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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Jan 05. 2024

걷고 있는 길은 들쭉날쭉한 거다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는 안타까운 말이지만, 내가 길을 잃는 것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야. 매번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걸 찾아 나서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론적인 이유를 대자면 살아있기 때문이지. 살아있다는 건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고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탐구하는 과정 같거든.



새로운 게 전혀 없다는 생각은 묘하게 지겹게 만드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건 본능 같기도 하다. 안되면 자신의 주변에서 얻기 쉬운 대체재라도 찾기 마련인데. 그 지루한 마음이 드는 근본적인 걸 바꿔주지 않으면 채워도 금방 꺼져버린다고 느낀다.




물론 항상 하던 안전한 길과 근본적으로 깔려있는 생각의 전제를 바꾼다는 건 굉장히 피곤하고 조심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 위에 쌓아둔 것들이나 예민한 감정들이 바닥에 떨어져서 흐트러지거나 깨지지 않게 잘 수술을 마쳐야 하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절대 가벼운 게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다.




그러니까 시간이 갈수록 아이처럼 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질 때도 많았다. 그것들을 상처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가져온 개념 위로 쌓아 올렸던 무수한 것들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감각과 살아온 세월이 헛수고였고 부정되는 기분이 안 들게끔 잘 세심한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망연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쌓아왔던 것과 가진 게 많아져서 두려워지는 거였다.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보면 만들고 뒤엎어버리고 새로 만들고 새로 만들고 하던 게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면 참 그 과정이 재밌었던 것 같다. 오히려 놀이로 만들 정도로 많이 했었다. 그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심플했다. 가진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지금은 나이가 들수록 그게 불편하고 피곤해지는 거고. 살아간다는 게 계속 시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뒤엎고 다시 뒤엎고 저번보다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개의치 않고 재미있게 계속해 보고 결과를 눈으로 보고 하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게 변화를 가져오고 창의력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으로 보인다.



비슷하고 같은 길을 가는 건 안전하고도 지루한 일이지. 뭔가를 할 때 그럼 사람이 갈수록 더 나아져야지. 당연히 전보다 지금이 더 잘해야지, 하는 말을 하는 걸 많이도 봐왔고 나도 그래왔지만 그게 사실 나를 죽일 때가 많았다. 못 하겠는 건 아예 시도도 안 하게 만들었고.



그러다가 sns에 돌던 몇 가지 사진을 보고 나서야 사람이 원래 들쭉날쭉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발전하는 모습이 나날이 눈에 띈다고 생각하지만 중간 즈음에 발전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처럼 실력이 더디게 0.1씩 늘어나는 구간이 있으며 과정이 확 눈에 띄게 느는 것도 과정이고 아주 조금씩 더디게 느는 것도 과정이고 갑자기 확 늘다가 점점 못하게 되다가 갑자기 또 확 늘기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모든 경우가 과정인 거라고 했다.




유명한 헤밍웨이 선생님, 그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본인 작품을 다시 읽는 이유에 대해서 글 쓰는 게 버거울 때 기운 내려고 예전 글을 다시 읽는다고 했다. 정말 눈이 확 떠지는 말이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면 글쓰기는 늘 힘들었고 때로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걸 기억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와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지점이 묘하게 킹받는다. 내가 어릴 때도 이분 책을 읽고 지금 다 커서도 간간이 빌려보고 지금도 읽고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그렇지만 묘하게 안심되는 것도 있었다. 내가 이런 기분이 들고 마는 게 길을 잃거나 뭔가 많이 잘못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구나 싶어지니까.




과정을 걷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열심히 하고 있던 게 어느 날 날벼락처럼 자신조차도 못 봐줄 정도로 못한다고 느껴져도 그건 그냥 그 구간에 들어선 것뿐일 테다. 그 말은 그 구간만 벗어나면 다시 오르겠지. 실력? 오를 거다. 계속하는데 끝에 가서는 당연하게도 창대해지지 않겠나? 왜? 그럼에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지. 지금이 끝자락이 아닐뿐이었다. 눈에 보이게 10씩 팍팍 오르는 그런 사람이 있고 아닌 경우도 태반이다. 인생은 공식이 아니라서 1+1이 반드시 2가 나오지도 않는다. 3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나올 때도 있고 0이 나오기도 했다. 마이너스를 찍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식처럼 생각할 때가 많았다. 반드시 1+1이 2가 되는 걸 당연하다고 기대하고 꼭 그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할 때가 참 많았다.




2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노력을 안 했거나 인간으로 덜떨어졌거나 다른 사람이 잘나서 노력에 비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운과 재능으로 그렇게 됐다고들 말할 때도 많겠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결과가 미미하다고 굳이 나한테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한계를 짓고 선을 긋고는 나는 이 선 밖으로는 전혀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세뇌할 필요는 없는 거다. 언제 발현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 희망이든 뭐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그게 싹을 트겠지. 내가 흙 묻은 발로 짓이겨버리면 그게 싹도 안 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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