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구순 생신이라 한국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가을마다 엄마를 뵈러 가는데, 올해에는 특별히 휴가를 낸 딸도 동행했어요. 첫 손주여서 어릴 적에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여러 해 동안 못 뵙거든요. 3대가 함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15시간 30분의 긴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남동생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그간의 일상을 나누며 엄마 집을 향했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지! 일 년 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건강에 대한 염려가 동시에 듭니다. 문을 열고 나오시는데 생각보다 안색이 좋아 보이셔서 안심됐습니다.
딸과 함께 인사를 드린 후, 엄마의 구순이라, 특별한 선물을 해 드리고 싶어 여쭤봤어요.
"엄마!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그러고는 싶은데 자주 어지러워 괜찮을지 모르겠다."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 함께 추억여행 다녀와요. 손녀도 왔으니까요."
엄마는 가고 싶기도 하다가, 몸이 자신이 없으신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얼마 전, 티브이에서 딸과 함께 고향을 찾는 영상을 봤는데, 너무 부럽더라. 고향에 가서 살던 집터와 교회가 아직 남아있는지 보고 싶구나"라고 하셨어요. 6.25 사변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9년, 전 가족이 고향인 진도를 떠나 목포로 이주한 후, 한 번도 가보지 않으셨다고 해요. 무려 75년 만의 첫 고향 방문인 셈이지요.
막상 가기로 하고 나서도 건강에 자신이 없으신지 여러 번 번복하셨어요. 저도 여행 중에 아프실까 봐 걱정되기도 했는데요. 여행 날짜가 정해지고, 시간이 다가오자, 우려는 기대로 바뀌고 소풍 가기 전처럼 설레어서 잠이 안 온다고도 하셨어요.
드디어 엄마의 고향을 방문하는 날!
일단 목포에 가서 진도로 가는 장거리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목포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상기된 엄마를 보니 행복한 여행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2시간 40분 만에 목포에 도착했는데, 제가 태어나 열 살까지 자라던 곳이기도 해서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선창가에 즐비한 횟집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하고 푸짐한 회를 먹고, 진도로 출발했습니다.
목포역과 선창가 횟집
예전에는 진도를 가려면 배를 타야 했다는데, 요즘은 진도대교가 생겨서 승용차로도 1시간 정도면 갈 수가 있더라고요. 진도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과연 예전 집을 찾을 수 있을지 떨린다고 하셨어요. 지난해에 막내 이모도 이곳을 왔는데 집을 못 찾았다고 하면서 기사 아저씨께 살던 동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시더군요. "경찰서 바로 앞에 집이 있었다, 진도 초등학교 다녔다, 교회가 근방이 있었다 " 등등요.
드디어 진도읍에 도착했는데, 예전 주소가 다 바뀌어서 어디서부터 집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기사 아저씨가 차로 읍내를 돌면서 경찰서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요. 외관은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있던 경찰서 자리가 맞는 것 같다고 바로 알아보셨어요. 신기하게도 집터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건너편 코너에 있었던 엄마의 고향 집도 수월하게 찾았습니다. 지금은 같은 자리에 여러 가게가 있었어요.
엄마의 고향 집터
집을 뺑 둘러서 친구들과 매일 고무줄놀이를 하셨다던 골목길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엄마가 소녀 시절이었던 그 당시에는 학교 갔다 집에 오면, 그다지 할 일이 없이 친구들과 매일 노는 게 일이었대요. 골목길을 돌아보며, 꿈 많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시더라고요. 왜 안 그러시겠어요? 어찌나 행복해하시던지 그 시절의 친구분이 어디선가 이름을 부르며 금세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 어린시절의 골목 길
엄마가 다니셨다던 집 뒤에 있던 교회도 같은 장소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발을 디딘 것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회가 진도에도 뿌리를 내렸다고 해요. 1919년 창립이라는 교회 현판을 보니 뭉클했습니다. 엄마와 가족, 친지들이 이 교회에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를 받아들이셨고,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하신다고 감회에 젖으시더군요.
75년전, 엄마가 다니셨다는 교회
우리는 진도읍 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외갓집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외할아버지(엄마의 아버지)는 진도에서도 더 들어간 가난한 촌에서 태어나셨지만, 진도에서 악착같이 일을 해서 집안을 일으켰고, 엄마 집이 동네 사랑방이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면서 즐거워하셨어요. 이곳에서 8남매가 우애 좋게 자라던 추억이 생각나시는지 여러 번 눈가를 훔치셨습니다.
다시 목포로 돌아가기 위해 해안도로를 지나가다가 세방 낙조에 들렀는데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은 단풍보다 더 붉은빛이었어요. 한반도 최남단의 『제일의 낙조 전망지』답게 아름다운 노을 맛집이었습니다. 진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진도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았습니다.
세방 낙조의 노을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데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스치는 첫 공기는 뉴욕에서는 겪은 적이 없을 만큼 정답고 포근합니다. 비로소 내 나라에 왔다는 안도감까지 들기도 해요. 그리운 엄마, 가족, 친구들이 있는 곳이어서겠지요. 그래서 오랜 외국 생활을 하는 저에게 한국방문은 또다시 힘을 생기게 해주는 마법이며, 응원 같기도 합니다.
90세 엄마도 그러셨을 거 같아요. 오래전 고향 집 골목길에서 잊었던 시절이 떠올랐고, 북적거리던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들로 얼마 동안은 행복하게 지내실 거 같습니다. 실제로 고향 방문 후 엄마는 여러 카톡방에 후일담을 올리며 무채색 같던 일상이 조금 화사해졌습니다. 성공적인 장거리 여행 덕에 건강에 자신감도 생기고 명랑해지셨어요. 90세 엄마와 함께한 특별한 여행이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