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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OB Jul 04. 2023

감각에 대한 흔한 착각 - 인지편향에 대한 고찰

디자인 실무자의 머릿속




그런 이야기 들어보지 않았는가? 남자들이 많이 하는 흔한 착각.


‘나 정도면 뭐… 좀 괜찮지 않나?’


디자인을 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인지편향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안목이 혹은 자신의 감각이… 꽤 준수하다는 생각. 혹은 평균보다는 높은 감도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이 그렇다. 또는 자신은 언제나 기발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다는 착각 또한 여기에 속한다.


이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전문적인 디자인툴을 다루지 못해서 - 본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없을 뿐, 어지간한 디자이너 보다 본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 더해 더욱 슬픈 사실은 이 착각은 남녀도 노소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하지 않던가? 근자감은 병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진행했던 인지편향에 대한 실험의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안목과 감각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는 이와 관련된 수많은 격언을 알고 있지 않던가.


너 자신을 알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물론 간혹… 별다른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타고나길 센스 있게 태어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진짜들은 생각보다 소수. 생각보다 자연 미남, 미녀가 적은 것처럼.


하지만 추상적인 분야라서 객관화가 힘든 것일까?

이상하게도 본인의 감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경험상 이와 같은 경향은 의외로 어느 분야건 간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나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특히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얼핏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성공한 사업가, 기업의 임원, 교수급의 지식인, 특정 분야의 권위자, 고위 공무원 등.


“내가 이런 거 한두 번 해본 줄 알아?”


“이미 나는 비슷한 분야에서 충분히 성과를 내봤고, 돈도 벌고 있어.”


“내가 감각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저번에 화장품 사업이 대박 났는데, 내가 보니까 이것도…”


“내가 옷 만드는 사람이잖아. 디자인은 내가 좀 알지. 브랜딩도…”


아마도 이미 특정 분야에서 성공적인 길을 밟아본 경험이 주는 자신감과 에고가 그들의 시야를 좁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그 경험과 연륜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 환경이 변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겪었던 그때의 경험과 지금의 경험이 같을 수 없고, 지금 시도하는 것을 둘러싼 현재의 환경이 과거의 성공 케이스와 같은 시대, 상황, 여건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 본래의 전문분야가 해당 디자인분야가 아닐 경우.

그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하겠다. 항상 해당 디자인 분야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현업 디자이너처럼 살아온 것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착각을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본인의 한정된 경험과 고집에 갇힌 독선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어느 집단에서 던 특히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신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 확신이 흔히들 말하는… 이른바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사실 위에서 말한 ‘남자들의 흔한 착각’은 귀여운 정도다.

본인이 훈훈하다는 착각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 잠시 ‘왜 저래.’ 싶은 마음에 미간을 좁히는 정도일 뿐, 큰 문제가 일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안목이나 감각에 대한 문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당장 오늘내일 중으로 가시적인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남자들의 흔한 착각’과 달리 이 경우에는 결국 물질적인 낭비나 손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다시 만들어지는 서울시 브랜딩. 이 프로젝트는 성공사례로 꼽힌 역사가 없다. 언제나 결과발표가 나면 매번 욕을 먹지 않던가. 거기에 들어가는 세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이 내가 디자인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식 중 대국민 투표와 같은 방식에 회의적인 이유 중 하나다. 사람 100명을 모아 놓고 물어본다면 아마 80명 이상은 본인의 감각과 취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기준에서’ 혹은 ‘내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기에 주저함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내 기준에서’가 문제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한다면, 그들은 말할 것이다.


“아, 취향 존중 좀요.”


큰일 날 소리. 좋은 디자인을 얻기 위해서는 ‘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디자인에 조예가 없는 비전문가인 고위 직급자가 독단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경우도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매한가지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공공 디자인 사업들 중 우수한 디자인 사례를 찾기 힘든 두 번째 이유라고 하겠다.


보통 이런 국가단위의 큰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100이면 100.

대국민 투표를 한다. 그리고 그 대국민 투표를 하기 전에 1차 내부 심사도 있다. 그런데 분명히 출품작들 중에는 최종 선정작 혹은 1차 통과작 보다 훨씬 우수한 출품작들이 있었음에도 그들 선에서 항상 걸러지는 매직. 아마 나만 느끼는 안타까움은 아니리라 확신한다.


자, 많이 돌아왔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건 스스로를 너무 믿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디자인을 컨펌하는 결정권자라도, 디자인을 수행하는 디자이너여도 똑같다. 좋은 디자인을 건지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게 지금 이쁜가? 괜찮은가? 나만 괜찮은 것 아닌가?’


‘혹시 특정 분야의 사람들만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그 분야의 사람들이 지금 목표하고 있는 타깃이 맞나?’


‘좀 멀리서 봐도 괜찮을까? 크기만 살짝 줄여볼까? 프린트를 해서 보면 좀 확실히 보이려나?’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도 좋다. 그래서 좋은 결과물을 건질 수만 있다면. 물론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끊임없이 괴롭혀가면서 의심병 환자처럼 의심하라는 말은 아니다. 뭐든 과하면 병이니까. 다만 본인 스스로에게는 끊임없이 되물어보며 데카르트적 성찰과 연역법을 거쳐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쳤을 때에도 스스로에게 확신이 든다면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흔들리지 말고 밀고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 경우에는 중간에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겠다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을 경계하자. 벽 보고 수행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진행함에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당신만큼 고민을 하고 하는 조언일까? 가벼운 조언은 가볍게 참고만 하면 된다.


뭐라도 확실하다면 확실한 소수라도 만족시킬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어중간한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불분명한 결과물은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다.


반대로, 만약 스스로를 계속 의심해 봤을 때 확신이 생기지 않는 경우라면 결정권을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면 전적으로 믿어주자. 그리고 이 경우도 똑같다. 어중간한 결과물을 경계해야 한다. 어설프게 괜한 의견을 섞으려 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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