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지 6개월이 지날 무렵,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면서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이 다시 떠올랐다. 일 이외에 취미도 하나 정해 최소 1년은 꾸준히 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새로운 취미를 고민할 겸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끄적였던 노트를 다시 꺼내 살펴보다가 "유튜브 보는 걸 좋아함"이라고 써놓은 지렁이 글씨가 눈에 띄었다.
근데 막상 채널 주제를 정하려니 고민이 생겼다. '하나의 주제로 과연 내가 최소 100개 이상의 영상을 뽑아낼 수 있을까?’ 나름 가능할만한 내용을 쭉 적어봤다. '아이언맨을 좋아하니까 아이언맨이 들어간 활동을 해볼까? 공방가서 만들기?' 아니면 '영어 교육 관련해서 정보성 영상을 만들까?' 등등 써봤지만 일을 병행하면서 해당 주제들로 영상을 만들기에는 조금 부담되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진짜 하고 싶은 이유가 뭔지 정리해봤다.
<유튜브를 하고 싶은 이유>
1.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고 싶은 욕구
유튜브 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유튜브를 보다보면 내가 보려고 찾은 영상에서 시작해 의도하지 않은 영상으로 끝날 때가 다반사였고, 어쩔 땐 너무 많은 시간을 유튜브를 시청하며 빼앗기기도 했다. 그래서 문득 '남의 영상을 볼 시간에 내 것을 만들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내 영상을 꾸준히 만들어보고 싶었다.
2. 기록 및 추억을 남기고 싶은 욕구
내가 성장해가는 과정과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영상으로 남기는것과 글로 기록한것은다른 매력이 있다. ‘저 시기엔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 기분이 들었구나’라는 그때의 감정, 분위기 등이 더 생생하게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추억을 함께한 사람들도 언제든 영상을 꺼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내 도전과 추억을 담으려면 결국 나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찍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이로그를 한다면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브이로그는 성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대부분 추천하지 않는다는 걸 어디선가 봤다. 그럼에도 내가 브이로그를 택한 이유는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라는 취미의 목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근데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촬영이나 영상 편집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며 유튜브를 검색해 보다가 핸드폰으로도 촬영과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장비 욕심 등은 없었기에 핸드폰 편집 앱만 하나 구매했다. 컴알못인 내게 편집 앱은 혁명이었다. 복잡한 툴보다 다루기 훨씬 수월했고 금방 익힐 수 있었다.
평소엔 낯을 가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극 I형 인간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그 나이 때의 나의 생각과 추억을 생생하게 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영상을 올릴까 고민하던 날이었다. “공무원 시험 포기 그 후”에 대한 내용을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 주제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꼭 한번 찍으려던 주제였다. 요즘에야 “공무원 시험 포기했습니다”라는 영상이 많지만, 2018년만 해도 합격수기는 넘쳤지만 불합격 수기라는 건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불합격 수기 영상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올리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을포기하고 나서도 고민이 많을 공시생 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공무원 시험은 합격자보다 불합격자가 많은 시험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겪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포기하고 나서 막막하고 힘들었던 그 감정과 극복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했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평범한 내가 지금 그럭저럭 지내가듯이, 당신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퇴근 후, 책상에 자리를 잡고 촬영을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서 자막까지 모두 넣어 편집을 마쳤고, 30분짜리 영상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9번째 영상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업로드했다.해당 영상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수험생분들이 공감해 주셨고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사실그 영상에서 나는 말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재밌는 요소도 없고 심지어 유튜브 영상치곤 매우 긴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시청해주신 이유는 '우리는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포기했던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을 상황 그리고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나는 솔직하게 드러냈고 공유했다.
그 영상 덕분에 구독자 100명도 안됐던 내 채널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시작한 지 60일 만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했다. 감사하게도 구독자분들은 내 도전과 일상을 함께 응원해주셨다. 점점 영상으로 소통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일을 하면서 출퇴근과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영상을 편집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주일에 최소 1개 많게는 2~3개 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했다. 가장 행복한 취미가 되었고 나는 온전하게 즐겼다. 그냥 하나씩 부딪쳐가며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갔다. 유튜브는 내게 취미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 '카메라, 장비 이런 것들은 내게 너무 낯설고 난 그런 쪽은 하나도 몰라' 하고 겁부터 먹었으면 아무것도 시작을 못했을 거라고.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나서 스스로 정한 나의 한계를 점차 허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