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꼬라지 있어요 (1)

-나는 활보다

by 오드리

새벽 두 시 오드리의 폰이 울린다.

하현우의 '돌덩이'는 시작부터 경쾌하게 내지르는 노래다. 가사도 좋아서 오래도록 벨소리로 유지해 오는 중이다. 하지만 톰이 전화질을 하면서부터 그 소리는 공포가 되었다. 오드리는 반사적으로 폰을 들고 안방 화장실로 뛰어든다. 남편은 처음부터 톰을 반대했다. 시각장애 독거남이라는 조건만으로 두말도 못 붙이게 했다. 오드리는 이런 이용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며 독단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남편한테 그 불편한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고 사모님 늦게 죄송합니다." 톰은 술에 취했을 때만 나오는 건들거리는 말투가 있다. 죄송하다고 하지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 "아 이거 참 나 지금 집에 가야 되는데 택시비가 없어서요." 마야네에 있는 줄 뻔히 아는데 택시비 타령이라니, 오드리는 버럭 화가 난다. "아까 부친 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네네 그건 아는데요, 사정이 그리 됐어요. 사모님이 좀 빌려주면 안 될까요?" "저는 이용인과 돈거래는 안 한다고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아이 씨발 더럽게 빡빡하네......." 톰의 인내심은 곧장 바닥이 난다. 오드리는 조용히 전화를 끊는다.


자정 전, 불과 두 시간 전에 남은 돈 삼만 원을 몽땅 부치면서 이게 마지막이라고, 더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고, 톰도 네네 사모님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깍듯이 인사까지 했다. 그런 약속 따위 가뿐하게 무시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드리로선 맥이 빠진다. 오드리는 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침대에 누웠다. 곧 진동이 울린다. 고요한 공간에서 울리는 진동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천둥은 계속 울린다. 사모님 나 꼬라지 있어요, 비밀을 말하듯 결연했던 톰의 표정이 떠오른다. 네가 내 전화를 안 받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톰의 관심사는 이제 돈이고 뭐고 오드리가 전화를 받나 안 받나에만 쏠려있는 것이다. 승부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기싸움 따위 오드리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끝까지 전원을 끌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톰이 과연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볼 셈이다. 오드리는 진동소리를 남편이 들을까 봐 품 안에 끌어안은 채 모로 누웠다. 맞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 이불까지 들썩거렸다. 심장은 이미 처음부터 요동치고 있었지만 짓누르는 듯 뭉근한 고통이 더 커 그때까지도 감지하지 못했다.


오십 대 후반인 톰은 십여 년 전 시각장애인이 된 후 직장도 부인도 잃었다. 기초수급자가 되려고 선택한 위장이혼이 현실이 돼 버렸다. 아이 둘 데리고 톰과 재혼한 부인은 톰이 시각장애만 안 되었어도 눌러살았을지 모른다. 톰은 후천적 시각장애라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지인들이 가짜 장애인이라고 놀리는 게 무리가 아닐 만큼 톰은 혼자서도 잘 다녔다. 그러나 두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고 한 보따리나 되는 약을 타오는 걸 보면 시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톰은 자기 앞으로 온 우편물을 확인하지 못할 때가 제일 짜증 난다고 했다. 우편물이라야 공과금 고지서, 채무나 연체 독촉, 법원 서류 같은 게 대부분이었다. 어디 전화를 할 때도 폰을 눈 안에 밀어 넣을 정도로 가까이 대고 한참을 노려보아야 겨우 가능했다. 톰이 보는 세상이 얼마나 흐리고 답답할지 오드리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언제 완전 실명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톰이 오롯이 떠안아야 할 고독이었다. 이런 내가 술이라도 안 마시면 뭘로 살아요, 라며 톰은 술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오드리가 톰의 술값을 부치게 된 계기는 이렇다. 톰은 매월 20일 기초수급비와 장애인연금을 받는다. 백만 원 남짓한 그 돈으로 보험료 삼십만 원과 공과금을 제하고 나면 육십만 원 정도 남는데 그게 톰의 한 달 생활비다. 톰이 사는 집은 14평 빌라인데 나라에서 임대료를 지원해 준다. 쌀과 기본적인 부식도 정기적으로 지원이 나온다.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바우처 카드에 쓰레기봉투까지. 그럼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돈은 거덜이 나고 톰은 다음 달 20일까지 거지로 산다. 술 때문이다. 술을 먹기 시작하면 하루저녁에도 가진 돈을 다 쓸 수 있다.

"주변에 내 돈 나오는 날만 기다리는 인간들이 득시글하거든요." 톰의 하소연을 듣다가 오드리는 문득 "그럼 제가 돈을 맡아 드릴까요?" 했다. 톰도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냉큼 통장을 오드리한테 주었다. 오드리가 그 돈을 갖고 있다가 얼마 필요하다고 하면 톰의 계좌로 보내고 그러면 톰은 체크카드로 쓰면 된다. 기발한 해결책이라고 서로 박수까지 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드리는 그 말을 한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다. 톰은 지인들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톰 스스로에게 병이 있었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다 써버려야 끝이 나는 병. 그걸 알고 난 후 오드리는 돈을 맡아야 하는 20일이 무서웠고 차라리 빨리 써 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톰은 간병보험과 실손보험 명목으로 매월 삼십만 원씩 지출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웬만한 건 다 해결해 주는 기초수급자이자 장애인인 톰에게 그런 보험은 의미가 없다. 톰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꼬박꼬박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보험료를 내버려 두었다. 톰을 꼬드겨 보험을 들게 한 이는 마야였다. 오래 알고 지낸 이웃 여자인데 마야 남편과 톰은 친구 사이였다. 마야 남편이 폭력 전과로 감옥에 간 동안 톰과 마야는 단짝처럼 지냈다. 마야는 아는 보험설계사의 실적을 위해 톰을 부추겨 보험을 들게 했다. 오드리는 보험을 없애야 한다고 톰을 설득했다. 톰은 맨 정신일 땐 오드리 말에 동의하며 당장 해지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마야 앞에선 입도 떼지 못했다. 마야는 톰이 자기 허벅지를 만졌다고 고소하여 합의금 이십만 원을 뜯어가기도 했다. 그러고 난 뒤에도 서로 어울려 술을 마셨다. 오드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 사이에 끼어 더는 안달복달하지 않기로 했다. 보험료로 날리나 술값으로 날리나 큰 차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 마신 다음날의 톰을 대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안 그래도 왜소한 사람이 술로 밤을 새우고 나면 더 반쪽이 되어 초췌한 몰골로 오드리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톰은 술병 난 배를 문지르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서도 입은 살아 있다. "나 이제 다시는 술 안 마셔요. 사모님 이제 절대로 나한테 돈 부치지 말아요. 내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보내면 안 돼요 진짜로." 백번도 더 한 거짓말을 또 하고 있는 톰의 입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드리는 "알았어요. 이제 정말 술 끊기에요"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활보가 아니라 톰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노는 데서 오는 인지 부조화의 고통은 크다. 불과 몇 시간 뒤면 깨질 게 뻔한 맹세임을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주는 자신이 그리 비굴해 보일 수가 없다.


톰은 아무리 지독한 술병이 나도 담배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돈이 들어오면 한 달 치 담배를 미리 사놓을 정도로 담배 없이는 못 산다. 흡연으로 인한 만성 기관지염 때문에 톰은 가래가 심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카아아악' '퉷'을 반복했다. 톰의 눈가 흉터나 팔의 문신처럼 걸쭉한 가래침도 대표적인 그의 상징물이다. 처음에는 톰과 동행하는 게 창피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을 찾아오고도 남을 만큼 쉬지 않고 길바닥에 뿌려대는 가래침 때문에 행인들 눈치가 보였다. 좀 지나자 남들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옆에서 끊임없이 생생하게 그 장면을 보고 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가장 괴롭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그 속마음을 톰한테 들키지 않아야 했다. 톰은 둘이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거침없이 길바닥 아무 데나 가래침을 뱉었고, 오드리는 태연하게 하던 얘기를 계속해야 했다.


술 담배 중독뿐만 아니라 톰은 잘못된 인간관계도 문제다. 마야 부부를 포함한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톰한테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임에도 관계를 끊지 못한다. 톰은 오드리가 퇴근할 때 무조건 같이 나와서 지인들한테 간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미쳐버릴 것 같아요." 톰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오드리도 돌아버릴 것 같다. 누구 집을 가든 돈도 먹을 것도 없기 때문에 톰이 소주를 사가서 김치쪼가리 하나 꺼내놓고 그걸로 몇 시간이고 때운다. 그러고 있다가 피곤하다 싶으면 그대로 누워 자기도 한다. 지인들 집에 있다가 자기 집에 들어갈 때면 톰은 현관문 밖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털고 들어간다. 바퀴벌레가 따라오지 않았나 염려돼서다. 인간들이 어쩜 그리 지저분한지 일주일 전에 먹은 밥그릇이 아직 처박혀 있더라,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다음날이면 또 그들 집에 간다.


그날이 그날인 사람들이라 모여도 할 얘기가 없고 재미도 없다. 그러면 서로 빈정대거나 시비를 걸어 사건을 일으킨다. 다혈질인 톰이 타깃이 될 때가 많다. 톰을 흥분시키는 건 간단하다. 나일롱 장애인이니까 신고하겠다는 말만 하면 된다. 톰의 장애인연금으로 술을 얻어먹으면서 그들은 그렇게 킬킬대는 것이다. 꼬라지가 발동한 톰은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부순다. 급기야 서로 치고받고 고소까지 한다. 행인이나 이웃과 싸움이 붙기도 한다. 오드리가 첫 출근날 했던 일도 즉결재판소 동행이었다. 톰은 단지 싸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엮였다고 했는데, 오드리는 그 말을 믿고 판사한테 이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니 참작해 달라고 했다가 오히려 두 배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톰이 너무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뒤에도 동네 파출소, 관할 경찰서, 법원, 병원 응급실 등 톰이 사고를 칠 때마다 쫓아다니며 수습을 해야 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톰의 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술 먹고 떠드니까 이웃 주민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고 톰은 네가 더 시끄럽다며 3층 창문으로 소주병을 던졌다. 이웃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오드리는 국선변호사와 머리를 맞대고 톰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애썼다. 실상이 어떻든 변호사는 톰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톰은 집행유예 상태에서 또 재판을 받게 되어 판결이 났던 그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았다. 실형이 선고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속이 된다고 한다. "갈 때는 같이 가도 올 때는 사모님 혼자 와야 될지도 몰라요." 그날 아침 법원 가는 길에 톰은 농담을 하면서도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집행유예를 받은 톰은 표정이 밝아졌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올림픽 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구속을 면했으니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 사건의 당사자들과 또 술판을 벌인다는 말에 오드리는 할 말을 잃었다.


마야는 알 수 없는 여자였다. 남편이 몇 달 전 출소하여 함께 사는 중인데 어느 날 톰의 집에 보따리를 싸들고 와 있었다. 마야 남편은 자기가 감옥에 있는 동안 부인이 톰과 놀아났다고 의심하며 툭하면 시비를 걸었는데, 마야는 그게 지겨워 집을 나왔다고 했다. 다른 곳도 아닌 톰의 집에! 더 놀라운 것은 톰의 대응인데 며칠이 지나도록 마야한테 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마야는 오드리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오드리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식탁에서 톰과 맞담배를 피웠다. 오드리가 청소기를 밀 때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발만 까딱 들었다.

마야는 오드리를 시간제 노예 대하듯 했다. 물 달라 밥 달라 담배 사 와라 거리낌 없이 시켰다. 톰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 마야는 "지금 근무시간 아니야?" 하며 오드리를 똑바로 쳐다봤다.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 게 그 부분이다. 활보가 시간 단위로 일한다고 그 시간에는 뭐든 시켜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계약서 쓰기 전에 미리 협의를 하고 그 선에서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 이용인 가족들조차 서비스 제외 대상인데 하물며 지인들에게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 마야한테 그런 원칙을 설명해 봤자 입만 아플 테니 오드리는 그냥 해주고 만다. "이 아줌마 어차피 하는 일도 별로 없잖아!" 마야는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우긴다. 그렇게 열흘 정도 있다가 마야는 남편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톰은 다음 날부터 다시 마야네로 놀러 다녔다.


그날 축하 파티 장소도 마야네다. 아마 계속 돈 찾아오라고 톰의 옆구리를 찌른 것도 마야일 것이다. 진동소리가 뜸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119 문자가 온다. 119 안심콜 서비스는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이 사전에 등록해 두면 응급상황 발생 시 보호자에게 자동으로 문자가 전송되는 제도이다. 톰은 오드리를 주 보호자로 지정했다. 그때 오드리가 함께 가서 등록을 했는데 나중에는 사인한 그 손을 분지르고 싶을 만큼 후회했다. 오드리가 전화를 계속 안 받으면 톰은 119로 전화를 했다. 그러면 알림을 받은 오드리가 뭔 일이 난 줄 알고 자기한테 연락할 거라고 계산한 것이다. 그런 빤한 속셈은 전에도 몇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오드리는 그저 실소가 날 뿐이었다. 긴급할 때를 대비해 만들어진 제도를 그따위로 악용하다니. 오드리는 만정이 떨어진다. 그렇게 한 시간쯤 조용하더니 이제는 031로 시작하는 번호로 연달아 세 번이나 전화가 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았더니 지구대 순경이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톰을 집까지 데려오긴 했는데 비번을 몰라 못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톰의 직전 통화 내역을 보고 순경은 오드리한테 전화를 한 것이다. 비번을 알려주며 흘깃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네시 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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