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을 찾는 걸음

구직

by 슈리엘 아샬라크

첫걸음은 낯설지 않았다. 커다란 건물의 기둥 사이, 대기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울타리 속에서 나는 잠시 안도했다. 그곳은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시계였고, 내가 맡은 톱니가 삐걱대더라도 다른 톱니들이 부드럽게 돌아가며 전체를 굴려낼 것 같았다. 사원들의 아이디어마다 값이 매겨지고, 관리자들에게는 스트레스 검사라는 이름으로 마음의 온도를 재어주는 세심한 배려도 있었다. 숙소는 겨울엔 따뜻했고 여름엔 시원했으며, 동아리와 상가, 운동 같은 편의시설까지 갖춰진 잘 다듬어진 도시 한가운데에 내가 들어선 듯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 좋은 직장을 두고 떠난 이유는 단순했다. 남이 만들어준 시간 속에 눕기보다는 내 시간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옳았을까, 지금도 확신은 없다. 하지만 그때는 마치 흘러가던 강물에서 몸을 빼내어 내 발로 걸어야 한다는 막연한 다급함이 있었다.


두 번째 직장은 초등학교 교무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는 거리가 먼, 종이와 서류, 결재와 지시가 오가는 곳이었다. 컴퓨터 자격증을 따며 준비한 열정이 있었으니 조금은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곧 절망했다. 리더십은 여전히 오래된 연극처럼 반복되었고, 교체되는 리더와 그 아래로 흐르는 권위의 사다리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마치 근현대사 드라마 속, 권력적인 장면을 교무실 한복판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그 자리를 떠났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듯, 너무 쉽게 등을 돌렸다.


그 뒤로 나는 많은 길을 배회했다. 병원 안내원,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특급 호텔의 객실 청소, 간호조무사까지. 어느 하나 나 오래 붙잡지 못했다. 세상이 무심히 건네준 옷들은 내 몸에 맞지 않았다. 특히 병원이라는 공간은 더 아팠다. 주차 안내를 서 있으면, 사람들은 내가 입은 유니폼이 아니라 내 지위를 먼저 보았다. “주차 안내 따위나 하는 사람”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함께 일하던 경비 아저씨를 향하기도 했다. 응급실 앞을 지키며 오토바이 주차를 막았을 뿐인데, 그는 “천한 일이나 하는 주제에”라는 모욕을 받았다. 아저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래서 당신은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않느냐”하고 받아쳤지만, 상처는 이미 깊게 패였다. 나는 그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며 알았다. 무시는 개인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한 젊은 여성을 막아섰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신다며 면회 시간이 지나 늦게 도착한 그녀는, 급한 마음에 허락되지 않은 곳에 차를 대려 했다. 나는 정중히,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여기는 내리는 분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막으실 수는 없어요.”


그러자 그녀는 대답했다.


“다른 환자들보다 내 아버지가 더 중요해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라면 똑같은 말을 했을까. 결국 그녀는 억지로 차를 밀어 넣으려 했고, 나도 참았던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자신만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그녀는 대꾸 대신 엑셀을 밟았다. 그리고 결국, 이미 주차되어 있던 차를 들이받았다. 차 안에 고개를 박은 채 나오지 않던 그녀 대신, 피해 차량에게 전화를 걸고 안내로 들어갔다. 한 중년 남성이 나를 찾아왔다. 피해 차량의 주인이었다. 그가 전한 말은 내 심장을 차갑게 식혔다.


“그 여자가, 당신이 차를 밀어서 사고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차력사도, 외계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음 말은 더 황당했다.


“십만 원을 줄 테니 보험 처리는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안내원의 유니폼을 입은 내 존재가 얼마나 가볍고, 손쉽게 죄를 뒤집어쓸 수 있는지 몸으로 배웠을 뿐이다.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수없이 무시당했다. 사람들은 서비스를 당연하게 누리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막아서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나는 투명한 존재였고, 누구도 끝내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직업은 나를 지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쉽게 교체할 수 있는 부속품으로 만들었다.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는 더 힘들었다. 내가 가진 지식은 부족했지만 환자 앞에서는 알지 못한다는 말을 쉬이 꺼낼 수 없었다. 두려움과 책임감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렸다.


이처럼 떠돌며 깨달은 것은 단순하다, 세상에 맞는 일자리 하나 찾지 못한다면 이 세계에서 내 몸을 눕힐 자리가 있을까. 막막한 질문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잘 벌던 직장을 그만둔 까닭을 묻는 면접관의 의심, 치열한 경쟁률 속에서 스러지는 이력서, 합격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 모두가 내 길을 가로막는 돌부리 같았다.


나는 지금도 길 위에 서 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대기업의 구조 속에 몸을 담았던 순간도, 학교 교무실의 리더십 아래에서 절망했던 날도, 병원 주차장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날도 모두 흐릿한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 그림자들은 나를 막기도 했지만,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디디게도 했다.


길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걷는 이의 발밑에서 생겨나는 것. 아직 내가 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했더라도 내가 멈추지 않는 한, 발자국은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막막한 어둠 속이라도, 언젠가 별빛이 닿는 자리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