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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0. 2023

일상처럼 접한 열등감

"안녕하세요~00 회사 인사팀 채용 담당자인데요~"


아니. 내 포트폴리오를 봐줬다니.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인사팀에서는 '인천공항까지 거리가 먼데 출퇴근이 가능한지, 영어 회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물어보셨다. 포트폴리오에 만료된 영어 점수를 적어놓았기 때문에 물어보신 것 같았다. 나는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인생에서 배짱이 가장 두둑했던 대답이었지만 사실 문제가 았다. (몇 년 동안 입 꾹 닫고 공부만 했는데 뭘 문제가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가장 부족한 순간에 가장 자신감 넘치게 말하고 있었다. 절박하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더니. 지금까진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나중에 부딪칠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단순하게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그냥 나를 믿기로 했다. 그래도 공무원 준비하면서 영어는 계속 안 놨으니까..

면접일이 잡혔고 바로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바탕으로 나올 만한 예상 질문과 영어 답변들을 모두 뽑았다. 면접 날까지 부지런히 연습했다. 면접 당일 아침, 보안 업무다 보니 더욱 강단 있게 보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흰 블라우스를 입어왔지만, 보안과 안 어울리는 듯 여려 보이는 나의 외관을 보완하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진한 네이비색 블라우스를 옷장에서 골라 입었다.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서 승무원 머리를 하기로 했다. 똥손인 나는 어딘가에 박혀 있던 머리 그물망을 꺼냈다. 끙끙대며 머리칼들을 모두 그물 안에 집어넣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유난히 많은 나의 잔머리들을 왁스로 한번 더 고정했다. 쌍꺼풀이 없는 내 눈 때문에 흐릿한 인상을 줄까 봐, 또렷하게 보이려고 아이라인을 깔끔하게 빼려고 신경 썼다. 튀지 않는 입술색을 발라 마지막으로 생기까지 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준비했고, 그다음은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공항 도착. 면접은 4~5명씩 들어갔고, 나는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암시를 했다.


‘지금 연습하러 온 거야. 떨어져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긴장하지 마. 하고 싶은 말만 다 하고 오자.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더라도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자!’    


운 좋게도 곤란한 질문은 없었고, 제일 걱정했던 영어 면접도 어려운 질문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영어 면접 중 취미를 물어보시는 질문에 ‘제가 힙합 듣는 걸 좋아하는데요~’라고 답변을 시작했다. ‘오! 의외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조금 의외긴 하죠? ㅎㅎ 다들 그렇게 보시더라고요~’라며 넉살스럽게 말을 이어가서 면접관분들께서도 '이 친구 재밌네'라는 표정으로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인생에서 이렇게 넉살스러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스스로도 놀랐다. 대한항공 보안을 담당하시던 면접관께서 면접이 끝나기 전 덧붙이셨다.


"메리쥴리 씨와 00 씨. 단정하고 보기 좋네요. 앞으로 일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다니면 좋겠네요!"


둘러보니 나와 언급하신 지원자만 단정한 머리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름 신경 쓴 블라우스, 구두, 머리까지 아쉬움 없이 나를 제대로 어필하고 돌아올 수 있던 날. 공항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후련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만 신경 쓰며 살았던 나는 절박함이 생기면서 달라졌다. 결국 사소한 용기를 낸 덕분이었다.





"면접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며칠 뒤, 면접을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최종 합격은 아니었다. 담당자는 교육을 수료하고 시험까지 모두 통과해야 채용이 된다고 수화기 너머로 덧붙였. 시작에 불과했다. 

첫 교육을 받는 , 인천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떨렸다. '무슨 시험을 어떻게 볼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등등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교육받는 장소에 금세 도착했다. 먼저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는데 동기들의 스펙은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화려했다. 전 외항사 승무원, 해외 거주 경험 n년차 유학파 등 한국어보다 영어가 능숙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직 수험생이었던 나는 누가 봐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졌.

오후 5시까지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교육 일정은 만만치 않았다. 모든 ppt영어 자료였고, 시험도 당연히 영문 객관식 또는 서술이었다. 당일 교육을 마쳤다고 끝이 아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귀가하면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책상 앞에 앉았고, 다음 날 볼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늦게 잘 순 없었다. 오전 9시까지 공항에 가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험 시작 전까지 필기 노트를 쥔 채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2년 동안 입 다물고 수험 공부만 하던 내겐 이 모든 과정이 더욱 힘들게 다가왔다. 게다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일상처럼 접했다. 그들도 '이 시험 빡세다'라고 했지만, 나처럼 발버둥 치며 가까스로 버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힘들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부딪쳐보니 더 처참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면서 너무 힘들 때는 스스로에게 자기 암시를 했다.


'2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지금 잘하고 있어. 할 수 있다!'

나를 끊임없이 보듬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몇 주의 과정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3개의 최종 시험을 한꺼번에 보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욱 긴장됐다. 시험 결과에 대해 한 명씩 면담을 진행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근데... 점수가... 90,100,79점을 받아버렸다. 세 번째 시험 커트라인이 80점인데 79점을 받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기회가 날아가버리는 걸까?’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근데 아까운 점수여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나 열심히 하던 내가 안타까워선지 모르겠다. 과장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고 하셨고 남아서 재시험을 준비했다.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속상함과 한 번 더 기회를 얻게 된 감사함의 마음이 동시에 들면서 눈물이 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재시험까지 통과하고 나서 문득 과장님께 여쭤봤다.


“이 일이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어떤가?”

“음... 적응을 잘 못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적응해서 잘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본인이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잘 버틸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에 왜 저런 질문을 했는지 돌이켜보면,도전을 두려워했던 나는 이제 정말 실전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다시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직접 부딪치기 전까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또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순간 불안을 마주하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아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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