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

종이 위의 선택

by 슈리엘 아샬라크


스스로 돌아볼 때마다 늘 공부머리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수학의 공식은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이해가 되지 않아 금세 흩어졌고, 과학의 실험 원리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낯선 기호처럼만 보였다. 외워야 할 것이 분명한 것들은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지만, 깊이 있는 이해를 요구하는 과목들은 나와 인연이 멀었다. 애초에 공부가 싫었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빛이 하나 있었다. 그림이었다.


수업시간에도 공책 귀퉁이에 선을 긋고, 점을 찍고, 사람과 풍경을 그렸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이 비어 있으면, 모래 위에 막대기로 선을 긋고 인물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놀이였고, 숨통이었고, 내 작은 자존심이었다. 친구들이 다가와 그림을 보며 감탄하거나 탐을 내면, 나는 선뜻 그 종이를 건네주었다. 내 손에서 흘러나온 선이 다른 이의 손에서 기쁨이 되는 순간이 좋았다. 미술시간에 완성된 그림이 교실 뒤 전시판에 붙여질 때면, 다른 아이들이 내 그림이 아니면 허전하다며 아우성쳤다. 그때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부모님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낙서에 불과했나 보다. 부모님은 내 그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집안 사정은 예술을 밀어줄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대학에 갈 수 있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공부를 잘하는 아이여야 했다. 대학 등록금은 집안 전체가 감당하기엔 벅찬 무게였다. 자연스레 나의 미래는 다른 선택지에 놓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종이를 돌렸다. 한쪽 칸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칸에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적으라는 것이었다. 취업과 진학, 그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갈망을 따라, 내가 원하는 것에는 ‘진학’을 적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바람을 묻는 칸에는 ‘취업’이라 써넣었다.


그 종이를 제출한 뒤,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길로 가야 하지 않겠니? 부모님의 뜻보다 네 뜻이 더 중요하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누군가 내 편에 서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돈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은 취업을 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억울했다. 나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그림은 아이들의 눈을 끌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으며,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을 정도는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나의 가능성이었고, 아직 열어보지 못한 문이었다. 하지만 부모님 눈에는 그것이 보잘것없는 낙서일 뿐이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종이를 받았다. 이번에는 양쪽 칸 모두에 ‘취업’이라 적어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연기까지 덧붙였다. 선생님이 다시 묻자 나는 말했다.


“네, 저도 취업을 원해요.”


그 말이 내 입술을 떠나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교무실 문을 나서며 이를 악물었다.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돈을 벌어, 나 스스로 원하는 길을 반드시 가리라고. 그 다짐이 없었다면 그날의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은 결국 한 살 어린 여동생이 갔다. 부모님의 선택은 언제나 ‘공부 잘하는 아이’였으니까. 여동생은 내 돈을 빌려 대학을 다녔고, 졸업했다. 나는 속으로 씁쓸했지만, 동시에 뿌듯하기도 했다. 적어도 내 힘이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 문을 밟지 못했지만, 사회로 곧장 나아가 대기업에 입사했다.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어린 시절 빼앗겼던 꿈의 조각들을 하나씩 다시 주워 담았다.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바이올린 동아리에 들어갔고, 일본어 학원도 조금 다녔다. 퇴사 후에는 도자기도 배웠다. 그 시간들은 삶의 낭비라기보다는, 억눌렸던 영혼을 되찾는 작은 복원 작업이었다.


하지만 수능을 치르지 않았던 나는 어느 순간 막막해졌다. 나이가 들자 어린 시절의 상상력은 희미해졌다. 종이만 봐도 그림이 펼쳐지던 마음은 사라지고, 머리는 굳어 버렸다. ‘성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은 반은 진실이었지만, 반은 거짓이었다. 현실에는 시간과 책임이 있었고, 뒤늦은 시작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었다. 집 안에는 미완성의 잡동사니들이 산처럼 쌓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멈출 수 없었다. 무에서 유를 빚어내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만두라 하셨다.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단순하게 살아야 인생이 달라진다고. 그러나 내게 그것은 삶의 활력이자 기쁨이었다. 나는 어쩌면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 결과물들을 퍼주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주로 직장이 나와 맞지 않을 때, 가끔씩 생각한다. 만약 그때 진학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른 나, 다른 길이 있었을까? 그러나 곧 깨닫는다. 그것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나는 이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내 삶 곳곳에는 여전히 예술이 스며 있다는 것을. 책상 위에 남겨진 선 하나, 집구석에 쌓인 흙조각, 가끔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그것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이 내가 버리지 못한 꿈이며, 여전히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