 증발하는 기분.


요가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신체의 개운함을 얻어야 하는데 신경은 곤두서고 체력은 휘달리니 요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며 어떤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까를 궁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앞서 말한 이벤트로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때도 요가를 다녀와서 체력이 달리고 지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고 지쳐 신경까지 곤두서는 지경은 아니었단 말이다. 물론 지금도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사이 나의 체력은 더 후져지고 나의 에너지는 더 적어졌나 보다. 

지금의 나는 이제 배가 고픈 것마저도 몹시도 참기 힘든 지경이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는 것도 빠릿빠릿 쳐내기 버겁고 속도는 느려졌으며 퇴근 후에 그 상태로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드는 날까지 생겼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요가 가기 싫다 요가 가기 싫다 이래놓고 나는 힘들게 접수에 성공한 요가를 놓지 못했다.

너무 가기 싫어서 중간에 환불까지 고민고민했지만 중간에 빠지더라도 그래도 가자며 나를 달래고 또 달랬다.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요가. 은근슬쩍 선착순 접수에 실패해서 요가를 하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볼까 생각도 했지만 하필 나의 손가락은 이번에는 빨랐다. 그런데 나는 이번엔 수강 확정을 위한 결제를 할까 말까 이러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다.


너무 가기 싫다. 너무 가기 싫다. 염불을 외우며 요가를 가던 나의 지난 몇 달을 돌이켜보니 요가 직후에 문을 나오면서 등이 좀 펴진 것 같다 하는 찰나의 개운함 뒤에 집에 온 순간부터는 잔뜩 밀린 일을 마주하고 정신없이 움직였던 기억만 나는 거다.

@pixabay

이렇게 길게 길게 길게 핑계를 대봤자 결국 하나다. 분명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아는데 하기 싫다. 너무나 하기 싫다. 요가 대신 걸으면 되고 홈트를 하면 되지-이 말은 결국 이제 운동 안 한다는 소리라는 걸 알기에 진짜 겨우겨우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가기 싫다. 


잠깐 쉬어야겠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가능한 거라도 해야지.

하기 싫으니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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