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영어-(1)영어에 대한 생각
직장맘의 육아일기
가끔 온라인으로 질문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어떤 질문은 이미 블로그에 답이 있긴 한데, 워낙 글이 많으니 아마도 읽지 못하고 질문하신 분도 있고, 어떤 질문은 간절해서 성심껏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 또 나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있으신 분도 있다. 아마 대면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댓글이건, 어떤 질문이건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글을 읽고 피드백이 있는 거라서, 댓글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 정리도 할 수 있고, 나도 혹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벗어나 볼 기회이기도 하니까.
이번 질문은 아주 귀여운 새댁 이웃님께서 하신 질문이다. (외모나 내면이나 그냥 귀엽다. 한참 아래 동생 느낌)
아이가 없어나 이제 태어났는데 내 블로그까지 찾아오신 분들은 대단한 듯하다. 아무래도 그 또래에서 조금 위 정도 그룹 내에서 정보를 찾거나 공유하는데 이리 한참 키운 사례 찾아 읽으시는 분들은 긴 안목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다. 나의 사례뿐 아니라 주변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아이를 바라볼 때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을 것이라서 응원한다.
1편 ) 영어에 대한 생각
질문을 그대로 적지 않고 편집해서 적자면,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엄마도 영어를 잘 해야 하나요?"이다.
댓글을 쓰다가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그냥 포스트로 올리기로 했다.
이 질문은 확대하면 "엄마표 하려면 엄마가 잘해야 하나요" 이기도 하다.
결론은 "아니다"이다.
왜 아니냐면 아이에게 생선을 잡는 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 되지, 일일이 먹여 줄 필요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서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이전 함께 일하시는 분이 아내의 교육 방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공부량이 많아 옆집 엄마와 아내가 아이들 대신 과목을 나눠 인강을 듣고 요약한 것을 아이에게 주고 있다고 했다. 엄마가 공부하는 거냐고 했더니 아이가 오히려 엄마가 자신의 공부를 도와주려 한 것이라며 자신에게 대답했다고 했다며, 저렇게 공부해서는 안 되는 데라고 하셨다.
션은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가 살짝 놀라기도 했다. 아니 저렇게 해 줘야 할 정도로 요즘 고등학생들이 공부량이 많아?에서부터.. 나 역시 저 방법은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량이 많건 적건, 아이가 '직접' 공부를 해야 학습계획과 자기 수준 파악부터 배울 수 있다.
공부를 할 때 배우는 건 해당 과목의 지식만이 아니라 자기통제 능력인데 그런 능력을 키울 기회를 아예 박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깡지표 영어 이야기를 해 보자.
내가 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중 퇴근 후~취침 전 대략 두세 시간과 주말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션과 이야기도 하고 놀아야 하고 챙겨줄 것도 챙겨야 한다. 당연히 '다 하지 못하고 한 가지'만 선택해야 했다. 그래도 책을 읽어줄 때는 책을 매개체로 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서 괜찮은 데 책 읽어주는 기간은 영유아 때 몇 년이면 족했다.
션이 태어나자마자 책을 읽어주고 말을 많이 걸어준 덕분일까 돌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레 한글을 뗐다. 그 후 션이 혼자 책을 읽을 때도 한동안은 책을 읽어주었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방식은 책을 매개체로 두고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권을 읽을 때 아주 오래 걸린다. 책으로 온갖 이야기를 다 해서.
그 덕분에 나이에 비해 모국어 형성과 인지적인 성장이 다소 빠른 편이었다.
션이 세 살(이제 만 나이로 적어야 하나.. 만 두 살) 을 넘어선 어느 날, 인터넷 카페에 글들을 보니 엄마들이 아이 영어를 엄청 챙겨주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한데다 너무 열기가 뜨거워서 살짝 충격을 받았다. 당시 열풍이 어찌나 거셌던지 션은 그 나이 먹도록(?) 영어 노출 1도 없는 평범한 아이로 보일 정도였고, 나 역시 초보 맘이라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부터, 엄마표 영어로 하시는 분들 등 엄청났다. 파닉스니 흘려듣기니, 섀도 스피킹이니.. 이게 또 뭐람. 영어를 일찍 해야 한다, 모국어부터 완성되고 해야 한다 등 상반된 주장도 뜨거웠다.
그래서 영어, 언어에 관한 책을 찾아봤다. 특히 아동의 발달에 따라 언어 습득의 효과성 부분은 눈이 더 갔다. 그렇게 찾아보고 나니, 영어를 하기는 해야겠고 문제는 '어떻게'였다.
일단 나의 경험부터 돌이켜 보았다. 나야말로 지극히 전형적인 한국인이 배웠던 영어 방식으로 공부한 예이다. 시험문제는 잘 푸는데 입은 안 떨어지는 유형. 영어로 아이와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따라서 애당초 엄마가 '가르친다'라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왜 우리가 영어를 그리 오래 배우고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 왜 영어를 '공부'한다고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너무 늦게 시작해서'도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입에서 나오는 영어 문장은 아이들 수준도 되지 않으니 모국어와 영어 gap이 너무 커서 그 큰 간극을 메꾸기 위해 배우고 익히고 훈련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다른 원인도 많지만 이것 한 가지만 언급)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또 하나 있다. 처음 '노부영' 테이프를 틀어 준 날, 션이 음악을 꺼버리는 것이다.
저 흥겨운 음악을 왜 껐을까. 션 입장에서 이제 모국어를 익혀서 재미있게 살고 있는 데 어디에선가 외계어가 들리니 시끄러운 소음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션에게 영어를 접하게 해 줄 때 시작은 모국어 익힐 때처럼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했고, 목표는 션의 모국어와 영어 수준을 엇비슷하게 맞추어 주자는 것으로 했다.
션이 이제 두 돌을 넘긴 아기이기 때문에 아무리 또래보다 빠르다고 해도 모국어 수준이 그리 깊지가 않다. 새로 영어를 배워도 따라잡기 쉽다. 성인이 된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간극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리고 앞으로 션이 자라면서 학교에서 배울 내용이 더 많다. 그전에 조금이라도 어릴 때 두 언어 수준을 엇비슷하게 맞춰 놓고, 두 언어 다 노출을 시켜 놓으면 한 언어가 성장할 때 다른 언어도 동반 상승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글책을 읽어줄 때는 대화를 나누면서 읽어주었으나, 영어책은 그리하지 못하니 CD, DVD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션에게 영어를 노출시켜 주면 줄수록 처음 영어의 급성장은 모국어, 정확히 말하면 이미 습득한 정보, 지식, 특히 사고 체계로 인한 것이구나를 느꼈다.
션은 6~7세에 영어유치원을 갔는데,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다. 그전까지 멀리 있는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집에 오면 오후 7시였다. 이 시간까지 영어 노출이 1도 없다가 밤늦게 엄마가 오면 영어 동화책 읽어 주고 DVD 보고 노는 게 다였다.
어린이집이 너무 멀리 있고 하루 종인 거기서 지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해서 집 가까운 곳에 보내자 싶어 알아보는데 션을 보신 선생님께서 영어유치원을 권하셨다. 션이 아마 좋아할 거라고 하시면서.
그런데 영어 유치원 첫 모집 시기가 아니라 이미 몇 개월 지난 상태여서 중간에 입소하는 경우였다.
게다가 이미 이때 외국에서 조금 살다 온 아이, 5세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이 있는 반이었고, 션은 영어 경험 없는 아이여서 가서 말이나 알아들을까 엄청 걱정했다. 괜히 기죽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고.
그런데 웬걸, 첫날부터 너무 재미있어하고 집에서도 내내 영어 옹알이를 한다. 아무래도 영어 유치원이다 보니 간단한 테스트로 하였는데 정말 놀랍게도 첫 달부터 션이 그 유치원에서 가장 잘했고, 영어유치원 졸업 무렵에는 실력이 더 크게 차이가 났다.
왜 그럴까? 이건 션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도 있어서가 분명해 보였다.
아기 때부터 영어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이 많은데 왜 이런 이상한 결과가 나올까가 궁금해서 관찰 아닌 관찰을 해 봤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전문가들이 말한 '모국어' 더 정확히 말하면 '인지능력'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이보다 빠른 인지능력은 '책'의 힘이 컸다.
예를 들어 보자면, 영어유치원은 테마를 정해서 일주일을 보낸다. 이번 주 테마가 '우주'라고 하면 일주일 동안 놀이, 그림, 책등을 우주에 포커스 해서 다양하게 아이들이 습득하게 해 준다. 이때 지구가 earth라고 배우게 된다.
성인이 된 우리가 earth를 배울 때는 '지구'가 뭔지는 아니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영어 철자와 발음을 암기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유치원의 어린아이들은 '지구'가 뭔지부터 학습이 아니라 놀이로 배운다. 이때 이미 우주, 지구를 책이건 체험이건 아는 아이라면 훨씬 빠르게 받아들인다. 외국인 선생님이 말하는 문장에서 저 단어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말하는 모든 문장을 습득할 여유가 생기고 개념도 확대해 나간다. 설사 우주, 지구의 개념을 모르는 아이라 하더라도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면 빠르게 습득한다.
반대로 영어 환경에서 새로운 개념을 배운 경우 모국어 환경에서 동일한 단어가 등장하면 이미 아는 개념이므로 빠르게 배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순간 서로 동반 상승하게 된다.
'책으로 키운 덕분'에 영어 습득의 발판을 제대로 마련한 셈이었다.
(유치원 다니면서부터는 영어 동화책을 하루 3권씩 읽도록 했다.)
반면, 영어유치원에 다녀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경우의 아이들은 새로운 개념을 익히는데 관심이 없는 경우였다. 영어가 아니라도 지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한글이건, 영어 건 아무리 노출해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거나 잊어버리기 쉬웠다.
션의 영어 과정을 보면 아무래도 한국 땅에서 일반 초등학교를 보내다 보니 초등학생 때까지는 영어 노출 환경이 따로 없다 보니 강제로 만들어 줘야 했다. 션은 어릴 때 책, DVD로 보다가 영어학원을 초2에서 초5까지 주 3회 다니다가 주 2회 정도 다녔고 제주로 학교를 옮기고 나서는 영어 환경에 있으니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중학생이 되기 전, 제주에 보낼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공부를 해야 할 과목'과 '수단이 되어야 할 소양'이 있는데 이 중 언어는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딩할 때 랭귀지도 마찬가지다. JAVA, C, 파이슨이니 등 랭귀지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다.)
즉 언어학자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의 언어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 원하는 학문을 배우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여겼다. 나와 같은 세대처럼 영어를 하나의 과목으로 따로 암기하고 배우는 것은 소모가 크다. 무엇보다 '언어'는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큰 힘을 준다. 단순히 '그 나라말을 할 줄 안다' 그 이상의 힘이 있다.
션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노트북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는데 이때부턴 영어로, 때에 따라서 중국어로 궁금한 것을 다 찾아본 듯했다. 언어가 '수단'이 된 것이다. 다른 포스트에도 썼는데 션이 수학 공부를 한 것도 해외 논문이나 글, MIT나 하버드 인강 등인데 다 언어가 '수단'이 되어서다.
여기까지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내 손 가는 대로 마구잡이로 쓴 어릴 때 엄마표 영어를 하게 된 계기와 아울러 '션의 영어'에 대한 생각들이다.
엄마표 영어라고 하기 부끄러운데, 굳이 정의하자면 션의 먼 두 살~만 일곱 살 정도의 기간 동안 '방구석 영어환경 노출'을 한 것이라고 하겠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2편에서 쓰려고 한다.
사실 션의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 여러 차례 올렸다. 그런데 내가 뭘 했는지는 대충 적혀 있기는 하다.
이 글 본문에도 '밤늦게 엄마가 오면 영어 동화책 읽어 주고 DVD 보고 노는 게 다였다.'라고 퉁치고 있지 않은가.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영어 못하는 엄마가 뭘 해줬는지에 대해 써보면 질문에 답이 될 것 같기는 하다.
ps. 션의 영어는 꽤 걸출한 실적도 많긴 한데, 중학생 때 미국에 캠프를 보냈더니, 현지 아이들이 션이 한국에서만 살았다고 하니 오히려 놀랬다고 합니다. 션이 아주 어릴 때 한 미국인이 자기 아이보다 션이 영어 더 잘한다고 해서 빵 터진 기억도 있어요. 어릴 때 책, CD, DVD의 힘도 은근 큰가 봐요.
ps. 그리고 너무 기대는 마세요. 제 장점은 간단한 일을 끈덕지게 하는 것이라 딱 그 정도 이야기입니다. '책 읽어주고'를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을 했다면 그게 바로 비법이면 비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