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사 테스트
나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 얼굴은 분명히 나인데, 그 안을 오래 응시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사실 바보가 아닐까?’
어릴 적부터 그 의문은 내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수학 시험지 위에는 붉은 빗줄기 같은 채점의 흔적이 늘 흩뿌려져 있었다. 중학교 시절, 0점, 8점 같은 숫자들은 내 이름과 함께 붙박이처럼 따라다녔고, 나는 나 자신을 시험지 위의 실패로 규정해 버렸다. 다행이라면, 혹은 불행이라면, 암기과목만은 비교적 수월했다. 한 번 읽으면 나만의 상상력과 연결되어 오래 남았고, 나열된 사실을 외우는 데에는 능숙했다. 그러나 논리와 추론, 수학적 직관이 요구되는 과목 앞에서는 언제나 무너졌다.
그런 무너짐은 단지 교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기억은 내게 유난히 박약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이름은 더더욱 잡히지 않았다. 직장에서조차 나는 늘 허둥대며 빌린 물건을 제때 돌려주지 못했고, 어떤 날은 매일 마주치던 얼굴조차 낯설게 느끼곤 했다. 몇 달간 주 2회 이상 본 이가 불현듯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해 진땀을 흘렸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탓했다. 집중하지 못한 내 탓, 부주의한 내 탓. 다른 세계로 빠져드는 버릇은, 어릴 적부터 익숙한 일이었다. 선생님의 말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지면 나는 이미 상상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 있었고, 누군가 웃으며 말을 걸면 나는 뒤늦게 대답하며 당황한 얼굴을 감추었다.
그러니 나는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이해력도 부족하고, 집중도 못하고, 허둥거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으니 세상은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회사에서의 하루는 늘 고립의 체험이었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구석에서 혼잣말을 삼키곤 했다. 어둠 속에 숨어드는 기분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끝없이 끌어안고 자책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지?’
어느 날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IQ TEST’를 입력했다. 어쩌면 나를 규정할 새로운 답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무료로 제공되는 멘사 식 문제들이 화면에 펼쳐졌다. 낯선 도형들과 규칙들이 주어졌고, 정답은 내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혹시 나는 바보가 아니라, 단지 어딘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작은 불씨가 나를 실제 시험장으로 이끌었다. 돈을 지불하고, 정식 멘사 시험에 응시했다. 부산역의 낯선 방 안, 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문제지를 받아 들었다. 기묘하게도, 그 순간 나는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시험지는 나를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곳은 내가 끝없이 미끄러졌던 세상의 교실과 달랐다.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만 풀면 되는 세계. 잡음을 걷어낸 공간에서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시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첫 번째 결과를 받았을 때,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늘 더 큰 대답을 갈망한다. ‘조금 더 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다시 시험을 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게 놀라운 수치를 안겨주었다. IQ 144. 상위 3%.
그 수치는 나를 벼락처럼 치고 지나갔다. 멘사의 문은 아쉽게도 상위 2%에서 열렸으니, 나는 한 계단 차이로 그 문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집착도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상한 충족감이 내 마음을 채웠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토록 바보처럼 살아왔던 걸까?”
IQ라는 숫자는 높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실수를 거듭했고, 여전히 누군가의 얼굴을 잊고, 여전히 사회에서 벗어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숫자가 내 삶을 구원해주지는 않았다. 단지, 나라는 존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혹시 나는 바보가 아니라, 단지 다른 길로 걸어가는 사람일 뿐은 아닐까. 집중하지 못한 게 아니라, 다른 세계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기억하지 못한 얼굴들, 그 자리에 없던 표정들, 이름들 대신 나는 예술적인 장면과, 이야기와, 시 등을 상상하고 기억했다. 그 기억들은 때로는 내 삶을 붙잡아주는 작은 구명줄이 되었다.
멘사 테스트는 나를 합격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자기 자신에게 합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무가치하다’는 오랜 낙인을 지워낼 작은 지우개가 되어주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사회에서 서툴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시험지 위의 붉은 점수도 아니고, IQ라는 차가운 숫자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 방식대로 살아남아 있었다. 그것이 때로는 실패처럼 보이고, 때로는 기만처럼 느껴지더라도, 결국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며 나의 길을 걷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멘사 시험장은 내 고독한 행군 속의 작은 쉼터였다. 그것은 나를 구원하지 않았지만, 나를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바보라 부르지 않는다. 단지 조금 서툴고, 조금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일 뿐이다.
내 안의 어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때때로 별빛 같은 통찰을 발견한다. 그 별빛은 나를 인도한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고독한 행군을 이어가며,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