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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1. 2023

약점을 드러내고 나서 생긴 일

어느 날,  유튜브 채널 구독자 분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혹시 회사 유튜브 콘텐츠 기획자로 근무할 생각이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제안에 경계심이 들었는데, 그분은 현직원임을 인증하는 사원증과 본인 책상 사진을 메일에 함께 첨부해서 보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입사 제안을 받다니..'


수험생을 위한 콘텐츠 기획 업무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내 유튜브 채널 코너 중 수험생들을 위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소소하게 운영하던 개인 채널론 공시생이나 취준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제공하기엔 영향력에 한계가 있단 걸 느껴오던 참이었다. 공무원 수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에 소속된다면 더 많은 수험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욕심이 생기던 도중에 찾아온 감사한 제안이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나의 포지셔닝이 '공무원 시험 경험 보유 & 유튜브 채널 운영'을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언급해 주셨다. 기획팀 팀장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1,2차 면접을 본 후 최종합격을 했다.

이직을 준비하는 약 한 달 동안 설레기도 했지만 부담이 되었다. '내가 취미로 개인 유튜브만 운영을 해봤지, 마케팅이나 기획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비전공자인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선택에 대한 후회보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큰 부담을 안고 입사를 했지만, 역시 무언가를 겪기 전까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차근차근 알려주시는 사수 덕분에 나는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컴알못이었던 나는 입사해서 프리미어 프로, 포토샵 기초 다루는 법 등을 배웠고 업무에 적용하여 일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5개월쯤, 파일럿 영상을 거쳐 기획한 코너의 첫 영상을 선보이는 날이 왔다. 대본 작성부터 전 과정을 직접 기획했다. 기획이라는 업무를 맡아본 적도 없는 내가 부딪치면 또 하게 되는구나를 느꼈다. 사실 코너를 기획하고, 첫 영상을 촬영하던 날부터 영상 업로드 당일까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이 콘텐츠가 잘 될까?' 책임감과 부담이 더해졌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합격생 인터뷰의 대본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건 항상 수험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였다. ‘내가 수험생이라면 어떤 점이 궁금할까?’였다. 섭외나 주제 선정의 어려움 등 여러 상황들도 있었지만, 첫 영상부터 운이 좋게도 반응이 좋았다. 2년간의 수험 생활이 고스란히 반영된 내 인터뷰 질문들 수험생분들의 댓글 반응은 감사하게도 긍정적이었다. 나도 수험생의 입장이었어서 알지만, 도움 되지 않으면 누구보다 칼 같고 냉정한 수험생분들께서 직접 댓글을 남겨주시면서 좋아해주시기까지하니 특히나 내게 큰 의미로 와닿았다.  



준비 과정에서 아무리 힘들고 시간이 걸려도 보람 되었다. 내가 수험생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 경험을 살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콘텐츠가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바닥 치던 백수였는데, 우직하게 하다 보니 그 노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기획한 코너를 진행하면서


합격생 인터뷰를 하면서 문득 과거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내가 인터뷰 진행을 할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상황 자체가 스스로도 너무 신기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려워했던 내가 회사 유튜브 영상에 직접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니..'


원래 나는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귀부터 시작해서 얼굴 전체가 빨개지곤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근데 이상하게도 유튜브 영상을 찍으려고 카메라 앞에만 서면, 친구한테 재잘재잘 이야기하듯이 말이 술술 나왔다. 그리고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취미에서 직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졸업이 다가올 때쯤엔 매일 불안에 가득 찼던 내 모습에서, 나를 알아갈수록 불안은 점차 사그라들고 조금씩 나만의 색깔은 짙어지고 있었다.




공시를 포기하고 첫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2년의 공백기를 숨기지 않았다. 내 유튜브에서도 2년의 수험생활을 겪고나서 극복한 과정을 담았다. 사회에서 실패로 여겨지는 것들을 굳이 드러낸 이유는 뭘까? 그 과정들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약점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을 드러내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더 알아갈 수 있었다. 약점을 드러내는 게 위험하다는 말도 있다. 괜히 책잡힐 수도 있다며 우리는 실패라고 생각되거나 부족한 점을 숨기기도 한다.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때로는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진정성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있고 꼭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알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우리의 약점을 조금 드러내보는 데 용기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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