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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나 Nov 30. 2024

너와 나 우리의 '학습둥지 프로젝트'(19)

천만원줄께 그냥 학원 보내!

1년 가까이  아이들과 영어 수업을 하면서 내 일상도 안팎으로 많이 바빴다. 

 1회 이 상 우리 집 두 아이와 나는  수업 일정에 맞춰  함께 나 다녔다. 영어 배우러 가는 길 동네 녀석들이 보이면 함께 내 차로 태워 다녔다. 초창기 멤버인 정호는 엄마가  직접 데리고 가겠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항상 내 차 한 켠이 정호 전용석이됐다. 아이가 넷이나 되다 보니 정호 엄마도 아이도 제 때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보듯 뻔히 알고 있으니 늦지 않게 우선 태우고 봐야 했다. 수업은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일찍 온 엄마들이 도울 수 있다면 교재와 책상 정리도 하고 선생님께 따뜻한 차 한잔을 드리고 수업 내내 소란스러운 몇몇 아이들 엄마는 감시목적으로 옆 자리에 앉거나 함께 수업에 동참한다. 엄마와 함께하는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각자 돌아갈 수 있지만 형아와 함께  하는 조카 윤이는 최근에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우리 집 둘째 아들이 된 상황이라 윤이까지 집으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의 영어 수업은 마무리된다.  




그렇게 영어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이제 고작 6세 8세인 두 아이를 씻기고 정리하다 보면 11시를 넘기는 경우도 빈번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구석 살림 역시 윤이 나기 힘들었고 얘들도 나도 집에 오면 고꾸라져 잠들기 바빴다. 어쩔 수 없이 아빠가 가사의 일정 부분을  도 맡아야 했다. 애 아빠는 천성이 깔끔한 사람이다. 시댁어른들도 반들반들 윤이 나게 정리하고 닦는 분들이라 습관이 몸에 배어 내려온 듯 애 아빠도 너저분한 일상을 살지 않는 남자다. 그런 그도 1년 가까이 쓸고 닦는데 한계를 느낀 것인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뜬금없는 소릴 한다.


" 내가 천만 원 줄게, 얘들 학원 보내면 안 될까?"


솔깃한 천만 원 제안에 우선 듣고나 봐야겠다 싶었다.


"벌써 1년 가까이 너 애들 데리고 영어 배운답시고 늦게 들어오고 있어. 너만 늦는 건 상관없는데 어린애들이 늦은 시간에 들어오니 얘들도 피곤하고 너도 뭘 그리 하는진 모르겠지만 온 동네  애들 끌고 다니면서 내가 볼 땐 딱히 소용도 없어 보여. 집도 봐봐. 청소며 빨래며 엉망진창이야.

영어를 배운다는데 재현이도 아연이도 정작 뭘 배우고 있는 게 맞긴 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거 같아. 내가 돈을 너무 못 벌어줘서 쟤가 저러나 싶은 맘도 든다니까. 내가 차라리 돈을 줄 테니까 학원을 보내! 내가 더 달라면 적금이라도 털어줄 테니 그걸로 학원 보내고 애들 그만 끌고 다녀!"

 

지금이야 돌이켜보면 애 아빠가 오죽 힘들면 저랬을까 싶어 피식 웃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에 나는 예민할 대로 예민한 상태로 반쯤 맛이 간 상태였다.

뜬금없는 천만 원 제안에 솔깃함보단 눈이 뒤집혀 날뛰기 시작했다. 나란 인간은 크게 노여움은 없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사자후를 토해내는데 마지막 발악은 2022년 아빠의 임종 직전이었다. 그 이후 2년 만의 사자후였으니 애 아빠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아니 당신은 내가 시답잖게 러나 다니고 애들 학대하는 걸로 보여? 얘들한테 영어공부시키느라 이렇게 나돌아 다니는 걸로 보이냐고!! 영어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어. 공부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친구와 엄마와 함께 하는 걸 배우러 다니는 거야.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우리 엄마가 나와 내 친구들을 위해 함께 노력했구나.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노력했구나.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값지구나. 어른이 됐을 때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함께 도와가며 헤쳐나갔던 기억과 경험으로 굳건히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걸 천만 원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아? 그게 고작 천만 원 밖에 안 될 거 같냐고!!!."


그날의 부부싸움은 일방적인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남편에게 다시는 천만 원짜리 제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 남자 천만 원을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어찌 됐건 이 남자 없인 힘들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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