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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Jun 07. 2022

꼰대와 멘토

직장맘의 육아일기

가끔 이동할 때 유튜브 동영상 듣곤 하는데, 최근 부모교육 관련된 동영상을 몇 개 보게 되었다.

아이 다 키운 마당에 웬 부모교육을 보고 있나 스스로 어이없어하다가, 동영상 몇 개 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아이 키워보라고 하면 한번 경험해 봤으니 "그래, 자신 있어"가 아니라 여전히 어설프게 좌충우돌해 가며 키울 것 같았고, 부모교육에서 시킨 대로 하려 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구나를 느낄 것 같았다.


어쩌면 차라리 모르고 키웠을 때가 더 속 편했구나 싶기도 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왜 어려운가 생각을 해 봤다.


션은 올해 스무 살이다.

나는 분명 아이 한 명을 키웠다.

그런데 실제로는 션의 나이만큼의 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다.

즉, 션이 스무 살이니 20명의 션과 만났던 것이다.

5살 때 션, 10살 때 션, 15살 때 션, 20살의 션은 모두 다른 션이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션이 아기 때는 어느 날 이 아이가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구나를 깨달았다. 이때부터 션의 기질을 유심히 지켜봤다.


사춘기 때는, '쟤가 저렇지 않았는데, 요즘 애 이래'라는 생각을 먼저 했고, 사춘기가 끝났을 때는 '돌아왔구나, 그런데 조금 달라졌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션이 변했거나 제 자리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정신적, 육체적인 성장을 했던 것이고, 나는 션의 정신적 성장을 낯설어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제의 션과 오늘의 션은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니, 나의 태도도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어제의 션과 오늘의 션이 다르니, 거기에 걸맞게 나의 태도도 바뀌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션은 새로 만난 다른 사람이므로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했다.


최근의 션은 또 달라져있다.

몇 개월 전 션을 생각하고 대하면 어딘가 대화가 어긋난다.

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설픈 조언이나 충고는 해가 됨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넘겨짚어서도 안된다.

그렇게 조금씩 성숙되어 가는 션을 보면서 20대 아이의 부모로서 소양을 새로 배워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구나 싶다.

부부, 친지, 친구, 동료 모두가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

느려도 매일 조금씩 사람들은 바뀌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기본 성향은 어디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바뀌고 있다.

이 변화의 모습이 좋은 쪽이길 바라기 때문에 가끔씩 나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정답이 있는 상황보다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 더 많은 것이 현실세계다 보니, 그리 나를 돌아봐도 더 현명해 지기란 어렵다. 다만, 편협된 사고에서 좀 더 포용적인 사고로 바뀌어 가고는 있지 않나 싶다.


션에게 꼰대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본 젓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로 대변되기도 하는 꼰대는 '나'를 기준으로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 멘토는 '상대방'기준으로 바라보며, 이들은 상대방 입장을 고려한 조언을 해 준다고 했다.


션 말을 듣다 보니 우리가 많이 하는 실수가 '나'를 기준으로 남을 납득시키려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듣기보다 말하기가 쉬우니, 멘토보다 꼰대가 되기 쉬운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의 아이에게,

나의 경험이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닌, 아이 입장에서 조언을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와 다른 업그레이드된 '오늘의 내'가 되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이 아님을 최근 많이 느낀다.


공자님이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공자님도 마흔 살에 인생을 이해하고 통찰하고, 쉰 살에 자신의 내면을 이루어 높은 단계에 이르나서야 예순 살에 다른 이의 어떤 말에도 일리가 있는 말로 받아들였다는데 그 일이 쉽겠는가.


그래도 꾸준히 귀를 열어두면 공자님처럼 예순 살은 아니더라도 일흔, 여든에는 귀가 순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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