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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1. 2023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이직한 지 3개월 차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예의를 차리던 상사는 내부 직원이 되니 어느새 함부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강약약강인 무례한 상사 밑에서 내 정신도 피폐해져 가는 걸 느꼈다. 서서히 웃음을 잃었고 점심엔 혼밥을 시작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하루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외근을 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 역에 내렸는데, 광장에 달아놓은 조명들이 유난히 반짝거려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가까이 가봤다. 함께 우편함이 세워져 있었고, 고민을 적으면 답변을 보내준다는 글에 나는 바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나약한 사람인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건데,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복에 겨운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남들은 다 잘 다니는데..'


괜한 자책으로 나만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곧 체념했다. 이제야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찾았는데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성과를 낼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부수적인 말과 행동, 업무 외적으로 마주칠 시간 등은 최대한 줄이고 감정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 생각하며 버티기로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고, 익숙해진 건지 무뎌진 건지 어찌어찌하다 보니 근무한 지 금방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믿고 의지하던 사수는 1년을 채우고 곧바로 퇴사했다. 팀에서 오직 둘이서 기획하고, 유일하게 고민을 나눴던 분이셨기에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더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난다는 그를 조용히 응원해 드렸다. 사수가 떠나고 그 사이 두 명의 팀원들이 들어왔고 팀장은 내게 파트장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1년 6개월이 되어갈 무렵, 그동안 일이 좋아서 버텼는데 이제는 일을 좋아하는 마음까지 흔들릴 정도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좋은 팀원들 덕분이었다. 서로를 다독이며, 누구라도 먼저 이 지옥을 벗어나길 응원해주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었다. 너무나 간절히 사람 이유 하나만으로 퇴사하고 싶었다. 근데 정말 그렇게 결정 내리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계속해서 버텼다. 이렇게 로그아웃을 해버리면 내가 패배자가 되버린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과 정신 상태는 꽤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출근할 때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매번 숨 막히는 경험을 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지속적으로 나를 지배했다. 생각도 행동도 모든 게 비관적으로 변했고 몸까지 영향을 미쳤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고, 피부에는 두드러기가 난 지 2주 넘게 지속되었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먹지도 않았는데 비위가 상하는 비릿한 느낌을 계속 받았고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식욕이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다 보니 온몸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은 곪아가고 있었다.




오전 회의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회의하는 동안 숨통이 점점 조이는 느낌이 들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출근하는 길에 표정이 굳어진 지는 꽤 오래되었고, 내 모든 게 굳어가는 느낌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내가 망가지고 있는데 꾸역꾸역 버티는 게 무슨 의미일까. 지금 이 말을 내뱉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고, 회의가 끝나고 나서 조용히 말씀드렸다.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결국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고야 말았다. 갑자기 그러냐고 는 상사에게 그냥 힘들어서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나가면서 굳이 이것저것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말한다고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며칠 뒤 면담이 잡혔다. 퇴사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보라며 휴가나 휴직을 제안했다. 면담이 길어지며 조금 더 생각해 보라는 말씀에 다음 주 월요일까지 답변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팀장은 그렇게 빨리 결정 내리냐고 하셨다. 하지만 사실상 내 마음은 확고했고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서서히 무너지다 보니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미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지낸 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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