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명의 아이들과 스무 명의 엄마들이 모였다. 항상 함께 다니던 엄마와 아이들 외에도 새롭게 참여하는 다문화 엄마 다섯과 다문화 아이 열이 더 모였다. 이제 우리에겐 서른 명의 아이와 스무 명의 엄마들이 함께다.
첫날 아이들을 연령 별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어린 연령과 큰 아이들은 수준이 맞지 않아 함께 배우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어선생님은 함께 활동하시는 최재승교장선생님 사모님과 함께 강의를 시작하셨다. 같은 날 엄마들이 함께하는 클래스에선 통성명을 하고 베트남 샌드위치인 반미 만들기를 시작했다. 요리를 하면서 처음 만나 어색했던 분위기는 10분 만에 언니 동생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함께한 다문화 엄마들 중 한 번이라도 마주쳐 본 이는 미용실에서 근무하는 지은이 밖에 없었다. 다들 어디서 그렇게 잘 숨어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좁은 시골 바닥에서 그녀들을 본 적이 없다.
아직 한국말이 조금 서툴긴 해도 서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모두들 둘 이상의 자녀들 둔 엄마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마구 쏟아졌다.
베트남에서 온 지은이와 진미 그리고 혜령이, 네팔에서 온 혜은이와 지애.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어리고 다들 예뻐서 '이렇게 어리고 팔팔한 엄마들이 우리처럼 늙다리 엄마들과 어울리긴 할까?' 생각도 잠시 했다. 솔직히 그랬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배우고 베트남 요리를 배워보면서 여자들이란 국경과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가 있고 공통의 이야깃거리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나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5평짜리 공부방에서 다누리도서관으로 단양도서관에 이어 올누림 가족센터까지 4번이나 강의실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궁지에 몰린 쥐 모양으로 무작정 찾아간 가족센터 팀장님께 배울 곳 없는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며 생떼도 써가며 2024년 여름, 가을, 겨울은 올누림에서 마지막까지 배울 수 있게 됐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 기존에 수업을 듣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부분이 생겼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새로 편입하는 아이들과 수준이 맞지 않아 오랫동안 배워온 아이들 입장에선 반복되는 내용에 지루해했고 처음 온 아이들은 낯선 환경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들 각자의 모든 요구사항을 수용하기 힘들었으며 이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선 포기해야 할 부분이라고 합리화했다.
올누림으로 이동하면서 초기 멤버 다섯 중 하나인 카페사장 네 첫 째 딸이 포기를 선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포기했다. 아빠의 입장은 이러했다.
" 1년 간 아이와 함께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오려고 했어요. 우리 집 아이는 싫다는 내색 자체를 안 해요. 뭐든 가자면 가고 하자면 하는 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다 좋다 의견도 크게 안 내비쳐요. 얘를 데리고 다녀보면서 제가 수업을 쭉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아이들이 고정적인 것도 아니고 장소가 바뀔 때마다 소란스럽고 선생님이 아이의 수준과 상태도 제대로 파악을 하고 계신지 의심스러워요. 그래서 제가 애 엄마에게 그만두자고 했어요. 아무래도 전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 아버님 의견을 존중합니다. 무료로 오픈된 수업이라 개별 아이들에게 맞춰서 수업을 하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더 좋은 효과를 원하시면 학원이나 과외를 알아보시는 게 저도 맞다고 봅니다. 그 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초창기 다섯 아이 중 한 아이가 그만두고 떠나던 날. 많은 기억이 떠올랐고 많은 부분이 아쉬웠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수업이다 보니 모두의 요구를 채우기가 더더욱 힘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