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또래들이 많았던 이전 직장에서의 주된 이야깃거리는 결혼보다 연애였다. 게다가 나는 자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과의 마찰도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본가로 들어왔고, 일하는 곳엔거의 부모님 세대 공무원분들이셨다. 가끔 내게 결혼 얘기도 하셨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상기시키면서 나를 우려하는 주위 어른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환경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꽤 컸다.
부모님도 앞자리가 3으로 바뀐 딸내미가 결혼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질까 봐걱정하시는 듯 보였다.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타이틀을 가진 사람’으로 소개되는 맞선 시장에서“30살, 계약직”은 내가 봐도 경쟁력 없는 타이틀이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정규직이라 고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소속 없이 어딘가 애매하게 끼인 사람.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전부였다.'하고 싶은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의 선택대로 했을 뿐인데, 외부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그걸로 내 평가는 끝나버렸다. 그리고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은근한 압박.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웠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선도 봤다. 기회는 계속 오는 게 아니라는 엄마의 말씀도 이해가 갔다.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그 시기를 왜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한다는 것, 애를 낳는다는 것. 사회적 인식과 흐름이라는 이유로 그 틀 안에 나를 끼워 맞추고 싶지 않았다. 단지내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나”였다.
“멋모를 때 시집을 가야 한다”라는 연애 고수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 가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건데? 누가 책임을 져주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고 결혼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수는 '멋모를 때 안 하면, 결혼이라는 게 맞춰야 되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되고, 보이는 게 많아지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거'라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이가 들면 자기만의 고집이 생기기도 하지만,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아량도 생기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나밖에 몰랐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포기해야 할 부분, 내가 존중해야 할 부분 등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고집은 자신만의 취향 또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사람이 얼마나 다 완벽하고 나서 결혼을 하냐, 일단은 결혼하고 너를 찾아보는 건 어떠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일단 나를 알아야 내가 결혼할 건지, 말 건지 어떤 성향인지 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에 대해 제대로 돌아볼 틈도 없었는데, 갑자기 남은 인생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고르라고 한다. 그것도 20대부터.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남을 어떻게 아는데?
'결혼이 맞는 성향이 누가 얼마나 있겠어, 그냥 하는 거야'라는 말에 나는 그냥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게 인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시기에 맞추고, 남에게 맞춰가며' 그럴듯해 보이는 형태로 살고 싶지 않다. 그때는 이미 늦었을 거라며, 주위에 남자가 없을 거라고 누군가는 또 말한다. 나를 알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보다 누가 옆에 같이 있는 게 더 중요할까?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조건 혼자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나의 시기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결국 내 인생이고 내가 내 몸뚱이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내면을 더 단단하게 한 후,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게 아닐까?
가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을 뿐이고,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 산다는 게 책임감이 없고 철이 없는 걸까?아직 세상을 모르고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본가로 들어오면서 현타가 자주 오고, 부모님과 부딪침의 횟수가 빈번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걱정할 때마다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도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고, 나도 나를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왜 이렇게 부딪치고 서로 힘들어야 할까...
그 해 10월, 나이와 맞물리고 직업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불안했던 서른의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무리 걷으려고 해도 걷히지 않는 안개처럼,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뿌옇게 뒤덮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불안한 감정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하나씩 찾아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어떠한 날들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왔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서른춘기"라는 의미를 두며 이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생각은 없었다.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계약직이어서가 아니라 정규직도 가질 수 있는 불안이었다. 정규직이라고 영원히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퇴사를 한다. 서른이라서 생긴 불안감은 서른이기 때문에 더 불안한 게 아니라, 그렇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나서 취업했을 때에도 나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직업적인 부분의 첫 도전에서는 운이 좋게도 나와 맞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를 탐구하는 여정에 올라와있는 상태였다. 이 시점을 계기로 내 선택과 기준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그래서 이 불안함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