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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1. 2023

이직을 많이 하면 부적응자?

퇴사하면 앞으로 뭐하면서 낼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경북 의성 2주 살기"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의성에 연고도 없고, 가본 적도 없지만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강하게 마음이 이끌렸. 남은 연차를 몰아서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후에도 살짝 망설여지긴 했다.


'지금 휴가 쓸 게 아니라, 조금만 다니다가 마지막에 남은 연차 다 소진하고 그냥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데..'


지금 내린 내 선택이 옳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이젠 정말 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아서 마음 가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2주간의 휴식 결정은 내게 신의 한 수였다. 태어나 처음 가본 의성에서 자연을 느끼고 체험하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의 웃음을 되찾았고 평온을 얻었다. 의성에서 지내면서 어느샌가 원래의 밝은 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놀랍게도.


잔디밭에서 요가
남대천 산책
의성에서 함께한 인연들이 모두 담긴 보드

의성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퇴사에 대한 마음은 확고했다. 결국 서울로 돌아가면 마주해야 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사가 다음 달부터 몇 개월간 휴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무작정 퇴사하려고 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힘내서 다녀보기로 했다. 하지만 다시 다니면서도 또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상사의 부재 기간은 단 몇 개월뿐. 지금 내 상태가 잠깐 괜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주하게 될 현실은 눈에 보이듯 뻔했다. 겨우 괜찮아진 내 상태를 다시 극한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았다.

업무가 힘든 건 어떻게든 내가 해내면 되는데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내가 겪은 고통의 지난날들이곳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한다고 매순간 말해주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자신이 무너지기 전, 지금 알아차렸을 때 벗어나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럼 결국 답은 퇴사뿐일까. 보통 2~3년은 채워야 경력으로 인정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내년 초면 이 회사에서 근무한 지 2년째가 된다.


'지금 그만두기 경력이 아쉬운 거 아니야? 조금만 더 버틸까? 곧 2년이잖아.'


이곳의 빌런을 피하려다가 다른 곳에 더 강력한 빌런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잘 안다. 빌런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빌런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사람을 피해서 회사를 고르기엔 무리가 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만 있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약 1년을 채우기가 무섭게 줄줄이 퇴사하는 직원들이 방증하는 사실이었다. 이 상태로 단지 기간을 채우기 위해 버티는 건 나를 차차 죽여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충동적으로 관두려는 게 아니었다. 3개월 차부터 꾹꾹 눌러온 내 마음은 결국 짓물러졌고 정말 이건 아니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더는 망설이면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일단 버티는 건 아니라는 결론. 그럼 이직을 준비해야 되나? 사실 다시 백수가 되어 느낄 그 불안감은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결국 상사를 다시 마주하기 전 이직해서 여길 떠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상사가 부재한 기간 동안 차차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괜히 조급한 마음에 무작정 다른 회사로 가지 않기 위해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면서도 직무 경험을 넓힐 수 있는 일'만을 선택하기로 다짐했다.

관심 있게 보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의 여러 인터뷰를 찾아보니 직원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느낌을 받았다. 비전에 많이 공감이 되었고 진행하고 있는 메인 사업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 가치관과 잘 맞았다. 사실 외부에서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실제로 내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회사에 직접 소속되어 봐야 알 수 있다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 보기로 결정했다. 결국 지원했던 스타트업에 최종 합격을 했고 나는 퇴사하겠다고 팀장한테 다시 말을 했다. 그랬더니 '너 그러는 거 아니다..다른 곳 가기 전에 어디 갈데 없어서 잠깐 있던 거냐..등등' 막말을 퍼부었다. (나는 그 말들을 다 녹음시켜놨다.) 좋아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퇴사하면서 상처만 남았다. 다니면서도 '그 옷은 학생 같아보인다, 파마하는 게 어떠냐, 지금 누가 이 날씨에 장갑을 끼냐..' 등등 왜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업무와 무관한 수없이 거슬리는 말들을 들었어도 넘겨왔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런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결정을 잘 내렸다고 확신했다.

모든 불쾌한 감정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나는 새로운 곳에서 적응할 내 모습만 생각했다. 그리고 년지원센터에서 청년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기획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이번 계기로 회사를 정할 때 분명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어떤 형태의 근무가 잘 맞고, 어떤 환경에서 능률이 오르는지 등...' 일할 때 나의 성향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곪아가는 나를 계속 썩혀두지 않고, 나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결정을 내린 점에서 후회가 없었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진 몰라도 해방감에 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면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정말 잘했다고.




"누가 회사를 좋아서 다니냐, 그냥 다니는 거지,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냐"라는 말을 듣기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정신이든 육체든 내가 멀쩡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무작정 버틸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시작했지만, 나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용기필요했다. 겁쟁이냐고? 겁쟁이는 오히려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나를 궁지까지 몰고 가는 게 아닐까? 

무작정 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라고 권고하는 게 아니다. 나도 처음에 미친 듯이 관두고 싶었을 때 성과 낼 수 있을 때까지 버티자고 목표를 세우고 나를 다스렸다. 하지만 정말 아니다 싶은 순간, 나를 위해서 결단을 내렸다. 나만 생각하고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게 때론 중요하다. 그 순간만큼은 주위의 시선 다 접어두고 나만 생각해도 되니까 이기적이어야 한다.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먹고사는 것도 나의 행복을 위해 하는 행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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