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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Nov 11. 2023

밤 산책

Starry, Starry night _Don Mclean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한 밤 산책을 즐긴다. 예전엔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집에서의 일들을 처리하고자 주로 낮시간에 서둘러 산책을 다녀오곤 했는데 요즘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주로 해가 가라앉은 초저녁 산책을 더 즐기는 것 같다. 노골적이고 빤한 한낮의 실루엣들이 어둠에 가려 모호해지고 모든 존재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세속적인 조건이나 형태를, 위압감이나 균형마저 모두 허물어 버린다. 빨간색도 파란색도 노란색도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각자의 개성을 잃고 만다.


어둠 속에서는 아는 사람을 마주치더라도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무수한 군중 가운데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해진다. 그게 마음에 편안함을 준다. 곁을 스쳐 지나는 숱한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는 하나의 존재가 될 뿐.. 이른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화장으로 덧칠한 얼굴도 맨 얼굴의 날 것도 어둠 속에서는 모두 무의미해진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산책로에는 찬 공기에 스치는 나뭇가지의 떨림과 추위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사람들을 반기는 연약한 들풀들, 사뿐사뿐 걷는 내 발걸음만이 당당히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그 길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걷고 달리는 행위는 내 정서에 포만감을 준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상념들을 정리하고 마음을 리셋하여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할 동력이 되어준다.

파리 오르셰미술관 「별이 빛나는 밤」 2023.07.25.

지난여름휴가 때 파리 오르셰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실물로 영접했다. 고흐에 대해서는 십여 년 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한 게 전부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가치만큼이나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1888년 9월)에서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고 말했다. 밤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별이 사람들의 순수함을 얼마나 자극하는지 그토록 낭만적인 밤을 표현한 고흐는 분명 밤을 사랑한 화가였을 것이다.


한때는 밤이 될수록 정신이 더욱 선명해지는 게 싫어서 아침형 인간으로 변모하고자 안간힘을 써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심지어 먼 여행지에서 몸이 피곤할 때조차도 나의 생체는 밤이 될수록 점점 깨어나면서 활기가 돌았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아야지 남들이 옳다는 데 좌지우지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후부터는 주말에도 늦잠을 자고 싶으면 몸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과 오전 업무가 하루 중 제일 버겁다. 오랜 직장 생활로 지금은 꽤나 익숙해졌지만 그 모든 걸 미룬 채 밤의 고요와 익숙한 듯 스산한 새벽 공기를 즐기고 싶을 만큼 밤은 때때로 잠들고 싶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다.

https://youtu.be/oxHnRfhDmrk

Vincent (Starry, Starry Night) _Don McLean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화가들 중에는 좋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나쁜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있듯.
Vincent van-Gogh(187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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