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두셋 키워본 것도 아니고, 션 하나를 키웠으니 매번 '이래도 되나?' 할 때가 많았다.
혼란의 도가니에 종종 빠지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션이 배우기 시작한 어떤 것을 꾸준히 하게 도와줘야 하는지, 중단해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나 의지가 약해질 때는 '조력자'의 역할이 의외로 크다. 강제로 무언가를 시킨다, 중단시킨다의 의미가 아니다. 아이를 잘 관찰해 보고 아이가 보이는 어떤 특별한 행동과 말에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도와줘야 할 때를 잘 찾아봐야 한다는 소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몇 해 정도 지나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조금씩 이것저것 가르치기를 시작한다. 영아기는 생존을 위한 것을 배웠다면 점차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 글자, 악기, 미술, 운동 등 여러 기술들을 가르친다.
일반적으로 부모 눈에 특별한 자질이 보이거나, 부모가 관심이 많은 것부터 아이들이 접하게 된다.
아이가 노래를 좋아하면 악기를 일찍 접하게 해 주기도 하고, 부모가 그림을 못 그리는 경우 아이만큼은 그런 아쉬움이 없도록 그림을 배우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반응과 속도는 다 다르다. 재미있어하고 점점 수준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고, 빠르게 배워도 싫증을 내는 경우도 있고, 뭐든 귀찮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 해 보다가 관심이 없는 것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학교 생활이 바빠지면 공부를 제외한 어지간한 것들은 유아와 초등 때 추억으로 남게 된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경우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접하게 해 주었더니 냉큼 물고 냅다 파는 경우다.
남들보다 물리적인 시간을 더 투자하는 데다 재미있다며 집중력까지 보이니 실력이 느는 수준이 남들과 상당히 다르다. 배운 지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수준도 올라가 있지만 오래 지속하는 힘도 있다.
나도 그랬지만 션을 키우면서 재능이 있건 없건, 어떤 것을 새로 시작하고 난 후 '지속'하는 데는 최소 한번 이상 고비가 꼭 왔다.
그 고비를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에 따라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지 나의 강력한 무기가 될지를 결정했던 것 같다.
그것은 재능이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 태도가 더 영향을 끼쳤다.
션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인 편이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도 명확해서 뭐든 배우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션이 잘하는 영역은 '두뇌'와 '손'을 쓰는 영역이었다.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거나, 또는 이 둘을 협업하는 활동에 있어서는 '어떤 나이대'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션의 신체활동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내가 워낙 몸치, 운동치여서 그것이 학창 시절 얼마나 심각하게 작용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그리 될까 봐 걱정했나 보다. 션파는 평균 이상의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고 웬만하면 다 잘하기 때문에 션의 둔함은 오로지 나의 유전자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나와 똑같이 '움짐임 하나 없이'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읽고, 쓰고,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하던지..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스케이트, 태권도, 수영, 축구, 농구, 배드민턴, 스키 등을 배우게 했다. 한꺼번에 시킨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종목은 바뀌었다.
이 중 끝까지 간 것이 태권도다. 기어코 4단까지 따냈고 그 세월이 거의 8, 9년이 훌쩍 넘는다. 수영도 접형까지 했다. 햇수로는 초등 저학년 때 1년, 중학생이 되어 다시 1년 정도 했나 보다. 배드민턴은 중학생 때 2년 정도 했다. 학교 동아리 활동까지 포함해서다. 축구, 농구, 스키는 한때 잠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한 것이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못했던 운동을 그래도 션이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잘하든 못하든 상관은 없었다.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그래도 중간에 힘들다고 '나 안 해' 이 말만 안 해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행히 그 이후 자가발전해서 독하게 운동을 하더니 그래도 제법 잘하게 되었으니 이만한 환골탈태도 보기 어렵다.
그런데 비교적 재능이 있는 편에 해당하는 두뇌 쪽을 보면 이게 영 헷갈린다.
내가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은,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션은 뭔가 뒤죽박죽이었다.
예를 들어 시험, 대회 같은 경우 나 같은 옛날 사람은 그래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제대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의인데, 션은 그런 전통적 방식의 준비 없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책을 읽었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영역에 몰입을 해서 터득한 것이 많았던 것이었다.
반면 어이없는 결과가 있었던 것은 대부분 실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 실수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실수와 결이 좀 달라서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고, 나중에는 그냥 그려려니 했다.
이 시기까지는 '나는 원래 잘났어'라는 생각을 혹시 할지 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능력주의'의 폐해가 바로 이렇게 어릴 때 부모의 양육 태도도 한몫한다고 생각다. '내 자식이 최고'라는 생각은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기만 하면 눈감아 주는 분위기는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션이 타고난 재능처럼 보이는 것도 '거저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생활에서 주지 시켜 주려 했다.
드디어 특정 나이가 되니 션이 버거워할 만한 공부, 대회가 등장했다.
나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람들은 힘들 때 본성이 나온다. 그리고 힘든 고비를 넘기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얻는다.
이 고비를 넘기느냐 마느냐는 지금 하고 있는 목표달성이라는 성취감보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구분 짓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의 그릇이 어디까지인지 이제부터 가늠을 할 수가 있는데 이는 학창 시절뿐 아니라 평생을 두고 적용되는 말이었다. 나 역시 고비가 있을 때 죽을 둥 살 둥 어떡하든 그 고비를 넘겼을 때 그다음은 좀 더 커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작은 시련과 도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자존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까지 결정하게 해 준다.
부모가 다 도와주면 아이들의 당장의 결과는 좋을지 몰라도 '진정한 성장'은 하기 어렵다.
아이가 한 번 두 번 겪어내다 보면 나중에는 '처음 보는 도전이네, 그런데 해 낼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처럼' 하는 긍정적인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물론 꽤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처음에는 션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말없이 지켜만 봤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재미있게 해 왔다 하더라도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체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도 티도 나는 것 같지도 않고 남들은 나보다 앞서 나가 보인다. 이 정체기가 길어질수록, 끝이 보이지 않아서 지치게 되는데, 이때 슬그머니 말을 걸어주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션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무리 해도 안될 거 같으니 힘들다고.
'이제 진짜 실력이 쌓이고 있는 구간에 들어갔구나'하고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축하해 주었다. 이 기간은 멈춘 것처럼 보이고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몸과 마음이 '개조'를 하기 시작해서 완전히 다음 단계로 진일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해 줬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격려를 해 줬다.
운동을 처음 할 때, 다이어트를 처음 할 때는 효과가 무척이나 좋다. 살도 쭉쭉 빠지는 것 같고 몸에 탄력도 붙는 것 같다. 매일같이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이때 사람들이 정체기가 왔다고 실망하고 이 지루함은 참지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기간이 몸이 새로운 몸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변화가 없어 보여도 방법을 바꿔가며 계속해 나가면 어느 순간 다시 '확'하고 바뀌는 날이 온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동력이 되어 지금까지 오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반면 이런 과정을 한번, 두 번 겪다 보면 '응, 또 왔네, 정체기 반가워. 이 기간 끝나면 나 레벨 업되어 있는 거지?' 하면서 내적 동기를 다진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주고 '안심'시키려는 말을 많이 해 줬다.
솔직히 말해서 션이 그만했으면 하고 말린 것도 많았으나, 그럴 때는 션이 악에 받쳤는지 더 독하게 했다. 이건 논외로 두자. 이렇게 독하게 하게 된 성향을 가지게 된 그 이전 과정이다.
그 어떤 것이건 '계단식'으로 실력이 상승한다. 어제 보다 오늘 훨씬 잘하는 것 같고,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 같으면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주변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것 같으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잘한다.
잠시 곁다리로 빠지자면 '먼저 시작한 효과'를 톡톡히 보는 효과는 의외로 크다. 먼저 시작했을 뿐인데 남들보다 인정을 받게 되니 그것이 다시 긍정적 인풋이 되어 선순환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중 새로운 것을 하기 싫어하는 경우 '이미 내 친구가 잘해서 자기가 그 아이보다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시작을 아예 안 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극복하는 방법은 초기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와서, 실력이란 무한정 느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은 노력을 아무리 해도 멈춘 것처럼 보인다. 이를 처음 경험해 보는 아이들은 당황을 하게 되고 '이제 재미가 없어졌어'라고 한다. 이럴 때 부모는 조력자가 되어 줘서 응원을 해 주면 아이들은 '포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끈기'를 배울 수 있다.
물론 '손절 대상'인지, '앞으로 가야 할 대상'인지는 잘 판단해야 한다. 나도 그게 제일 어려웠고 잘못된 판단을 많이 했다.
이런 대화를 꽤 많이 나눈 덕에 션은 나름 정체기에 대해 '기다림'을 배웠다. 물론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이 기간이 지나면 어떤 단 열매가 올지를 알기에 이제는 알아서 하고 있다.
가만히 돌아봤다. 나는 학창 시절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비를 몇 차례 겪었던 것 같다.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적용할 때마다 처음에는 걱정을 했다. 그러다 어떡하든 해 내고, 해 내고 하면서 어느 순간 이런 걱정 자체에서 아예 벗어났다. 뭘 해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았다.
가장 힘든 고비는 둘 다 힘든 시기가 겹쳤을 때인데, 이 시기를 참고 견뎌내니 그다음 어지간한 일은 뱃집과 배짱이 두둑 해졌다.
션이 자라고 나서, 그런 이야기 제법 들려줬다. 앞으로 션이 헤쳐나갈 세상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전과 시련들이 올 테니까.
공부도, 운동도, 다이어트도, 일도, 사랑도.. 정체기는 온다.
중단할지 앞으로 갈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만약 앞으로 가기로 했다면
정체기 동안 속도를 늦출지언정 노젓기를 멈추지만 않으면 강 건너에 도착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정체기가 의외로 반갑게 느껴진다. 강 건너에 가까이 왔다는 신호니까.
ps. 뭐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결과를 얻기 더 어렵다.
그래서 인내한 소수의 사람들 만이 그 열매를 구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