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실무자의 머릿속
개인적으로 디자인 잡지를 구독하듯 매번 찾아 읽지는 않는다.
그저 비정기적으로… 어쩌다 들린 서점의 진열대를 둘러보며 여러 잡지를 뒤적거리다, 간혹 마음이 끌리는 주제를 다룬 경우가 있을 때 한부 챙겨 와- 시간이 날 때 편한 마음으로 넘겨보는 정도.
이번에도 그렇게 사무실에서 언제부터 굴러다녔는지 모를 디자인 잡지 하나가 눈에 띄어, 오랜만에 주워 들고 대충 넘겨보던 중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됐습니다.
월간 디자인 과월호에 실려 있었던 편집장님의 서문이었다.
사용성이나 문제해결의 도구로서의 디자인도 좋고, 심오한 철학 내지 경제적 가치 창출의 일환으로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근원적이고 불가해한 아름다움을 추구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
가장 아름다움에 가까워야 할 디자이너조차 어쩐지 이 단어(아름다움)를 입에 올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는 그 글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디자인에도 트렌드나 유행이 있고,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흐름이 15년, 20년 전의 내가 처음 디자인에 뜻을 두었던 그때와는 또 다름을 피부로 느낀다. 그 당시 상상도 못 했던 스마트폰을 비롯한 태블릿을 현재는 누구나 사용하며, 그럼에 따라 출판시장이 죽었고, 그 시절보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갈수록 높아졌으며- 그 결과, 패키지 디자인에서도 보다 환경을 생각한 포장을 추구하고, 과포장을 지양하게 되었고… 유튜브 같은 개인 매체가 활성화되며 공중파의 파급력이 약해지고… 모든 것에서 사용자의 편의성이 대두되고…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인도 점차 바뀌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 요즘은 어느 디자인 아티클을 보더라도
‘디자인이란 비단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쁘면 다 될 거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
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며 심미성 보다 중요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일침 한다. 물론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나 또한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심지어 틈만 나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일부 극단적인 부류들.
이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에 심취하다 못해- 왜곡된 방향으로 받아들인 채, 아름다움과 심미성을 단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심지어 일부 디자인 커뮤니티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디자인을 과연 전공까지 해야 하는가’하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토론되며, 혹자는 거기에 시간 낭비 하지 말고 ux/ui학원부터 등록하라고 추천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글쎄… 당연히 비전공자도 전공자보다 디자인을 더 잘할 수 있으며, 디자인이 심미성만을 추구하는 분야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 교육과 시간이 성숙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경험해 볼 만한 시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 나름이니까. 같은 시기를 보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위와 같은 이야기를 폄하하듯, 쉽게 내뱉는 사람들의 생각만큼 그 시기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자, 또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흘렀지만…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사용자, 문제해결, 가치. 다 좋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언제나
“묻고 더블로 가!”
그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고, 디자인이 그저 이쁜 것을 만드는 작업이 아닌 것도 사실. 하지만 그래서 나온 결과물은 어쨌거나… 그럼에도 결국, 이뻐야 한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디자이너’라고 스스로 불리길 원한다면 심미성을 놓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위에서도 잠시 이야기했듯, 요즘 같은 세태에 심미성을 자꾸 언급하면 오히려 같은 (일부 극단적인) 디자이너들이 역으로 디자인 공부를 안 한 사람 취급을 하거나… 탐탁지 않아하기도 한다. 씁쓸한 일이다.
덮어놓고 이쁘고 화려한 결과물을 도출하자는 말이 아님에도… 사용자, 문제해결, 가치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님에도, 이단으로 취급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럴 때면 속에서 울컥 한마디가 치솟는다.
‘아니,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는데?’
디자이너가 이쁜걸 안 찾으면 누가 찾아야 하나…
아, 이 글의 시작에 언급했던 월간디자인의 서문에서 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인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와 제시카 월시 또한 이미 몇 해 전 공동 기획한 전시에서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제기했었다는 것.
어쨌거나 현재 이와 같은 디자인 시류에 염증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받는다. 아름다움, 심미성에 대한 담론이 과거에 비해 빈곤해졌다는 사실은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모양.
간혹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혼자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은 생각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