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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OB Jul 25. 2023

뭔가 세상에 없는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해요.

디자인 실무자의 머릿속




디자인 의뢰를 받으면 어떤 의뢰에서라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청사항이 있다.


“뭔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필요해요.”


“트렌디하지만, 기존에는 없던 새로움을…”


“우리의 새로운 서비스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이…”


분명 이 글을 읽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모두가 동일한 PTSD를 벌써부터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새로움’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문제다.

솔직한 개인적 견해를 먼저 깔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렇다. 이미 이렇게까지 다변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제 와서 새로운 것이란 웬만해서 없다.(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과학적 발견은 잠시 논외로 치도록 하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있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새롭게 보일 뿐이지.


내가 염세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실 새롭다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그런데… 다들 그렇지 않은가? 이미 어지간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다 알고, 느껴봤다. 어디서 막 새롭다고 떠드는 것들이 생겨서 기대심을 가지고 갔다가 막상 경험해 보면…


‘아… 이런 거. 이런 느낌.’


싶을 때가 많지 않던가. 사회적인 대란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도, 먹태깡도, 새로운 맛집들도, 새롭다고 항상 광고하는 수많은 광고영상들도 막상 직접 경험해 보면… 전혀 몰랐던, 전혀 예상치 못한 '진짜'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도…


‘이걸 또 이렇게 시도했네. 이런 건 좀 신선하다.’


정도면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와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있다면 기존에 알던 무언가에서 일부를 살짝 뒤튼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통념적 혹은 관성적으로 통용되던 무언가에 아주 약간의 변주.

심지어 이런 경우라고 할지라도 이 또한 알던 것에 알던 변주 방식이다. 단지 조합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어느 대상에 어떤 변주를 가했는가에 대한…


‘와! 언빌리버블! 진짜… 이런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 정도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없었다고 단언해 본다. 정확한 사례가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언젠가 보았거나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본 느낌이 대부분.


자, 애플의 로고를 예로 들어보자.
1970년대의 옛날이라고 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사과의 실루엣을 한 이미지가 새로웠을까? 그러면 퍼스널 컴퓨터가 새로웠을까?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그 당시에도 익숙했다. 단지 퍼스널 컴퓨터에 생뚱맞은 사과로고. 그 조합, 그 매치가 그 당시의 시대상에서 색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엉뚱한 조합마저도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하다.



혹시 영화 [토탈이클립스]를 본 적 있는가?

실존했던 17세기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의 일생을 전기화한 영화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품이고, 이미 20년도 전에 나온 영화지만 한 번쯤 보는 것을 권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전성기의 미모를 뽐내며 비주얼적인 충격을 선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이 영화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는데, 세기의 천재로 주목받던 시인 ‘랭보’ 조차도 그 시기에 벌써


‘더 이상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어.’


라면서 스스로 방황과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절필을 선언하는 부분이다.



자,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이 새롭다는 것 역시 '주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이 개념은 사람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자가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지 않던가. 그러니까 모두의 경험이 다르기에, 그 새로움을 느끼는 포인트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또 예를 들어보자.

태어나서 초콜릿을 처음 먹어본 두어 살짜리 아기에게는 세상 충격적인 ‘새로운’ 맛일 수 있지만, 이미 질리도록 초콜릿을 비롯한 합성착향료에 절여질 만큼 절여진 20대가 넘은 성인에게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초코맛인 것처럼.


그렇기에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우리는 세상에 없던 '진짜'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오히려 그가 오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그런 것이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모두에게 새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리 없다. 그 생각 자체가 오만이다. 마찬가지로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에게 정말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강요하는 것도 어리석은 요구라고 하겠다.


자, 아무튼 이렇게 모두가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냥 마음 가볍자고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고 그런 디자인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여기서부터가 관건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디자인적인 전략'이다. 조금 더 냉정해지고,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 새로울 것인가.

무엇을 새롭게 느끼게 할 것인가.

어디까지 새로울 것인가.


명확히 해야 한다. 어떤 대상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지. 그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그 일반적인 그 통념을 뒤틀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변주에 대한 다양한 조합과 정도를 적정한 수준으로 맞추는 조율. 그것이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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