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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Feb 12. 2024

인생은 모험

혼자말고 같이

첼로 선생님 : 쌤, 손가락을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나 : 애고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요.

첼로 선생님 : 새끼손가락이 혼자 가면 안 되고 넷째 손가락도 같이 가야 해요.

나 : 아 다시 연습할게요!     


첼로를 시작한 지 5개월 남짓 지나자 스즈키 연습곡 1권을 끝내고 2권을 시작했다. 캐럴 메들리도 배우면서 크리스마스 지나고 기다리던 2권은 영국 민요 ‘그 옛날에’로 시작되었다. 새로 펼쳐질 12곡의 연습곡들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3번째 곡에서 또 바흐 선생님의 미뉴에트를 만났다. 기본음 16개만 알아도 어느 정도 연주가 된다는 내 학생의 말에 귀가 얇아졌던 작년 여름. 뭔가 생각이 들면 당장 시작해보는 성격에 발동이 걸렸다. 작년 여름에 꼬맹이 학생 2명과 수영장 다녀오다가 차 안에서 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악기를 사고 학원에 가서 개인레슨을 시작했다. 학생의 말대로 정말 16개 음을 가지고 에델바이스 같은 작은 곡은 연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습곡 1권이 끝났다.     


2권이 되니 제2포지션으로 연주하는 기법이 나왔다. 첼로는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 이렇게 4개의 손가락을 최대한 벌려서 지판을 잡으면소리를 내는데, 제2포지션은 제1포지션보다 아래 현을 잡아야 한다. 제2포지션에서 제1포지션으로 가려면 빠른 속도로 휘리릭 지판의 윗부분으로 올라와 정확한 위치를 잡아 소리를 내야 한다. 이 위치 이동을 할 때 계속 눈으로 지판을 보고 할 수 없어서 감각적으로 음을 찾아야 하는 감도 익혀야 했다. 또 4개의 손가락은 따로 놀면 안 되고 한 세트로 같이 다녀야 한다.    

  

나는 새끼손가락 혼자 내려가 음을 잡고 휘리릭 제1포지션으로 올라오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잘못된 방법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포지션이 많이 움직이니 뭔가 연주에 폼이 난다고 느껴졌다. 한껏 스스로 감동하며 연습을 했는데 새끼손가락이 네 번째 손가락과 같이 이동해야 하며 다시 연습해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뿔싸. 손가락 둘을 함께 약간은 벌린 상태에서 이동하는 연습을 하자니 힘들었지만 그래도 연습을 하니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더욱 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연주를 할 테니 이제 어려움의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싶었다.      


첼로를 배우면서 왼손 손가락이 일생 최대의 노동을 하고 있다. 기타 배울 때처럼 손가락이 아프고 괴로울 것이라 상상하며 굳은살이 손톱 밑에 딱딱하게 올라앉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손가락이 아픈 게 아니라 손가락을 충분히 벌려서 음을 제대로 잡는 것이 어려웠다. 또 포지션 이동 때 손가락 네 개의 형태가 바뀌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였는데, 그런 작은 도전들이 나를 흥분시키고 더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브람스, 모차르트, 슈베르트 자장가를 첼로 연주곡으로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연주할 상상을 하면 얼굴에 미소도 퍼진다. 첼로를 안고 씨름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유튜브에 있는 피아노 반주곡으로 선생님과 함께 듀엣으로도 연주한 <학교 가는 길>을 연주해 보니 신도 났다. 완전히 신이 나서 혼자 달떠 손모양이 잘못된 줄도 몰랐다.


딸 아이가 신생아 때 밤에 잠을 안 자서 내 눈에 다크 써클이 생길 때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힘이 났던 것처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연주해 보니 그럴싸하게 들리고 연습을 계속할 힘이 생긴다. 넷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같이 가듯, 피아노 소리와 첼로 소리가 같이 가니 생각 없이 시작한 첼로가 내 인생의 악기가 되고 있는가 싶었다. 하지 않은 것을 한 것보다 후회하는 것이 사람인지라 모험이라는 본능에 내 시간을 내주려 한다. 그중 하나가 첼로였다


 
 얼마 전 미술 작품을 해설하는 책을 보다가 로댕의 <대성당>이라는 작품을 보았다. 두 오른손이 서로를 향해 부드럽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두 사람의 오른손이었다. 첼로 지판에서 함께 있어야 하는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처럼, 다정히 함께 바라보는 이 두 오른손의 주인공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이 <대성당>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출판사가 제목을 잘못 썼나 생각했다. 대성당이 왜 두 손이란 말인가? 검색을 해보니 틀린 것이 아니었다. 1908년에 로댕이 만든 작품이고 로댕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원래는 이 손을 분수의 장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결국 독립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분수 위에 이 두 손이 있었다면 이런 따스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서로를 향해 어루만지듯 내민 이 두 손은 아마도 대성당이라는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그게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 모든 종교는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탐욕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잡아주라고 한다. 내밀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수십 년 인생 풍파를 같이 받아내고 견뎌온 배우자나의 인생을 다 걸겠다고 결의한 연인과의 손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또 다른 모험은 혼자보다 ‘함께’가 좋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이다. 캘리그라피든 독서든 영어든 내가 할 줄 아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동아리를 만들고 젊은이와 나이든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해 보고 싶다. 그래서 올해는 대학원에 수업도 듣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면 이미 나는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지만, 60대부터 시작되는 노년의 인생 3막을 지금까지의 삶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부님의 권면에 귀가 얇아졌다.


폴 투르니에의 말처럼 모험은 위대한 충동이다. 그는 모험을 본능으로 보았다. 모험에는 억누를 수 없는 힘이 있고 특별한 기쁨이 있다. 모험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력에 사로잡히고 한번 잡히면 쉽게 나올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신앙의 권태로움과 무기력함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작년 벽두에 대한 성공회 교회에 등록하고, 신자가 되었다. 2017년 100주년을 맞이한 교회가 문을 닫은 비극에 몸을 던져 다시 교회의 불을 밝힌 신부님의 모험에 나는 매료되었다. 나는 이 모험자의 뒤를 따라 나의 모험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교회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녀는 성인이 되었고 남편은 은퇴해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이 시간이 내 인생에 공부할 마지막 기회다 싶었다. 폴 투르니에가 <노년의 의미>에서 말하는 제2의 이력을 만들어 나가는 기회다. 제2의 이력은 좀 더 개인적인 면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그도 내과 의사에서 환자의 속내를 듣는 심리학자로 조금씩 변해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로댕의 <대성당>처럼 혼자 말고 둘이 좋고, 둘이 모여 여럿이 되어도 좋다는 것을 특히 젊은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80% 이상이 비혼주의자가 된 것 같다. 20대~40대 미혼자 중에 연애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0% 정도라고 한다. 좋은 대학 나오고 공기업에 들어간 조카도 결혼하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걸 보면 경제적 이유가 반드시 비혼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집값이 문제일까? 집값이 싼 지방 소도시에서도 혼인율이 도시보다 높지는 않다. 비혼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 변화에서 오는 것 같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랑방이 있어야 한다. 욕망을 부추기는 소셜 미디어 말고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오프라인 사랑방을 만드는 모험의 시작. 인생은 어차피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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