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의 육아일기
엄마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많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대화가 많은 경우도, 아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엄마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들려주지 않는다. 엄마는 아들이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한데 아들이 미주알고주알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는 정말 희귀하다. 그래서 아들이 어릴 때는 같은 반 여자아이 엄마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 입을 꾹 다물고 자기 방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2~3년 두더지 생활을 마치고 정신없이 입시를 치르고 나면 20대. 이즈음 되면 엄마와 아들이 속마음을 나누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히 우리 모자는 대화가 많다. 대화의 주제도 정말 다양하다. 일상의 이야기도 하지만, 꿈, 비전, 가치관도 이야기하고 역사, 정치, 사회, 과학, 수학, IT. 등 한계 없이 이야기한다. 때로는 토론하는 것처럼 열띠게 자기의 생각을 서로 나누곤 한다. 나도 그렇지만 션 역시 다양하게 알고 있는 게 많아서 이야기 주제가 많이 열려있다.
션이 대학 입학 전, 친구네 가족들 식사 모임에 넉살 좋게 함께 껴서 식사를 함께 하고 온 적이 몇 번 있는데 션은 그때마다 "엄마, 우리는 이런 대화가 일상인데, 다른 집은 안 그런가 봐."라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아들과 이야기가 잘 통해서 부럽다고 했다. 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집은 찾기 힘들었고, 나를 오히려 신기해했다.
션이 태어났을 때 <육아서>에서 아이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라고 해서 열심히 실천했다. 그런데 아기다 보니까 주거니 받거나는 힘들었고 매번 했던 말 또 할 수는 없어서 책을 읽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나의 생각도 이야기해 주고, 회사 생활도 이야기해 주곤 했다.
아이들 그림책 중에 글자가 하나도 없이 그림만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그림책들이 오히려 한 권 다 읽어주는데 오래 걸렸다. 글이 없으니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 줘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션이 자라면서 대화의 깊이는 점차 깊어졌다.
그러다 중학생, 사춘기 기간은 점차 대화가 힘들어졌다. 이전에 그리 재미있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점차 잔소리가 늘다 보니 그만큼 대화가 줄었다.
엄마들끼리 모였을 때 아들과 대화가 전혀 없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역시 션과 주고받는 말은 있었으나 '대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속 더 가다가는 아예 '대화'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다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을 했다. 일단 몇 가지 스스로 다짐을 했다.
1.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지 말자
2. 혹시 이성친구를 만나도 아무 소리 하지 말자
3. 논리적이지 않거나 고집을 피우는 주장처럼 보여도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자
4. 아이가 이야기할 때는 하고 있는 일을 멈추자
5. 잔소리는 절대 하지 말자
1.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지 말자
그 나이 남자아이들은 또래 집단의식이 강해서 친구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자신이 욕먹은 것처럼 예민해진다. 션은 친구가 정말 많았는데, 모범생부터 꾸러기까지 스팩트럼이 다양하다. 오히려 공부하는 친구보다 잘 노는 친구들과 더 친했다. 엄마들 입장에서는 아이가 이왕이면 모범생과 어울리면서 좋은 점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러나 끝까지 션의 친구관계에 대해 간섭하지 않았다.
계기는 있었다. 초등학생 때 션이 반 친구들 이야기할 때 누가 봐도 꾸러기인데 션이 그 아이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션은 항상 친구들의 장점을 봤다.
평생 션 따라다니며 친구 만들어 줄 것도 아니고, 션도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봐야 향후 사람과 관계를 더 원숙하게 맺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2. 혹시 이성친구를 만나도 아무 소리 하지 말자
이성친구의 경우는 "학생이 무슨 여자친구", "쓸데없는 소리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해버리면 앞으로 입을 꾹 닫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오픈 마인드로 아무 소리 안 했다. 그랬더니 점차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기면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만나러 나갈 때 옷을 골라달라고 해서 같이 고심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몇 개 안 되는 옷을 가지고 왜 고민을 하는지, 그것도 비슷비슷한 옷을 가지고)
나중에 션이 하는 말이 "친구들끼리 이야기할 때 '이성관계는 엄마 몰래 만나야 한다'라고 들어서 나도 처음에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서 말했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션이 솔직 담백하게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3. 논리적이지 않거나 고집을 피우는 주장처럼 보여도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자
션과 이야기할 때 서로 자기주장을 펼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서로 답답해했다. 션은 자기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런 고집통머리'라고 생각했다. 주로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하듯 자기 생각을 말하는 대화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우리가 정치나 종교 이야기 하다가 한 판 붙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그런데 십 대 아들의 어딘가 모르게 독특한 것 같고 반항기도 있어 보이는 말 역시 정상이었다. 몸이 자라듯 정신도 자라는 중이었고, 내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닌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서 내 말이 맞다고 션에게 강요한 적이 많았다.
이럴 때 "네가 어려서 그래"라며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면 아이는 "엄마, 아빠와는 말이 안 통해"라며 더 이상 건전한 논쟁을 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고집이라고 생각했던 션의 주장이 다시 생각하니 일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4. 아이가 이야기할 때는 하고 있는 일을 멈추자
우리도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건성으로 듣거나 말을 자르면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하는데 성의 있게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훈계를 하려 들면 입을 닫는다.
5. 잔소리는 절대 하지 말자
잔소리는 따로 글을 적은 적 있다. 남자아이에게는 치명적이다.
사춘기 시작 무렵 모두 다 내가 했던 실수들이었고 이때마다 션은 신호를 줬다. 다행히 이 신호를 캐치한 덕분에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니 다시 수다스러운 모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떤 장소에서 션이 수다스러워졌다. 하나는 제주에서 서울로 와서 집을 가는 차 안이었고 또 하나는 집 앞 커피전문점 가는 길이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동안 떨어져 지내는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한꺼번에 이야기를 해 준다. 딱 이때만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그다음은 띄엄띄엄 이야기해 준다. 그래서 션이 서울에 올 때마다 반드시 공항에 갔다. 집으로 오여 이야기 듣는 동안 션의 생각주머니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었다.
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때 따라나가서 커피를 사 올 때도 션은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어서 매번 같이 사러 갔다. 어쩔 때 이야기 봇물이 터지면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단지를 뱅뱅 돌았다.
꽤 좋은 추억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션은 미국에서 종종 전화해서 여러 이야기해 준다. 그래도 책을 읽어둔 덕인지 지적인(?) 대화도 여전히 잘하고 있다. 최근은 션이 자기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
션파는 가끔 나에게 엄마로서 위엄이 없다며 '엄마가 애 친구 같다'라고 했는데 션은 오히려 '친구 같은 엄마'가 좋다고 한다. 정답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내가 택한 건 다소 위엄이 없어도 편안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엄마였던 것 같다.
신기한 건, 션이 철이 들면서 엄마의 위엄을 세워준다. 고맙게도..
* 블로그 : [썰] 십 대 아들과 대화의 기술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