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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0. 2023

불안한 서른, 기록을 시작했다

서른. 서른이라면 다들 한 번쯤 고민을 하게 된다.


'20대를 내가 잘 보냈나? 벌써 앞자리가 3이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등등.


나는 이런 서른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다룬 영화가 있는지 궁금했고, 우연히 나의 서른에게라는 영화 제목을 발견했다. 방황하던 서른의 나는 제목에 이끌려 주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나의 서른에게 줄거리는 이렇다. 앞만 보고 달려온 ‘29살의 임약군’은 나름 성공했지만, 현재의 행복이 사라져 가는 걸 느낀다. 사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달려왔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대비되는 ‘29살의 황천락’은 딱히 잘난 건 없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며 행복하게 산다. 임약군은 매일이 행복한 황천락에게 의문을 가진다.


“넌 왜 그렇게 행복한 거야? 왜 매일 과거를 회상해? 추억은 아름답지만, 사람은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하잖아.”


이에 대해 황천락은 이렇게 말한다.

“4월 3일이면 난 서른 살이 돼.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행복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거지.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만은 않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야.”     


-나의 서른에게 中    


황천락이 주는 메시지는 매일 사소한 기록으로도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음을 전해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황천락은 자신의 일기장 표지에 “황천락의 즐거운 일기”라고 써놨다. 그 일기에는 인생 최고 점수받았던 날, 돈 모아서 앨범 산 날... 등 소소하지만 행복한 기록들이 무수히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내 일기장이 떠올랐다. 내 일기에는 주로 '상처받았던 날,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미래의 다짐'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동안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거나,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만 일기를 찾았다. 그렇게 쌓인 내 기록들엔 즐거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했을까?'


마음속에 꽁꽁 숨기고 싶었던 것들만 적어서 그런지 속상함만 가득했다. 미래를 향해 후회 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과거의 기록에서 나는 '부족함 투성이, 반성만 하는 사람'이었다. 잘했거나 뿌듯했던 것들은 기록보다는 그때 잠시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마음 한편에만 남아있었다.      

2020년 10월, 서른이 끝나기 전까지 3개월 남았을 무렵.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다시 ‘나’라는 사람을 일상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소소하고도 평범하지만 작은 즐거움이 있는 일상으로 일기를 채워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이슬아 작가님의 수필집 구독 서비스에 영감을 받아 "일기 구독 서비스"를 해보고 싶었다. 사실 '내가 작가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내 일기를 누가 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이 내 스토리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방황하는 서른의 고민, 생각들을 담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것처럼 ‘서른을 겪었던, 또는 앞으로 서른을 겪을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잔잔한 웃음, 위로를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사적인 일기를 원하는 소수에게만 공개하기로 했다.

구독 서비스인 만큼 금액을 결정해야 했다. 전문 작가님들의 구독 서비스를 조사해 보니, 평균적으로 매달 10,000원 이상을 받는 듯했다. 비전문가인 나는 ‘그 절반인 커피 한 잔 값으로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한 달에 최소 20편 이상의 글을 커피 한 잔 값이라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자마자, 방구석에서 촬영하고 그날 바로 유튜브에 일기 구독자 모집 영상을 올렸다. (메리쥴리가 매일 쓰는 일기라서 "매일쥴리"라고 지었다.)

월~금까지 매일 노트에 손으로 직접 쓴 일기를 일일이 찍어서 또렷하게 보정 후, PDF 형태로 합친 뒤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전송하였다.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보여주기 식"으로 변질되지 않는 것이었다. 남들과 공유를 하더라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어땠다~"라고 끝나는 단순한 하루 일과를 공유하는 일기가 아니라, "깨달은 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에세이 형태로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에세이 쓰는 법, 글 잘 쓰는 법 등과 관련된 책들을 수시로 찾아 읽었고 진심으로 글을 쓰고 공유했다.

일기 구독 서비스는 90일 동안 진행되었다. 기록을 통해 나를 완벽히 알았다거나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었다거나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안정을 되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달라진 게 있었다면 당시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동시에 지난 매 순간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서른을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이메일로 보내드리던 <매일쥴리> 일부 캡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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