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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0. 2023

나를 차별화하는 방법

새벽 6시, 어김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출근 준비를 하려고 평소와 같이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디디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미끄러졌다. 저리면서 찌릿거리는 통증발끝까지 이어졌다. 잠깐 지나가는 증상이겠거니 싶어 나갈 비를 했다. 근무하면서도 계속 욱신거렸지만 참아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급하게 근무일을 바꿔 다음 날 병원부터 갔다.     


“족저근막염입니다.”

“네..?”

“평소에 서 있거나 많이 걸으면 안 돼요...”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서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에게 최대한 걷지 말라니... 갑자기 발에 많은 무리가 갔던 걸까? 사실 걷는 걸 좋아하던 나는 그 시기에 유난히도 많이 돌아다니긴 다. 그만큼 움직이는 걸 워낙 좋아하던 내게 절망적인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선 체외충격파 치료를 통해 꾸준히 염증을 줄여야 한다고 하셨다. 공항 근처에서는 해당 치료를 받을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고, 결국 인천에서 자취하던 나는 거의 매 휴무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거리의 본가 근처로 통원 치료를 다녔다. 몇 달간 치료를 받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원치 않게 못하게 되면 그땐  하지?’   


입사한 지 약 1년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열심히 다니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스트레칭도 자주 하고, 쉬는 날마다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서 건강이 문제 될 거라곤 더욱이 생각도 못 했다.

2019년 12월,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일상에 예기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외국인들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항에서 매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놓였다. 승객들은 마스크와 보호 캡 등으로 잔뜩 무장한 채 다녔다. 마스크 한 겹 걸치고 일하는 우리의 업무 일상은 인천공항 환승센터, 게이트 등에서 항상 외국인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여권을 검토하는 것이었고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목숨까지 걸고 일하는 걸까?’라는 현타가 왔고, 이직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출근 전 새벽과 점심시간에 짬짬이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쉬는 날엔 자기소개서를 썼고, 연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2020년 2월. 외교부 기간제 실무관으로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 현 회사에 퇴직 의사를 전달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코로나로 인해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던 와중, 보안 인터뷰하는 미주행 노선들이 줄줄이 캔슬되기 시작했다. 미주행 탑승객의 인터뷰를 담당하는 우리의 업무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고, 결국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권고사직과 무급휴가 카드를 내미는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정규직도 언제 어떻게 그만둬야 될지 모르는데,
하고 싶은 경험이나 해보자.

처음 외교부 계약직 공고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이미 몸소 경험했다. 그리고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 남는 경험을 해보는 게 더 중요했다. 외교부 실무관으로 하는 일은 여권 관련 업무였다. 당시 공항에서 여권을 확인하고 승객들을 만나는 업무를 즐겁게 하고 있었고, 이 경험을 살려서 비슷한 경험을 더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지원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경험일 것, 내 건강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가 이직을 고려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실 외교부를 지원할 때도 내가 가진 자격증은 한국사 1급밖에 없었다. 영어 점수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공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지원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이력서를 넣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추고 나서 행동하기보단 일단은 마음이 가는 대로 문을 두드렸다.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처음 도전했을 때의 내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준비도 안된 채 무작정 지원하는 건 아니다. 영어 점수와 자격증은 부족했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어필할 만한 무기가 준비되었는지' 라고 생각했다. '여권 업무 경험''영어를 사용하는 일'로 나를 어필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 두 가지가 내 무기였다. 어디를 지원하느냐에 따라 무기를 선택적으로 뽑아 쓰면 된다. 예를 들어, 서류를 합격했던  공무원 학원 상담 업무를 지원할 때는 '공무원 시험 경험'과 '공항 인터뷰 경험에서 기른 소통 능력 및 CS 마인드' 내 무기로 정했다. 같은 경험이라도 본인의 무기를 무엇으로 정해서 초점을 두냐에 따라, 스토리는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내 자신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온 나만의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준 어설픈 스토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계약직이라서 들어가는 게 쉽지 냐고 말하기엔 요즘 지원자들의 스펙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1명을 뽑는 이 직무에도 스펙이 밀리지 않는 6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전해 들었다. 몇 백 대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에 비할 순 없겠지만, 몇십이든 몇 백이든 결국 다른 사람보다 돋보일 수 있는 나만의 것이 있어야 한. 그리고 그 무기를 가지고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실행력 있어야 한.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용기 내서 돌파하면 자신감이 붙고, 그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내게 부족한 부분보다는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 경험들을 통해 나만의 무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게 자산이고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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