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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Feb 19. 2024

애초에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의 종결

언젠가의 내가 잘 알지 못해서 서툴러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걸 실망하고 한심하게 생각해서 나 자신을 원망했던 적이 있다는 게 기억이 났다. 네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인 거야. 그러니까 다 네 탓이야, 라고 생각했고 꽤 오랜 시간 그런 식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해 왔으니 쭉 나는 나한테 상처받은 그대로였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한심하게 생각하고 싫어하고 있으니까 어디 가서 확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많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가장 상처받는 말은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왔던 내가 나한테 했던 뼈아픈 말들, 자신을 후벼 파던 괴롭히는 말들. 정말 어떻게 저렇게 하나같이 똑같을까 싶은 말들이었다. 그리고 점점 그것들이 내게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마다 사라지는 말들이기도 했지.




왜 그렇게 주눅 들고 위축되기만 했는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세상과 내 눈앞의 보이는 많은 것들이 투영이고 투사라고 했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보이는 것도 지옥이라는 말, 나부터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무시하면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말,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 순환이기도 했다.




내가 내 편이 아니었을 때는 무척 불안하고 버티는 것만이 남은 인생 같았다. 상황이 좋아도 불안하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갈 때는 미친 듯이 불안해진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돌아서고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아서 막막해도 자신만큼은 확실한 내 편으로 남아있다면 버틸만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려다가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을 걸어오는 생각들이 생겼다. 무언가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운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는지 아직 늦지 않았는지 같은 건 모르겠으나 내 눈에 보이니까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하면서 계속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건 이 보이지 않는 힘이 날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나 혼자였다면 진행 방향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내 이전 경험으로부터.






내가 나를 원망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건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게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제 기억이 났다. 오랫동안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내 잘못이었다는 걸 안다.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일이고.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온 상처는 치유하려고 노력하고 나를 위해 용서하고 신경 안 쓰기로 했지만 내가 그랬지만 알지 못했던 잘못이라고도 생각 안 했고 상처라고도 생각을 안 했으며 그러니까 치유할 생각도 가져보지 못한 그건 계속 용서를 못 받고 있었다. 잘못이라고 인지도 못했으니까 용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못 한 거다.




알 수 없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면 어서 용서를 해주고 끝내야 했다. 잘못을 인식해야 했고 이제 그만 인정해야 했다. 내가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으니 이 또한 같았으며 필요한 수순이었다. 필요 없는 것을 종결시키기 위한 서로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미안하다. 자신을 원망했던 것,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 어쩔 수 없었던 건데 그렇게 내 탓으로 돌려 내 속에 떠넘기려고 했던 거, 계속 내 탓만 하고 질책만 했던 거, 상처를 줬던 것. 애초에 잘못한 게 없으니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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