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Jan 03. 2023

악의 축, 잔소리

직장맘의 육아일기

나도 참 엉뚱하기도 하다. 아이가 성인인데 뜬금없이 웬 육아책 한 권을 읽었다.

책 리뷰에 조금 언급하긴 했는데 따로 글을 더 남기고 싶어서 펜을, 아니 키보드를 들었다.


나도 육아책 참 많이 읽은 케이스이다. 육아책에는 아이를 현명하게 키우기 위한 많은 지침과 가이드가 적혀 있다.

처음 육아책 읽을 때는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많다 보니,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필요한 것 두세 가지만 실천했고, 새로운 육아책을 읽을 때마다 실천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물론 항상 철두철미하게 지키지는 못하고, 가급적 책에서 시키는 방향으로 가려고 마음가짐을 다졌다는 게 맞겠다. 기본 원칙은 있으니까 책 대로 잘하지 못하면 반성을 하면서 그래도 조금씩 더 나은 양육방법을 체득하려 했다.


오랜만에 다시 육아책을 읽어보니 갑자기 신혼 때가 생각났다.


션파는 기억을 잘 못하지만,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신혼 때 션파가 '잔소리만 안 하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형님 (남편의 누나)과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며 누나가 잔소리를 많이 했다며 이 중 아주 웃긴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엄청 웃긴 했는데, 잔소리를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말은 잘 접수해서, 이날 이때까지 션파가 인정할 정도로 잔소리를 한 적이 없다.

정말 고쳤으면 하는 행동이 있다면 진지한 대화를 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나는 이런 오해를 할 수 있다고 설명을 제대로 했다.


오히려 내가 잔소리를 더 들었는데, 나 같은 경우 결혼 전까지 뭐든 알아서 하던 스타일이라  잔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보니 가끔 하는 남편의 잔소리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잔소리는 사실 사소한 행동에 대한 것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참고 보다가 반복된 행동에 한마디를 하고, 그게 고쳐지지 않으면 또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잔소리가 된다. 당연히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은 기간도 있고,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하니 부드럽고 좋은 톤으로 말하지 않게 된다. 기간이 길수록 횟수를 거듭할수록 잔소리는 강도가 쎄 진다.


듣는 입장에서는 일부러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지나치게 되는데 정신 차려 보니 강도 센 잔소리가 날아오면 "아니, 겨우 이거 가지고 왜 저래?" 하는 억울한 감정이 먼저 든다.  내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말로 감정부터 상하게 되니 행동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게 된다. 고치려는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거부의 반응을 보이면 이때부터는 다툼으로 번진다.


나 같은 경우 잔소리는 하지 않고, 가끔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 되고 보니,  이 '잔소리'라는 것이 정말 쓸데없는 거구나 싶었다.

션파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내가 고쳐야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절대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듣는 잔소리는, 션파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에서 말을 할 때 내가 무시하고 계속 내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리고 뚜껑을 열고 나서 제대로 닫지 않을 때, 베란다 문을 열고 제대로 닫지 않을 때이다.


대부분 잔소리는 작은 행동에 대한 것이고, 작은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게 많다. 아무리 사소해도 무의식적으로 버릇처럼 나오는 행동을 고치려면 엄청난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잔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다 보니, 션파가 고쳤으면 하는 사소한 행동에 대해 더 잔소리를 안하게 되었다. 해도 고쳐질 리가 없으니까.


갑자기 '잔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육아책에서 말하는 무수히 많은 'OOO 하라'는 말들 때문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아마도 초보맘이 육아책을 읽고 좋은 부모가 되려면 아예 근본적인 개조를 해야 할 정도로 뭔가 해야 할 일이 많게 느껴진다.


그래서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 딱 한 가지'만  골라봤다.

그게 바로  '잔소리'다. (특히 아들!)


물론 순전히 나의 개인 생각과 경험이지만 나는 '잔소리'만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뿐더러, 악의 축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육아책에서 부모로서의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권위를 없애버리는 것이 '잔소리'다.

누구나 잔소리 들은 경험이 있다. 자라면서 부모에게, 현재는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들어서 무언가 고친 사례는 거의 없다. 있다면 잔소리가 아니라 적절한 훈계나 대화였을 것이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서 고치지 않으면 방법을 바꿔야지 한말을 강도만 세게 해서 말하면 반발감만 생긴다.


아무래도 딸은 순발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편과 마찬가지로 아들은 귀에 '셔터'가 있다.

잔소리를 하면 남자들은 셔터로 귀를 닫아버린다. 머리가 굵어지면 반항을 하기도 한다.

급기야 "아 좀, 알아서 할게", "엄마가 뭘 알아"의 말이 나온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지금까지 말을 '비교적' 잘 듣는 아들의 반응이 살짝 달라지는데, 엄마도 당황한다. 서로 세게 나가기 시작하면 엄마, 아들 간 "관계"는 회복하기 점차 어려워진다. 대부분은 귀만 닫는 것이 아니라, 입까지 닫아버린다.


"잔소리만 하지 말자"가 그냥 '모두 눈감아 주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잔소리' 대신 적극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 마', '저번에도 하지 말라고 그랬지', '몇 번을 말하니', 이런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면 이미 아이의 귀에 셔터가 내려갔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다른 '긍정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하면 육아책에서 말하는 100가지 'OOO하라'가 모두 다 등장하게 되어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새로운 실수나 새로운 어설픈 행동을 하게 된다. 당연하다. 태어나서 죄다 처음 하는 건데 어떻게 모든 것을 능수능란하게 하겠는가.

뇌와 신체가 발달하면서 계속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를 교육하는 방법은 매 순간 다르다. 이때 'OOO하라'가 하나씩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션이 초1 때 신발 뒤축을 구겨 신고 질질 끌고 다녔다. 제대로 반듯하게 신으라고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았다. 어찌할 수가 없어서 몇 개월을  내버려 두다가 어느 날, "션이 길에서 엄마를 봤는데, OO엄마는 사뿐사뿐 예쁘게 걸어가는 데 엄마는 그 옆에서 뒤처지면서 신발을 질질 끌면서 휘적휘적 걸어가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라고 말하니 그날 당장 고쳤다.

이미 성인이 된 지금도, 션에게 잔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션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션이 고쳤으면 하는 행동에 대해 션이 먼저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있고,  션의 마음에 와닿을 적절한 말을 찾고 있어서다.

그 누구도 본인이 깨달으면 한 방에 고칠 수 있다. 그때부터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어서다.


잔소리를 하는 것도 버릇이다. 평소 잔소리를 자꾸 하다 보면 훈계가 버릇이 되어,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때 부모는 먼저 '들어줘야 하는데' 자꾸 참견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하지 않고, 잔소리의 연장으로 느낀다.

아이가 고쳤으면 하는 행동,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 때, 아이 입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적절한 대안이 없다면, 일단 속에 열불 나도 적절한 타이밍과 적절한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한다.


남자들은 '몸으로 직접 겪지 않으면'  고치려 들지 않는 경향이 크다.

조금 시행착오를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다.

'잔소리'는 소탐대실의 전형 같다. 사소한 행동을 '말'로 지적함으로써, 진정성 어린 대화를 아예 놓쳐 버리기 때문이다.  



ps. 션파 담배를 어떻게 끊게 할까에 대해 오래도 기다렸다.

일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을 오랜 기간 바라본 바로는 잔소리로 담배를 끊게 하는 것보다 소를 물가에 끌고 가서 억지로 물을 먹이는 게 더 쉬워 보였다.

엄청 오래 걸렸으나 때가 왔고,  드디어 요즘 션파가 담배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에 있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5284898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